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2권 배움과 가르침의 끝없는 열정
  • 제2장 조선시대의 배움과 가르침
  • 2. 향교
  • 향교 교생
  • 정원 내 교생과 정원 외 교생
이승준

향교에는 양반뿐 아니라 양민의 자제도 입학할 수 있었다. 조선 초에는 향교에 입학하는 양민의 수가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향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교생의 수는 군현의 크기에 따라 일정하게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향교에서는 정원의 범위 내에 해당하는 액내 교생(額內校生)과 정원에 포함하지 않는 액외 교생(額外校生)을 구분하여 학생을 뽑아 교육하였다. 조선 초에는 신분에 따라 양반은 액내 교생이 되었고, 양민과 서얼은 액외 교생이 되었다. 양반은 대개 동재에 기숙하여 동재 유생이라고 불렀고, 양민이나 서얼은 서재에 기숙하였기 때문에 서재 교생이라고 불렀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향교에 입학하는 양인의 수가 크게 증가하였다. 특히, 경제 상황의 변화와 신분제의 동요 등으로 향교에 입학하여 군역을 면제 받으려는 부유한 양민이 많아졌다. 이에 따라 양반들은 양민과 함께 공부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여 향교에 입학하지 않으려 하였다. 중종 때 학교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지금의 유생들은 다 군역을 피하는 자들입니다. 사족의 자제는 유학을 공부한다고 하면서도 향교에는 다니지 않습니다. 향교는 하류(下流)들이 모인 곳이라 하여 들어가기를 수치로 여기기 때문입니다.”라고 하는 데서 잘 알 수 있다.

인조 때에는 군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향교에서 공부하는 교생의 신분과 관계없이 시험하여 불합격한 자는 모두 군역에 충원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조치로 양반들은 더욱 향교 입학을 기피하게 되었다. 그리고 양반들은 자신들을 양인 교생과 구별하기 위하여 교생의 명단을 기록한 ‘교생안(校生案)’과는 별도로 ‘청금록’을 만들었다. 청금록은 유생안(儒生案)이라고도 불렸으며 청색 표지로 만들었고, 교생안은 서재안(西齋案), 서재유안(西齋儒案) 등으로 불렸으며 황색 표지로 만들어 구별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양반들의 향교 입학이 점차 줄었고, 양민이나 서얼의 입학이 늘면서 이들이 액내 교생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액외 교생은 대개 군역을 회피하기 위하여 향교에 입학한 사람들로 채워졌다. 조선 후기 향교에서 비롯한 군역의 문제를 지적한 『교원교폐절목(校院矯弊節目)』을 보면 액외 교생의 종류가 다양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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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액외 교생을 더하여 정하는 폐단이 향교에서 이익을 취하는 단서가 되고 있다. 유생으로 합당하지 않고 외람된 자를 원납(願納)이라 칭하여 돈을 받고 교안(校案)에 올리며, 나이가 아직 60세가 되지 않아 일을 맡기기에 족한 자들을 혹 노유(老儒)라 칭하여 교생의 역(役)에서 제외시켜 한가롭게 놀게 한다. …… 액외 교생에 들려는 자들에게는 뇌물을 받아 포함시켜 주고, 역에서 벗어나려는 자들에게도 뇌물을 받아 역을 면제시켜 준다. …… 혹 집사(執事)라 칭하여 별도로 정원에서 더하고 있다. 양역(良役)을 피해 보려는 부류들이 모두 향교의 교적(校籍)에 올리는 방법이 이렇게 다양하였다. 관에서는 모두 조사해 내려고 하여도 사론(士論)이라 칭하면서 백방으로 저지하니 실로 오늘날의 고질적인 폐단이다.113)『교원교폐절목』: 윤희면, 『조선 후기 향교 연구』, 일조각, 1990, 111쪽 재인용.

이 중에서 특히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 것은 재물을 바치고 교생이 되어 군역을 면하려던 원납(願納) 교생이었다. 원납 교생이 많아진 것은 향교의 교임(校任)이 재정을 보충하기 위하여 이들에게 재물을 받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향교 관리를 책임지는 지방의 수령들이 관아의 재정을 채우거나 자신의 재물을 늘리기 위하여 원납 교생을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었다. 조금 과장된 표현이지만 조선 후기 액외 교생의 수가 한 군현에서 적게는 수백 명, 많게는 수천 명이라고 하였으며, 심지어 5,000명, 1만 명이 되는 곳도 있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 향교에서는 군역을 피하기 위한 교생의 수가 늘면서 많은 사회 문제를 불러일으켰으며, 양반들은 서재의 교생과 구별하여 동재 유생이라 칭하는 등 신분을 구별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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