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2권 배움과 가르침의 끝없는 열정
  • 제4장 일제강점기의 배움과 가르침
  • 5. 여성 교육
  • 제2차 조선 교육령기 여성 교육
김태완

3·1운동 이후 일제의 통치 정책이 유화 정책으로 바뀌면서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한 교육의 중요성은 더욱 중요해졌다. 1922년 제2차 조선 교육령에 따라 여자 고등 보통학교 규칙이 여자 고등 보통학교 규정으로 개정된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였다. 일제는 여성을 학교라는 틀로 끌어 들여 일본인과 조선인이 동화하는 매개체로 적극 이용하려 하였다. 개정 교육령에서 여성 교육의 목적은 ‘국민적 자질’의 육성이었다. 이는 개정 교육령 제8조에 잘 나타나 있다.

제8조 여자 고등 보통학교는 여학생의 신체 발달과 부덕의 함양에 유의하며 덕육(德育)을 실시하고 생활에 유용한 보통 지식과 기능을 가르쳐 국민으로서의 자질을 육성하고 국어에 숙달케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개정된 교육령에 따라 바뀐 교과목을 살펴보면, 우선 여성에게 외국어 교육을 시키기 시작하였으며, 통합 교과였던 이과와 가사를 분리하여 과학에 대한 지식과 실용 지식을 강화하였다. 또 체조를 음악과 분리하고 수업 시간을 대폭 늘려 여성의 신체 건강에도 관심을 두기 시작하였다. 정신 교육과 관련된 수신, 국어, 역사, 지리 과목의 수업 시간을 늘렸으며, 여성과 관련된 수예 과목이 빠지고 가사와 재봉 시간의 비중이 반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이러한 교과목 개편에도 여자 고등 보통학교용 『수신서』를 보면 여성의 직분으로서 현모양처의 이데올로기는 더욱 강화되었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수양의 제일보(第一步)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자신을 아는 것에는 먼저 천직의 성격에 대해서 판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또 우리들은 남자와 다르고, 특히 여자로서 천분(天分)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나중에 일가(一家)의 주부로서 가사를 담당해야 함과 동시에 어머니로서 자녀를 양육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이 천분을 다하는 것은 여자로서 가장 중요한 임무입니다.

한편, 일제의 여성 교육이 의도하는 이러한 여성상에 대해서 비판도 많이 제기되었다. 1920년 창간된 『동아일보』에서 양주동, 김려생 등은 현모 양처 교육은 그릇된 교육이며 여하인주의(女下人主義) 교육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였다.

특히, 사회주의자들은 식민지에서 억압받는 집단 가운데 하나로 여성을 상정하고, 현모양처주의 교육에서부터 여성이 해방될 때 비로소 진정한 여성 교육이 시작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비판을 일제는 철저히 탄압하였는데, 1927년에 모 여학교에서 여학생이 다소 사회주의적 색채를 띤 연설을 하였을 때 “그런 여자답지 못한 연설을 함부로 하는 것은 철저한 현모양처주의 아래에서 신여성을 양성하려는 규칙에 반대된다.”는 이유로 퇴학시켰다.

이 시기 현모양처 여성 교육관에서 여성은 학교를 졸업한 후, 시집가기 전이라도 직업을 가져서는 안 되고, 가정에서 주부로서 준비해야 하는 존재였다. 남성에게 학교 교육은 안정적이고 최고의 사회적 지위를 가졌던 행정·사법 관리, 교원이 되는 핵심 통로였던 반면, 이러한 여건 속에서 교육받은 당시 여성에게 학교 교육은 결혼의 조건으로 인식되었다. 물론 이런 점은 여성의 사회 진출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시 이른바 신여성들은 교육을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남성의 내조자로서, 가정의 주인으로서, 안정적인 삶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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