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3권 거상, 전국 상권을 장악하다
  • 제4장 개성 상인과 동래 상인
  • 1. 역사 속의 개성과 동래
  • 개성과 동래의 지명
정성일

개성이나 동래는 지금도 같은 이름으로 남아 있지만 그 영역이 과거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고대 개성은 청목령(靑木嶺)으로 불렸다. 고구려가 이 지역을 차지하였을 때에는 부소압(扶蘇押)과 동비홀(東匪忽)이라고 하는 두 행정 단위가 있었다. 그 뒤 신라가 이곳을 지배하면서 부소압은 송악군(松岳郡)으로, 동비홀은 개성군(開城郡)으로 개편되었다. 개성은 과거 고려 왕조의 수도였다. 고려를 세운 왕건은 이듬해인 919년 수도를 철원에서 개성으로 옮겼다. 이때 송악군과 개성군이 합쳐져 개주(開州)로 바뀐다. 개성은 본디 송악이었는데 고려 광종 이후 ‘서울을 열었다’는 의미의 개경(開京)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때부터 개경은 고려 왕조가 망할 때까지 고려의 수도로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뒤 조선 왕조가 들어서면서 한양으로 수도가 옮겨감에 따라 개성은 심한 타격을 입게 된다. 1394년의 1차 한양 천도와 1399년의 개경 환도 그리고 1405년 2차 한양 천도를 거치면서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커다란 변 화가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격변이 개성 지역의 경제에 심한 충격을 가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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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남대문
개성 남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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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를 지나 1945년 광복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때 개성은 한반도의 분단과 함께 남북으로 나뉘고 만다. 미군과 소련군이 38도선을 기준으로 한반도를 분할하여 점령할 때 개성시는 남한에 속하게 된다. 그러나 개풍군과 장단군의 일부는 북한 땅으로 넘어가 장풍군으로 통합되었다. 1950년 6·25 전쟁 이후 휴전과 함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개성시와 개풍군·장단군 일대가 군사 분계선 이북의 북한 관할 아래 들어갔다. 현재 개성은 북한의 직할시로 되어 있다.

한편, 동래의 지명은 현재 부산광역시 동래구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삼한시대 동래는 변진(弁辰) 독로국(瀆盧國)의 유지(遺址)이며 한때 거칠산 국(居漆山國)의 치소였다. 그 뒤 이 지역이 신라에 병합되면서 거칠산군으로 바뀌었다. 757년 통일신라의 지방 행정 제도 개편 때 중국식 한자음으로 고치면서 동래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동래(東萊)란 동쪽의 내산(萊山)을 말하는데, 이것은 신선이 산다는 봉래산(蓬萊山)의 약칭이다. 일설에 따르면 삼한시대의 독로(瀆盧)가 ‘동네 → 동래’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부산부가 설치되고, 1914년 군·면 통폐합에 따라 이전 동래부의 일부와 기장군이 합쳐져 동래군으로 편제되었다. 1949년 8월 15일 부산부가 부산시로 개칭되고, 1957년 1월부터 구제의 실시로 동래구로 편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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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제국기』
『해동제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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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동래부(東萊府)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동래는 오늘날의 부산을 대표하는 지명이었다. 15세기에 간행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세종실록지리지』,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纂地理志)』 등에 ‘동래 부산포(東萊富山浦)’라 되어 있다. 신숙주(申叔舟)의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에도 ‘동래지부산포(東萊之富山浦)’라 적혀 있으며, 같은 책의 삼포왜관도(三浦倭館圖)에도 ‘동래현 부산포(東萊縣富山浦)’라고 기록해 놓고 있다. 이때의 부산포는 부자 부(富) 자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성종실록』에 처음으로 현재의 지명과 같은 한자 표기인 부산 (釜山)이라는 명칭이 나타났다.107)『성종실록』 권1, 성종 원년 12월 갑자. 1474년 4월 남제(南悌)가 그린 「부산포지도」에는 여전히 부산(富山)이라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 시기까지만 해도 두 글자가 섞여 쓰이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뒤 기록에서는 부산포(釜山浦)로 정착되어 간다. 부산의 지명 변천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 완성된 1481년부터는 부산(釜山)이라는 지명이 일반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여튼 조선시대에는 동래 안에 속해 있던 한 지역이 부산이었다. 그런데 개항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그것이 역전되고 만다. 동래부의 외딴 지역에 지나지 않았던 부산포를 가리키는 부산이라는 지명이 오늘날에는 이 지역의 대표 브랜드로 부상한 반면, 거꾸로 동래는 부산광역시 16개 구 가운데 하나인 동래구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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