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3권 거상, 전국 상권을 장악하다
  • 제1장 상인과 정치 권력
  • 3. 경강 상인의 성장과 정경 유착
  • 조선 후기 사상 도고로 성장한 경강 상인
  • 경강의 다양한 상인들
이욱

세곡 운송을 돕거나 작은 규모의 선상이 활동하던 한강 연안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부(富)가 소수에게 집중되면서 토지를 잃고 농촌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들은 비교적 일거리가 풍부한 한양으로 모여들었고, 결국 한양 외곽과 한강 연안에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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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도(都城圖)
도성도(都城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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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한강 연안은 물자의 유통 기지로서 기능이 더욱 강화되었다. 이는 조선 왕조의 조세 수취 체계가 변했기 때문이었다. 조선 후기 재정사(財政史)에서 중요한 변화는 대동법(大同法)의 시행이었다. 대동법의 시행은 정 부에서 필요한 물건을 현물 형태로 수취하지 않고 시장 경제에 의존해서 구입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한양에 많은 상품이 원활하게 반입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조선 정부는 많은 물자가 한양으로 원활하게 공급될 수 있도록 한양에서 100리 이내 지역에는 장시를 개설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와 같은 변화를 배경으로 한강 연안의 상품 경제는 더욱 활성화되었다. 즉, 인구가 많이 모여 살면서 파생되는 각종 수요를 충당해야 할 필요성뿐 아니라, 한양에 반입되는 다양한 상품을 원활하게 도성 안으로 공급하는 일까지 맡게 되었다. 이렇게 한강 연안은 전국의 상품이 집하되고 다시 반출되는 곳이었으므로 이곳에 기반을 둔 상인층은 다양할 수밖에 없었다. 도성에서 확대되어 설치된 시전 상인, 외방에서 올라오는 선상을 접대하고 상품 매매를 중개하여 구문(口文)을 받는 경강 여객 주인, 조세곡 운송을 전담한 경강 선인, 전국을 다니면서 지역의 가격차를 이용해 상업 활동을 하던 경강 선상(대체로 경강 선인은 경강 선상을 겸하였음), 한강 상류에서 내려오는 목재를 판매하는 목재 상인, 하역 운수업자, 장빙업자(藏氷業者), 또 경강이 유흥가의 면모를 갖추게 되면서 주류 판매업에 종사하는 상인 등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 특히 주목해야 할 존재는 여객 주인이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거상군(巨商群), 이른바 사상 도고(私商都賈)로 불리던 상인에는 경강 상인, 개성 상인 등이 있었다. 경강 상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게 활동한 상인이 여객 주인이었다.

요즘은 도매상, 소매상, 백화점, 슈퍼마켓, 농협 창고, 냉동 창고, 통신 판매, 은행, 보험 회사, 오퍼상 등 상인의 종류도 다양하고 전문화되어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는 자본 규모가 큰 도매 상인이 창고업과 금융업, 위탁 판매업, 무역업, 숙박업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물품과 화폐, 신용의 흐름을 장악하였다. 그러한 상인이 바로 여객 주인이다.

조운선(漕運船)을 상대하던 선주인(船主人)들이 여객 주인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한양으로 반입되는 물자가 많아지고 그만큼 지방에서 한양으로 상품을 팔러 오는 상인들이 많아지자 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상품 거래가 이루어지도록 매매를 중개해 주고 구문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여객 주인업까지 겸하였다. 나룻배를 운영하던 사람들도 여객 주인업을 겸하였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주막을 경영하여 점차 장사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다. 당시 경강에는 600∼700곳에 달하는 술집이 있었다고 하며, 술을 빚기 위해 수만 석에 달하는 쌀이 소비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주막의 손님들은 주로 시골에서 상품을 팔러 온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주막 주인은 자연히 그 사람들의 상품을 보관해 주고 보관료를 받기도 하고, 흥정을 붙여 주고 구문을 받는 거간 노릇도 하며, 돈이 급한 사람에게 비싼 이자로 돈을 빌려 주기도 했을 뿐 아니라, 때로는 자신이 직접 그 물건을 사서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붙여 팔기도 하는 등 소상인(小商人)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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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선
조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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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외에도 당시 정부나 민간에서 필요로 하는 얼음을 공급하는 것도 경강 연변 사람들의 몫이었다. 즉, 한겨울에 한강이 얼면 얼음을 채취해서 빙고(氷庫)에 저장해 두었다가 여름에 꺼내 팔거나 정부에 조달하는 일을 맡았다. 지금은 없어진 밤섬 사람들처럼 그들이 타고 다니는 배를 전문적으로 만들고 수리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편 지방에서 이주한 사람들은 주로 경강에 들어온 화물을 하역하고 운반하는 대가로 먹고사는 초기 부두 노동자 같은 일로 생계를 이어갔다. 이른바 하루 일하지 않으면 사흘 먹을 것을 잃어버리는 품팔이 노동자가 다수를 차지하였고 군병이 나 행상으로 연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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