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2권 배움과 가르침의 끝없는 열정
  • 제4장 일제강점기의 배움과 가르침
  • 5. 여성 교육
  • 제3, 4차 조선 교육령기 여성 교육
김태완

일제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제3차 조선 교육령이 개정되었고 이에 따라 고등 여학교 규정 역시 1938년 조선 총독부령 제26호로 개정되었다. 이에 따르면 기존 규정이 추상적이어서 교육의 근본 목적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현모양처의 자질을 갖춘 ‘충량한 황국 여성’을 양성하는 데 적합하도록 고등 여학교 규정을 구체적인 형태로 개정하였다.

모든 교과목은 여성이 가정주부나 어머니가 된다는 인식 아래 결혼 생 활과 육아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에 따라 고등 여학교의 교과목도 수신, 공민과, 교육, 국어, 역사, 지리, 외국어, 수학, 이과, 실업, 도화, 가사, 재봉, 음악, 체조로 개편되었다.

이 시기에는 기존과 달리 여성 교육에 실업 교육이 추가되었는데, 이는 여성에게도 직업 교육을 해야만 하는 당시 정세가 반영된 것이다. 즉, 이 시기 여성의 국가 사회에 대한 제일의 사명은 현모양처로 가정 내 소임을 수행하는 것이지만, 전쟁 상황에서는 여성도 직업을 가져야 하는데, 이는 가정 경제의 보조 구실이 아닌 국가적 노동력 착취 차원이었다.

당시 여성의 상급 학교 진학 현황을 살펴보면 사범학교의 경쟁률이 가장 높았는데, 여성들이 교원을 가장 선호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유치원 보모를 양성하는 보육학교와 의전(醫專)도 모두 정원을 초과하는데, 당시 여성들이 상급 학교에 진학하는 이유가 직업을 위해서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현모양처로서 황국 여성을 양성한다는 여성 교육의 목적은 전시 체제가 강화되면서 ‘군국(軍國)의 어머니’, ‘국방 가정(國防家庭)’의 모습으로 표출되었다.

<표> 고등 여학교 교과 과정과 매주 수업 시수
과목
학년
수신 공민 교육 국어 조선어 역사
지리
외국어 수학 이과 실업 도화 가사 재봉 음악 체조
1학년 2     6 2 3 3 2 2 1 1 1 4 2 3 32
2학년 2     6 2 3 3 2 2 1 1 1 4 2 3 32
3학년 1 1 1 5 1 2 2 3 3 1 1 3 4 1 3 32
4학년 1 1 1 5 1 2 2 2 3 1 1 4 4 1 3 32
6 2 2 22 0 10 10 9 10 4 4 9 16 6 12 122
비율 4.9 1.6 1.6 18 0 8.2 8.2 7.4 8.2 3.3 3.3 7.4 13.1 4.9 9.9 100

일제강점기 교육은 차별에 기초한 동화 교육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일제는 조선인을 열등한 존재로 남게 하기 위해 고등 교육에 접근할 기회를 차단하려 하였다. 한편으로는 조선인을 동화시키기 위해서 일본어의 숙달을 비롯한 일본 문화의 습득이 필요했기 때문에 조선인의 교육 기회를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일제는 동화에 꼭 필요한 국민 교육으로서 초등 교육을 억제하지 않았고, 중등 교육도 실업 교육 중심으로 실시하였다. 고등 교육의 경우 고등 교육 기관을 설립하지 않거나, 제도적으로 고등 교육과 연계가 있는 인문 중등 교육을 제대로 실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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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고등학교 졸업식
여자 고등학교 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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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제는 3·1운동이라는 거대한 저항을 만나면서 이를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후 조선인에게는 비록 제한적이었지만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제도적으로는 열리게 되었다. 그렇다고 하여 일제의 본질적인 교육 목적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교육 내용도 수신, 일본어, 일본사, 일본 지리 등의 교육을 통해서 일본인으로서의 가치관과 의식을 심어 주려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학교 내외에 적용되는 강력한 학생 규율과 각종 의례, 행사, 훈련 등을 통해 학생들의 저항 의식을 억제하고, 식민지 국민에게 일상적으로 가해지는 폭력과 통제에 순응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교육은 식민지에서 계층 이동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기 때문 에 고등 교육을 향한 조선인의 교육열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급 학교로 진학하기 위한 노력은 재수, 삼수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특히, 일제의 학교 교육 기회에 대한 통제는 교육열과 경쟁을 더욱 격화시키기도 하였다. 또 이 시기 학생들은 민족적인 요구에 따라 사회의 지도층으로 성장해 줄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적어도 기성세대들은 그들을 고운 시선으로만 보지는 않았다. 이 시기에도 지금과 같이 학생들에 대한 사회의 문제 제기는 계속되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교육에는 민족적 요구도 있었지만, 고등 교육으로 갈수록 개인의 사회적 출세가 주목적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교육은 학생들에게 식민지 국민으로서 순응할 것을 강요하였지만, 이러한 차별적 동화 교육 정책은 모든 학생들을 식민지 지배 체제로 흡수할 수 없었고, 이후 학생들은 일제에 대한 저항 세력의 한 축이 되었다. 학생들의 저항은 6·10만세운동, 3·1운동, 광주학생운동 등으로 표출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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