• 한국문화사
  • 02권 배움과 가르침의 끝없는 열정
  • 제1장 고대와 고려시대의 배움과 가르침
  • 2. 고려시대의 배움과 가르침
  • 향교
  • 설치
이병희

후삼국시대 각 지방의 호족도 자신의 필요에 따라 교육을 실시하였다. 지방 행정을 꾸려가고 지방민을 교화하기 위해 유교적 소양을 갖춘 인물을 양성할 필요가 있었다. 이때 전국에 유교적 소양을 갖춘 지식인은 널려 있었다고 생각된다.

광종 때 과거제가 실시되어 급제자를 배출할 수 있는 것도 지방 교육이 일정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뜻한다. 광종 때 급제자가 대부분 지방 출신으로 추측되므로 지방 교육이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성종 이전의 지방 교육은 지방의 향호(鄕豪)들에게 위임되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성종 때 12목에 지방관을 파견하면서 교육도 국가의 제도권 아래에 두려고 하였다. 986년(성종 5) 7월 개경에 와 있던 지방 자제 260명 가운데 207명이 고향으로 귀향하게 해달라고 해서 허락하였으며, 이듬해 8월에는 귀향한 학생을 지도하기 위하여 12목에 경학박사와 의학박사를 한 명씩 파견하였다. 귀향한 학생이 공부하도록 중앙에서 학관을 파견한 것이다. 아울러 여러 주·군·현의 향리나 백성의 아들로서 가르칠 만한 자가 있으면 교육하였다. 이렇게 학관을 파견하여 지방 교육을 제도화할 수 있었다. 지방의 향호들이 운영하던 학원이 점차 중앙의 통제와 지원을 받는 방향으로 전환되어 갔다. 그러나 그 지역은 12목에 한정되었을 뿐 전국의 모든 군현에 학관을 파견한 것은 아니었다.

1003년(목종 6) 정월 3경(三京)과 10도(十道)의 박사나 사장(師長)으로서 생도를 권장하여 성과가 있는 자가 있으면 이름을 기록하여 아뢰고, 관내에 재주와 학식이 있는 자가 있으면 매년 천거하는 것을 항규(恒規)로 삼으라고 하였다.58)『고려사』 권3, 세가3, 목종 6년 정월. 지방의 학교에서 생도를 잘 지도하여 성과가 있는 박사나 사 장은 아뢰어 포상하게 한 것이다.

현종, 문종 때에 이르면 지방 행정 제도가 확립되고 향리에 대한 통제도 강화되었다. 이에 따라 지방 교육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지원이 확대되었다. 그것은 12목이라든지 지방관이 파견되는 주읍(主邑)에 한정되었을 것이다. 1018년(현종 9) 4도호부 8목 56군 28진 20현이 설치되었던 전국 주요 지역에는 학관이 상당수 파견되었으며, 문종 때에 이르러서는 학관을 더 많이 파견하였을 것이다.

중앙에서 학관을 늘려 파견함에 따라 지방 학생들은 교육을 받을 기회가 많아졌다. 따라서 향공의 수가 증대되어 갔으며, 향공의 질이 떨어지기도 하였다. 이와 아울러 군현마다 향공이 차이가 있어 조정할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이에 계수관시(界首官試)를 엄정하게 관리함으로써 향공의 질적 향상을 꾀하려 하였다.

지방에 설치된 교육 기관은 향학(鄕學) 또는 주현학(州縣學)이라고도 하였는데, 향교(鄕校)라는 이름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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