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3권 거상, 전국 상권을 장악하다
  • 제2장 시전 상인의 조직과 도성 문화
  • 4. 시전의 조직과 영업 구조
  • 시전의 영업 구조
  • 영업 조직
고동환

시전은 크게 상인들의 동업 조합으로서의 도중과 판매 영업 조직으로 구분된다. 앞서 살폈듯이 도원은 도중의 규약을 준수하고 도중의 경비를 납부하는 의무가 있었지만, 도원들의 영업 행위는 도중에게 일일이 간섭받지 않고 완전 독립하여 영업하였다. 도원은 독립 자영업자였고, 도중은 독립 자영업자들이 자신들의 권리와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인 셈이다. 그러므로 도원은 같은 시전에 속해 있는 상인이긴 했지만, 동일한 상품을 판매하는 상인으로서 상호 경쟁적인 처지에 있었다.

시전의 영업 조직은 어떻게 편성되었을까? 면주전 관계 자료를 통해 면주전의 영업 조직을 살펴보자. 면주전은 국산 명주를 판매하며, 8분역을 부담하는 육의전 가운데 하나이다. 면주전에는 면주전 도중이 있었고, 산하 에 수주계(水紬契), 토주계(吐紬契), 백사계(白絲契), 조비계(措備契), 무주계(貿紬契), 생식계(生殖契) 등 계 조직이 있었다. 계는 계의 명칭에서 보듯이 주로 면주전 영업의 분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수주계, 토주계, 백사계는 판매 물종별로 조직되었으며, 무주계는 국산 명주 구매를 전담하는 조직이고, 생식계는 도원들끼리 자금을 조성하여 금융 업무를 담당한 조직이고, 조비계는 시전 도중의 각종 업무를 처리하는 조직으로 보인다. 이들 계는 독립 회계 단위로 운영된 것으로 추정한다.

수주계는 산하에 1소(所), 2소 등이 따로 조직되었다. 수주계 2소는 주로 한양의 북문 근처에서, 1소는 중부 지역에서 영업하였다. 면주전에서 수주를 판매하는 영업 조직은 장소를 달리하여 두 군데 존재하였고, 이들은 수주계 산하의 소(所) 단위로 편성되었다.

이처럼 영업 장소에 따라 조직된 소와 달리 종로 시전 행랑에서 영업하는 조직으로 방이 있었다. 면주전에는 1방, 2방, 3방, 후1방(後一房), 후2방, 후3방, 외3방(外三房)으로 모두 7개의 방이 있었다. 각 방에는 2명에서 20여 명의 도원이 있었고, 방을 총괄하는 우두머리인 수두소임(首頭所任)이 있어, 방에서 영업하는 상인들이 시전 도중에 납부하는 분세를 징수하였다. 방의 구성원은 고정되지 않고 6개월마다 일부분 교체되는 것이 상례였다.

입전은 1방에서 7방으로 구분되었고, 포전은 5방으로 구분되었으며, 각 방은 10간(약 10평)으로 나뉘었고, 다시 각 간을 10분하여 도원은 그곳에서 영업하였다.

종로의 시전 행랑 외에도 시전 상인은 자신의 집에서도 상품을 판매할 수 있었는데, 이를 재가(在家)라고 하였다. 종이를 판매하면 ‘지전재가(紙廛在家)’, 면포를 판매하면 ‘면포전재가(綿布廛在家)’라는 간판을 걸고 자신의 집에서 영업하였다. 시전 상인이 독립적인 자영업자였으므로 이런 영업이 가능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시전의 영업 조직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매우 복잡하였다. 동업 조합 조직으로서 도중이 있었고, 도중 산하에 담당 업무나 판매 물종별로 계가 조직되었으며, 판매 장소별로 소가 자리하였다. 또한 실제 영업을 담당하는 장소인 행랑 내부에 기초적인 영업 조직으로서 방이 있었다. 그래서 시전 상인은 대부분 방에 소속되어 영업하였고, 방에 소속되지 않은 상인은 자기 집에 독립 점포를 개설하여 영업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시전의 복잡한 영업 조직의 편성은 똑같이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지녔으면서도, 이들이 단일한 회사 조직에 예속된 것이 아니라 개별 상인의 독립적인 활동에 따라 영업이 이루어졌다는 특성에서 비롯되었다. 즉, 시전 상인은 같은 시전 소속 상인이라고 해도 다른 방에서 영업하는 상인과는 완전히 독립적인 회계가 있었다. 다만 동일한 방에 소속된 상인은 기본적으로 공동 구매, 공동 출자, 공동 회계를 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동일한 방에 소속된 상인들 사이에는 무엇보다도 혈연적 유대를 토대로 한 강한 결속력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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