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3권 거상, 전국 상권을 장악하다
  • 제2장 시전 상인의 조직과 도성 문화
  • 4. 시전의 조직과 영업 구조
  • 시전 상인의 위계와 가입 조건
고동환

시전 상인은 어떤 조직과 방식으로 상업을 영위했을까? 시전은 도중(都中)이라는 동일 상품을 취급하는 개별 상인들의 동업 조합 조직이며, 조합의 사무실과 창고를 갖춘 도가(都家)가 있었고, 이러한 도중 산하에 각기 조합원끼리 다른 판매 조직을 구성하여 운영하였다. 시전은 전(廛)이라는 도원(都員)이 영업하는 물적 설비와 이 설비를 소유하는 도중이라는 인적 조직의 결합체였다. 따라서 시전은 인적 조직인 도중과 물적 설비인 전을 포함하는 영업 조직을 분리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32)이하 시전 도중의 조직과 운영에 대해서는 고동환, 「조선 후기 시전의 조직과 기능」, 『역사와 현실』 44, 한국역사연구회, 2002 참조.

모든 시전 상인은 시전 도중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했으므로 시전 상인을 다른 한편으로 도원(都員)이라고도 불렀다. 오늘날 대부분의 회사에서 사원을 평사원, 주임,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이사 같은 위계로 편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전에도 이러한 위계가 존재하였다. 이러한 위계는 시전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었지만, 대체로 군중(群衆·軍中), 시행수(時行首), 십좌(十座), 오좌(五座), 선생(先生) 또는 영위(領位)로 편성되었다.

시전의 위계를 정하는 기준은 도원의 나이였다. 시전 상인이 되려면 24세 이전에 가입해야 하였다. 아직 장가가지 않은 사람이 시전 상인으로 나올 때는 아동(兒童)으로 수습 기간을 거쳐 24세 이전에 도원으로 정식 자격을 취득하였다. 그러므로 나이를 서열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단순히 연장자 우대가 아니라 시전 상인으로 실제 복무한 기간을 반영한 경력자 우대 취지였다. 오늘날의 연공서열(年功序列)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 시전의 위계도 이러한 연공서열이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였다.

도원은 일정한 자격 요건을 갖추면 승진하였는데, 지전에서는 군중은 37세면 시행수로 승진했고, 40세가 되면 십좌로 승진하였으며, 50세가 되면 오좌로 승진하였다. 최고위직인 선생은 영위 또는 영좌(領座)로도 불렸는데, 대개 60세가 되면 승진하였다. 그리고 70세 이상을 칠십영좌(七十領座)라 하여 크고 작은 연회 때에 차린 음식 등을 따로 보내는 예우를 하였다.

도원들은 승진할 때마다 도중에 승진 축하금으로 예전(禮錢)을 냈다. 입전에서는 시행수로 승진할 때 12냥, 십좌 18냥, 오좌 12냥, 영위 5냥을 냈고, 도자전에서는 십좌 10냥, 오좌 7냥을 내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입전에 비해 도자전은 영세했으므로 승진 때 부과하는 예전에도 차이가 있었다.

한 시전을 구성하는 전체 상인은 어느 정도였을까? 지금 각 시전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여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육의전에 포함된 시전의 경우 군중은 500∼1,000명, 십좌와 오좌는 각각 50∼100명, 선생은 보통 20∼30명이었다. 이로써 육의전을 구성하는 한 시전의 상인 수는 모두 600∼1,200명 정도였음을 알 수 있다.

시전 상인들은 나이가 들면 일반적으로 영업에서 물러나 자신의 아들이나 사위에게 영업권을 승계시켰다. 이들은 시전 도중에 새로 가입하여 도원으로서 권리와 의무가 있게 된다. 이처럼 시전에 새로 가입하는 형태는 기존의 도원과 혈연관계에 있는 자와 없는 자로 구분되었다. 혈연을 매개로 도중에 가입하려면 도원 중에서도 선생직(先生職) 이상의 사람과 혈연관계가 있어야 하였다.

도원과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상태에서 시전 도중에 가입하는 형태를 판신래인출시(判新來人出市)라고 하였다. 새로 가입하는 사람은 시전 도중에 가입비와 신참 신고식에 따른 비용인 면흑례전(面黑禮錢)을 납부해야만 도원이 될 수 있었다. 시전 도중은 은퇴하는 선생과 혈연관계의 원근에 따라 가입비와 면흑례전을 차별함으로써 혈연적으로 가까운 사람을 우대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상당한 가입비와 면흑례전을 부과하였다.

예컨대 입전에서는 현재 영업하고 있는 시선생(時先生)의 아들과 사위에게는 가입비로 3냥을 거두었지만, 이미 은퇴한 구선생(舊先生)의 아들과 사위에게는 6냥을 거뒀다. 구선생의 손자에게는 20냥, 시·구선생의 외손자나 진증손에게는 25냥, 외손자사위와 진증손자사위에게는 30냥을 거두었다. 또한 면흑례전의 경우도 시·구선생의 아들이나 사위가 승계할 때는 면제되었지만, 외손이나 증손·손자사위 등이 승계할 때는 20∼25냥을 따로 거두었다. 영업권의 승계 권리는 남계(男系)와 여계(女系)를 동일하게 대우하였지만, 가입비는 남계의 승계 권리를 우대하였다.

영업권의 계승도 당시의 신분제와 친족제의 상황을 반영하여 다양하게 제한하였다. 입전에서는 선생과 천인(賤人) 사이에 태어난 자식에게는 영업 계승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지전(紙廛)에서는 서자(庶子)의 계승권을 부정하였으며, 양자(養子)로 입참(入參)한 사람은 예조 입안을 상고한 후에 가입을 허락하였고, 선생의 아들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입후(立後)한 자도 계승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판신래인은 도원의 추천과 도중 전체의 동의를 얻은 후에 비로소 가입할 수 있었다. 상첩(賞帖)을 받은 도원이 추천할 경우는 가입비를 할인해 주는 혜택도 주어졌다. 특히 지전에서는 추천된 사람에 대해 방중(房中)에서 투표하여 가입 반대표가 3표 이상이면 가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도원들의 동의를 얻어 가입이 허락되면, 판신래인은 가입비로 예은(禮銀)과 면흑례전을 내야 했다. 이 비용은 선생의 혈족보다 훨씬 많았다. 입전에서는 선생의 아들과 사위에게는 가입비로 3냥만 부과하였지만, 판신래인에게는 가입비 50냥에 면흑례전 40냥을 부과하였다.

판신래인의 가입에도 일정한 제한이 있었다. 입전에서는 다른 업종에 종사하는 시전 상인의 신규 가입을 불허하였으며, 나이가 오좌나 십좌에 달한 경우에 가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신입 도원의 가입 조건을 볼 때 시전 도중은 혈연과 인척 관계를 중심으로 한 폐쇄적인 조직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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