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2권 배움과 가르침의 끝없는 열정
  • 제4장 일제강점기의 배움과 가르침
  • 3. 학교 생활
  • 학생 규율
  • 중등학교 규율
김태완

일제강점기의 고등 보통학교 규율은 학교장이 제정하였다. 규율의 적용과 지도는 교사들, 특히 학급 주임과 감독계 교사가 담당하였다. 그런데 규율의 적용과 지도에는 교사 이외에 학교장이 임명한 학급 급장과 이들이 포함된 최상급 학생 몇 명으로 조직된 풍기 계원, 적선회 같은 학내 조직이 감독계의 지휘 아래 학생 규율을 담당하였다. 요컨대 학교에서 학생 규율의 제정과 적용은 교장을 정점으로 하여 학급 주임, 감독계를 통하여 이루어졌으며, 급장과 풍기 계원 같은 학생들이 그 활동을 보조하였다.

규율은 크게 근태(출·결석), 복장과 용모, 교수·학습 활동, 학생 조직과 학생 활동, 교외 활동 등 학생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었다. 우선 결석, 지각, 결과(缺課), 조퇴 등은 엄격하게 통제하였는데, 결과·결석과 관련된 규정을 보면 병이 들거나, 사고가 생기거나, 부모나 친척이 사망한 경우가 아니면 인정받지 못하였고, 이유 없이 1개월 이상 결석하면 퇴학 조치되었다.

교복은 학교와 시대에 따라 약간 차이는 있지만 옷감의 색깔과 종류, 주머니와 단추의 개수와 위치, 휘장 등에 대해서 상당히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1910년대까지는 양장 형태의 교복이 아니라 한복 두루마기를 주로 입었고, 지정된 모자를 쓰고 다녔다.

검은색 무명옷, 깃을 세운 자켓형, 호주머니는 좌측 가슴에 1개, 우측 가슴 안쪽에 1개, 허리둘레 덮개가 있는 주머니 좌우에 1개씩, 가슴에 단추 5개, 소매에 단추 2개씩, 단추는 본교 특정의 것, 금장은 학년을 표시하는 로마 숫자 좌우에 각 1개씩, 우측 안쪽 주머니에 백포를 붙여 성명을 기입할 것, 바지는 보통형 긴바지, 주머니는 좌우측 솔기에 각 1개씩, 시계 주 머니 1개, 권총 주머니 1개, 앞쪽의 안에 백포를 붙여 성명을 기입한다.197)해주 공립 고등 보통학교, 『해주 공립 고등 보통학교 학교 경영과 학교 개관』, 1932, 278∼279쪽.

교복은 외출할 때도 입어야 하였다. 옷 외에도 신발, 안경, 모자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규정이 있었는데, 특히 안경의 착용 여부도 학생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의 허가를 받아야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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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과 한복 두루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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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주로 생활하는 교실에도 엄격한 규율이 적용되었다. 우선 고등 보통학교에서는 대부분 매일 전체 조례를 하였는데, 출석 점호, 합동 체조, 학교장이나 직원의 훈화와 시달 등이 행하여졌다. 수업은 급장의 호령에 따라 전체 학생이 기립하여 교사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시작하며, 쉬는 시간에 교실과 복도에 있어서는 안 되며, 교실에 들어올 때는 일정한 장소에서 정렬하여 급장의 호령에 따라 들어와야만 한다. 흑판이나 교단, 심지어 창문 커튼의 개폐도 학생들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교외 생활도 규율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었는데, 학생들은 자신의 숙소를 정하거나 바꿀 때에도 학급 주임이나 감독계의 허가를 받아야만 하였 다. 학급 주임과 감독계는 정시 또는 수시로 가정과 숙소를 방문하여 학생들을 관찰하였다. 또 숙소부를 두어 하숙하는 학생을 엄격히 감독하였는데, 이는 하숙, 자취 등 외부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의 사상이나 활동을 엄격하게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감시를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학생들의 숙소에 학교에서 정한 문표(門標)를 달기도 하였다.

야간 외출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금지하였으며, 불가피하게 야간 외출을 하게 된다면 밤 10시까지 귀가하도록 하였다. 이를 단속하기 위해 학급 주임과 감독계에서 평상시 단속을 하였고, 월 1회에서 2회에 걸쳐 전 교사가 야간 순시도 하였다. 이 밖에도 학생들의 학외 단체 가입이나 영화 관람 등을 금지하였으며, 신문이나 잡지 등에 기고하는 것도 학교장의 허락을 얻어야만 하였다.

학교의 일상적인 단속이 이루어지기 힘든 방학 기간에는 학생들에게 일지를 작성하여 방학 이후 학급 주임에게 제출하도록 하였다. 이는 명목상으로는 항상 자기를 반성하고 자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의식하고 하루를 충실하게 지내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학생들의 사상 경향을 알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고등 보통학생들의 일기장을 보면 역대 천황의 표, 황국 신민의 서사, 일본의 유명 인물에 대한 소개 등이 인쇄되어 있어 이 역시 중요한 동화 교육의 도구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학교에서는 조행(操行) 평가, 상벌 제도, 각종 검사와 단속, 체벌을 규율을 강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우선 규율을 강제하기 위한 학교의 가장 일상적인 활동은 검사, 단속, 체벌이었다. 그 대상은 복장 검사, 교과서와 독서물 조사, 숙소 허가와 관찰, 야간 외출 단속, 흥업물 관람 단속, 생도의 집회 단속, 기고와 투서 단속 등 교내외의 학생 생활 대부분이었다. 이 외에도 학용품을 비롯한 각종 소지품, 일기, 두발, 손톱 등도 정기적 또는 불시 단속 대상이었다. 이러한 검사와 단속은 일상적인 체벌로 이어졌다. 체벌에 관한 구체적인 규정은 없었지만 각종 회고담, 신문 기사 등을 볼 때 체벌은 일상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수학 시간에 다른 책을 보다가 교사에게 따귀를 맞았다.”거나,198)경복 오십오년사 편찬 위원회, 『경복 오십오년사』, 1976, 132쪽. 일본인 교사의 가혹한 체벌에 대한 학생들의 집단적인 반발도 있었다.199)『동아일보』 1930년 2월 15일자.

조행 평가는 학교 성적과는 별도로 인물의 됨됨이를 사정하기 위하여 등장하였다. 조행 평가는 규율과 관련하여 성행·근태·기능 등에 기초하여 평가하는 것으로 학급 주임이 원안을 작성하여 감독 계원, 교무 주임을 거쳐 조행 고사 회의에서 학교장의 결제로 확정되었다. 이러한 조행 평가는 특별한 시험을 통하지 않고 학급 주임의 평소 관찰로 작성하였는데, 평가는 우(優)·양(良)·가(可)·부(不)나 갑(甲)·을(乙)·병(丙)·정(丁) 4단계로 하였다. 조행 평가 결과는 포상과 진학이나 진급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는데, 평가의 최하위 등급인 부(不)를 받은 자는 성적과 관계없이 수료 또는 졸업을 하지 못하였다.

조행 평가와 더불어 상벌 제도도 규율을 강제하는 중요한 제도였지만, 학교장 임의로 정하였기 때문에 모호한 규정이 많았다. 예를 들어 성행, 학력, 출석이 불량할 경우 학교장은 퇴학을 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교육에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징계할 수 있었다. 이러한 모호한 규정에 따른 학교장의 징계권 행사는 학생들의 일제에 대한 저항 활동 때 적극 활용되었다. 상벌 규정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성적과 관련된 규정은 구체적이었지만 품행과 관련해서는 ‘품행 방정, 독행한 자, 기특한 행위를 한 자’200)해주 공립 고등 보통학교, 앞의 책, 1932, 265∼266쪽. 등으로 규정되어 학교장의 영향력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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