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3권 거상, 전국 상권을 장악하다
  • 제1장 상인과 정치 권력
  • 4. 보부상과 혜상공국·황국 협회
  • 혜상공국·황국 협회의 설립과 보부상의 특권
  • 보부상의 지배 질서 편입 욕구
이욱

우리 몸속의 혈관처럼, 상인들은 두 다리로 전국을 누비면서 필요한 물자를 공급해 주었다. 그러면서도 사회에서 온갖 천대와 멸시를 받았던 보부상들은 좌절하지 않고 서로 도와 가면서 고단한 삶을 견뎌 나갔다.

그러는 한편으로 보부상은 사회의 천대에 맞서 자부심을 가지려고 노력했는데, 그런 노력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엄격한 규율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 규율은 주로 성리학적 질서를 바탕으로 삼고 있었다. 물론 동료의 불행, 질병, 죽음을 외면한 자들도 대상이었지만, 주로 부모에 불효하고 형제끼리 우애가 없는 자, 술 주정한 자, 불의를 저지른 자, 언어가 공손하지 못한 자, 어른을 능멸한 젊은이 등이 대상이었다.

비록 천대받고 멸시받는 상인이었지만 규율을 통해 사회가 정한 규칙이나 예의범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함으로써 자부심을 높였던 것으로 보인다.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위선적인 양반들의 행태를 숱하게 보았고, 그들의 비도덕적인 작태에 끝없는 환멸을 느끼면서, 천한 상것이요 배 운 것 없는 장돌뱅이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지킬 것은 지킨다는 그런 자부심이야말로 그들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근본이자 정신적인 지주였다.

그러나 욕하면서 배운다고 이러한 행동의 뒷면에는 체제에 순응하고 기회만 되면 사회가 용인하는 질서 속으로 편입하려는 욕망이 숨어 있었다. 이러한 것은 보부상의 가장 대표적인 복장인 솜뭉치가 달린 패랭이와 그들만의 독특한 지팡이인 촉작대에 얽힌 전설에서 잘 드러난다.

촉작대는 일명 물미장이라고도 부르는 것으로 지게를 받칠 때 쓰는 지팡이이다. 이 지팡이 끝에는 용을 새겼는데, 이것에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관련한 전설이 있다.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에 변방에서 전쟁을 하다가 화살을 맞고 신음하던 것을 보부상 백달원이라는 사람이 지게를 지고 삿갓을 쓰고 지나가다가 구해 주었는데, 나중에 이성계가 임금이 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 준 것이 촉작대라는 것이다. 그래서 왕을 상징하는 용이 보부상의 지팡이에 새겨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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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상 복원도
보부상 복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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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랭이에 달린 솜뭉치도 마찬가지이다. 대개 보부상들은 패랭이에 솜뭉치를 좌우로 두 개 매달았다. 하나는 보부상 가운데 목화 장수였던 사람이 상처를 입은 이성계를 응급 치료했기 때문에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왼편에 솜뭉치를 달게 하였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병자호란 때 역시 보부상이 상처를 입은 인조를 치료해 주었는데, 인조가 이를 포상하면서 이성계의 고사를 따라 오른편에 솜뭉치를 달게 하였다고 한다. 이래서 보부상은 패랭이에 솜뭉치를 두 개 단다는 것이 보부상 사이에 내려오는 전설이다.

천대받던 보부상이 조선 건국에 일조하였다는 자부심이요, 병자호란 때 죽을 뻔한 왕을 구하였다는 자부심이었다. 이러한 자부심은 결국 조선 사회가 요구하는 성리학적 질서에서 자신들 역시 이탈하지 않으려는, 아니 어쩌면 지배 계층이 요구하는 질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사회적 존재감을 인정받으려는 욕망의 표현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갑오농민전쟁(甲午農民戰爭)이나 독립 협회 해체 때 관의 ‘앞잡이’로 나서 농민이나 민중에 맞서 싸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일정한 재산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양반이나 지배 계층의 일원으로 합류하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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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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