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2권 배움과 가르침의 끝없는 열정
  • 제4장 일제강점기의 배움과 가르침
  • 1. 식민지 교육 정책의 변화
  • 제2차 조선 교육령(1922∼1937)
김태완

이 시기는 일제가 조선인의 민족적 항거였던 3·1운동으로 식민지 정책을 어쩔 수 없이 수정한 시점이다. 일제는 3·1운동 같은 민족적 저항을 방지하려고 ‘문화 정치(文化政治)’라는 그럴 듯한 말로 식민지 정책을 수정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인들도 기존의 교육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교육에 대한 요구, 즉 동화보다는 민족, 차별보다는 평등을 지향하는 교육, 저급한 교육보다는 고급 교육을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이 3·1운동의 영향으로 조선 교육령 개정 작업이 진행되고, 조선인들의 요구 사항이 제시되는 가운데 이른바 준거주의(準據主義)181)준거주의는 일본 교육이 조선 교육의 기준이 된다는 의미이다. 즉, 조선의 교육을 일본의 교육과 동일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의미이다.에 입각한 제2차 조선 교육령이 1922년 2월 6일에 발표되었다 제2차 조선 교육령에서는 학교 종류와 수업 연한에서 일본과 동일한 학제를 채택하고, ‘내선공학(內鮮共學)’을 정하였으며, 형식상 소위 ‘일시동인(一視同仁)’을 표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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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범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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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조선 교육령이 시행된 시기의 교육은 3·1운동으로 격화된 조선인의 반일 감정을 무마하려는 일제의 교활한 융화 정책이 적용되었다. 교육 제도에 수정을 가하여 기존의 학교 체계에서 수업 연한을 연장시키고 독립한 사범학교를 신설하였으며,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을 설립하는 등 상급 학교 진학의 길을 열어 놓아 형식상 일본의 학교 체계와 비슷하게 개정하였다.

1차 시행 때 4년을 원칙으로 하였던 보통학교와 고등 보통학교의 수업 연한을 6년과 5년으로 연장하여 학제상 고등 보통학교를 고등 교육 기관과 연결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학교 제도상의 차별에 대한 비난을 피하고 무마하려는 의도로 책정한 것이지만 실제로 지방에는 상당수의 4년제 보통학교가 그대로 남아 있어 1940년대 초까지 계속되었다. 사범학교의 경우 수업 연한을 보통과 5년, 연습과 1년으로 하였으며, 여자는 5년으로 하여 보통과의 1년을 단축시켰다.

이와 같이 제2차 조선 교육령은 겉으로는 한국인과 일본인을 동일한 수준에서 교육하는 것처럼 보이려 하였지만 그것은 형식적이었다. 조선 교육령 제2조와 제3조에는 조선 내에 있는 일본인을 위한 교육 제도는 일본어를 사용하는 자를 위한 교육 제도라 하고, 한국인을 위한 교육 제도는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는 자를 위한 교육 제도라 하여 사실상 이원적으로 수립하여 놓았다. 특히, ‘일본어 사용’이라는 용어에서 오는 표현의 차이는 교묘한 차별주의 교육 정책에 지나지 않았다.

<표> 6년제 보통학교 학년별·과목별 매주 수업 시수(1922)
교과목
학년
수신 일본어
(국어)
조선어 산술 일본사 지리 이과 도화 창가 체조 재봉 수공 총 시간수
1 1 10 4 5         3     23
2 1 12 4 5         3     25
3 1 12 3 6       1 1 3     27
4 1 12 3 6     2 1 1 남3
여2
1   남 30
여 29
5 1 9 3 4 2 2 2 남2
여1
1 남3
여2
3   남 32
여 30
6 1 9 3 4 2 2 2 남2
여1
1 남2
여1
3   남 31
여 29
6 64 20 30 4 4 6 8 4   7   남 168
여 163

또한, 학교 명칭에서도 조선인 학교와 일본인 학교는 달랐는데, 조선인을 위한 초·중등 교육 기관 이름은 보통학교, 보통학교의 고등과(高等科), 고등 보통학교, 여자 고등 보통학교인 반면, 일본인을 위한 교육 기관 이름은 심상 소학교(尋常小學校), 고등 소학교(高等小學校), 중학교(中學校), 고등 여학교(高等女學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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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 급 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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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 급 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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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조선 교육령에서도 주요 과목이었던 국어, 역사, 지리 교과목은 제1차 교육령의 큰 틀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보통학교의 교과목은 기존의 『조선어 급 한문』을 『조선어』와 『한문』으로 나누어 조선어를 정규 과목으로 하고, 한문은 수의 과목(선택 과목)으로 하였다. 그렇지만 실제 수업에서 조선어를 교수할 때는 일본어 쓰기를 병행하여 조선어 교육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일본어 교육을 위한 수단으로써 활용하였다. 그리고 일본어를 ‘국어’로 칭하며 ‘국민 된 성격을 함양’한다는 그럴 듯한 말 아래 기존의 목표에 ‘국민으로서 자각’을 덧붙여 일본의 역사, 일본식 도덕, 일본의 시정(施政)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일본어 교과가 되게 하였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많은 시수를 배정하여 단순한 언어 교육 차원을 넘어 동화주의 교육의 중요 교과임을 분명히 하였다. 총 수업 시수의 비율에서도 조선어 과목이 대폭 축소되고, 일본어의 비중이 더욱 강화되었다.

고등 보통학교에서는 『일본어』를 『일본어 급 한문』으로 개칭하고 조선어와 한문은 기존처럼 『조선어 급 한문』으로 통합하여 조선어 교과의 독 립성을 없앴다. 수업 시수 역시 보통학교와 마찬가지로 조선어 시수는 줄이고, 일본어 교과는 기본 수준을 유지하였다. 사범학교에서는 조선어와 한문과를 『조선어 급 한문』으로 통합하여 조선어의 비중을 강화하고 필수 과목으로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편제는 조선어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어야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총 수업 시수 비율도 조선어는 크게 줄었고, 일본어는 비중을 많이 두어 중시하였다.

또한, 각급 학교에서 조선인이 조선의 전반적인 역사, 지리 교과를 학습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보통학교 5, 6학년부터 일본의 역사와 지리 교과만 교수하게 하였는데, 이는 황국 사관(皇國史觀)과 식민 사관(植民史觀)에 입각하여 일본의 역사를 찬양하는 입장에서 서술된 것이다. 그나마 부분적으로 언급된 조선사의 경우도 주체성과 자주성이 상실된 종속의 처지에서 서술함으로써 조선인 청소년에게 한민족의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을 말살하여 일본에 예속하고 순종하는 노예 의식을 조장하였다.

<표> 고등 보통학교 학년별·과목별 매주 수업 시수(1922)
교과목
학년
수신 일본어
급 한문
조선어
급 한문
외국어 역사
지리
수학 박물 생리 급
화학
도화 실업 창가 체조 총 시간
1 1 8 3 6 3 4 2   1   1   32
2 1 8 3 7 3 4 2   1       32
3 1 6 2 7 3 5 2 2 1       32
4 1 5 2 5 3 4 2 4 1 2     32
5 1 5 2 5 3 4 1 4 1 2     32
5 32 12 30 15 17 9 10 5 4 1   160

또 기존에 고등 보통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던 ‘영어’를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고, ‘이과’를 ‘박물(博物)’과 ‘물리 급 화학’으로 나누고, ‘실업 급 법제·경제’ 교과를 ‘실업’과 ‘법제 급 경제’로 분리한 뒤 이를 선택 교과목인 수의과로 하였다. 이는 일본인 중학교와 달리 실업 교육 중심이던 기존의 고등 보통학교의 교과목을 일본인 중학교와 유사한 형태로 조정하여 제도적으로는 상급 학교로 진학하는 길을 열어 준 것이다. 일제의 이러한 차별적 교육 정책의 완화는 조선인의 상급 학교 진학에 대한 욕구를 더욱 커지게 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조선인의 불만과 요구를 일부 수용한 측면도 있었지만, 기존의 차별적 동화 교육의 기조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실제로 일제는 일시동인(一視同仁), 내지연장주의(內地延長主義)를 내세웠지만, 조선인의 고등 보통학교 증설 요구는 무시함으로써 민족 간 고등 보통교육 기회에서 차별은 계속 유지하였다. 이러한 차별은 고등 보통학교를 일본의 중학교와 유사한 교육 과정으로 바꾸고 제도상으로 고등 교육 기관으로 진학하는 것을 허용하였지만 교육 기회를 통제함으로써 조선인의 상층 이동을 제한하려 한 식민지 정책과 연관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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