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3권 거상, 전국 상권을 장악하다
  • 제4장 개성 상인과 동래 상인
  • 1. 역사 속의 개성과 동래
  • 개성 상인과 동래 상인의 범주
정성일

여기에서 말하는 개성 상인과 동래 상인은 역사 용어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는 엄밀하게 말하면 특정 시대에 특정 공간을 무대로 활동한 특정 상인 집단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지금 이 순간에 개성 상인이나 동래 상인이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우리 곁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에 그들은 역사의 변화와 함께 모습을 바꾸거나 감추고 말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의 정신이나 문화적 전통을 현재적 시점에서 다시 논의할 수는 있다.

개성 상인 또는 동래 상인이라는 말은 개성이나 동래라고 하는 지역을 나타내는 고유 명사에 상인이라는 보통 명사가 더해진 복합 명사이다. 그것이 특정한 의미를 지니는 역사 용어로 정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예를 들어 우리가 개성 상인이라고 할 때, 개성에서 활동하는 상인을 말하는가, 아니면 개성 출신 상인을 말하 는가? 동래 상인도 마찬가지이다. 동래라는 지역을 활동 무대로 하는 상인을 동래 상인이라고 하는지, 아니면 출신 지역이 동래인 상인을 가리켜 동래 상인이라고 부르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확대보기
사로승구도(槎路勝區圖)
사로승구도(槎路勝區圖)
팝업창 닫기

결론부터 말한다면 보통 우리가 개성 상인, 동래 상인이라고 말할 때는 상인의 출신지가 각각 개성이나 동래인 경우를 두고 그렇게 이름을 붙이는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면 6·25 전쟁 이후 월남한 이북 출신 경제인들 가운데 개성 상인의 후예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이미 남북 분단으로 개성에서는 활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출신 지역이 개성이라는 점 때문에 그들은 개성 상인의 후예로 불린다. 개성 상인의 전통의 맥을 잇고 개성 상인의 정신과 기질을 이어 받았다는 뜻으로 그렇게 불린다.108)홍하상, 『개성 상인』, 국일미디어, 2004.

그러나 사료를 통해서 엄밀하게 따져 본다면 개성 상인·동래 상인이 란 상업 활동의 주요 지역을 의미하는 명칭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흔히 동래 상인이라고 하면 그들의 출신 지역이 동래인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반드시 그렇지 않았다. 뒤에서 자세하게 언급하겠지만 1678년 이후 조선 정부는 ‘왜관 출입 동래 상인’, 즉 일본과 무역에 참여할 수 있는 상인의 규모를 제한하였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동래 출신 상인이 아닌 이른바 경상(京商)·송상(松商)도 포함되어 있었다. 경상은 수도 상인인 서울 상인을, 송상은 개성 상인을 의미함은 물론이다. 이것을 보면 동래 상인이 동래 출신 상인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요컨대 경상·송상·만상(灣商)·내상(萊商) 등은 상인을 그들의 주된 활동 지역 또는 근거지에 따라 구분하는 용례이다.109)김동철, 『조선 후기 공인 연구』, 한국연구원, 1993, 35쪽 ; 이철성, 「조선 후기 무역 상인과 정부의 밀무역 대책·사행 무역을 중심으로」, 『사총』 58, 역사학연구회, 2004, 85∼86쪽, 94쪽.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성 상인·동래 상인이라는 명칭은 따지고 보면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조선의 수도인 한양을 중심으로 하여 각 지방의 상인을 가리키는 말 가운데 하나였다. 즉, 서울 상인을 경상(京商)이라고 부르면서 이와 대칭이 되는 각 지방의 상인을 지역에 따라 평양 상인, 의주 상인, 개성 상인, 동래 상인 등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여 이들이 한곳에서만 상업 활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경상은 서울에서만 장사를 한 것이 아니다. 평양 상인도 17세기 이후 적지 않게 지방에 진출하여 상업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개성 상인이나 동래 상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활동한 상인들이라 할지라도 출신 지역에 따라 상인들의 장사 수법이나 기질·정신 등이 서로 달랐다. 즉, 다른 지방 출신 상인들과의 차별성 그리고 같은 지역 출신들끼리의 동질성, 이런 것들을 두고 개성 상인이니 동래 상인이니 하는 명칭을 붙였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