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2권 배움과 가르침의 끝없는 열정
  • 제1장 고대와 고려시대의 배움과 가르침
  • 2. 고려시대의 배움과 가르침
  • 향교
  • 서경 향교
이병희

고려가 건국되었을 때 서경은 폐허로 변하여 번인(藩人)들의 수렵장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고려는 초기부터 서경을 중시하여 개척하였다. 황 주·봉주(鳳州)·백주(白州) 등의 민가(民家)를 서경으로 옮겨 살게 하였으며 여러 현의 양가 자제를 옮겨 충실하게 하였다. 아울러 성을 쌓고 관부와 관리를 두어 행정 부도(行政副都)로서의 기능을 강화하였다.

930년(태조 13)에 태조가 서경에 행차하여 향교를 처음으로 세웠다. 수재 정악(廷鶚)을 명하여 서학박사로 삼고 별도로 학원을 만들어 6부의 생도를 모아 교수하게 하였는데, 뒤에 그가 학문을 일으켰다는 말을 듣고 비단을 하사하여 권장하고, 겸하여 의업(醫業)과 복업(卜業)을 두게 했으며, 또 창고 곡식 100석을 하사하여 학보(學寶)로 삼게 하였다.68)『고려사』 권74, 지128, 선거2, 학교, 태조 13년. 서경의 학교에서 교육의 성과는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인다.

서경의 학교는 뒤에 제학사원(諸學士院)으로 개편되었으며, 1116년(예종 11) 서경에 분사(分司) 제도를 실시할 때 제학사원을 분사국자감(分司國子監)으로 높여 개편하였다. 동시에 판사(判事)·좨주(祭酒)·사업(司業)을 각각 1명씩 두되 모두 겸관(兼官)으로 하고 박사와 조교도 각각 1명씩 두어 중앙의 국자감을 방불하게 하였다. 1136년(인종 14) 묘청(妙淸)의 난을 계기로 분사국자감은 폐지되고 제학원(諸學院)으로 다시 낮추어 개편되었다.69)『고려사』 권77, 지30, 백관2, 서경유수관.

서경 학교의 교육 과정은 유학 교육이 중심을 이루었으나 율·서·산학 같은 기술 교육 과정도 설치되었던 것 같다. 분사국자감의 수업 연한은 국자감의 수업 연한과 같았을 것이며, 제학원의 수업 연한은 향교의 수업 연한과 같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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