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3권 거상, 전국 상권을 장악하다
  • 제4장 개성 상인과 동래 상인
  • 2. 개성 상인의 활동과 정신
  • 개성 상인의 출현
  • 고려 왕조의 개경과 개성 사람
정성일

고려를 창건하여 개경에 도읍을 정한 왕건은 송악(松嶽) 지방 신흥 귀족의 후예이다. 그의 조상은 대대로 중국 당(唐)나라와 무역하여 축적한 부(富)를 바탕으로 상당한 정도의 해상 세력을 형성하였다. 그 해상 세력은 송악을 중심으로 패강진(浿江鎭)의 황해도 일부와 혈구진(穴口鎭)의 강화도 그리고 한강 하류 일대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개국 후에도 고려는 외국과 무역에 적극적이었다. 중국의 송(宋)나라, 아라비아의 다지국(大食國), 그리고 일본(倭)과 교역하였다. 이때 송악 근처 예성강 입구의 벽란도(碧瀾渡)는 국제 무역항의 구실을 하였다. 개경은 한 나라의 수도로서 대외 교류가 활발하였다. 외국 사신의 빈번한 왕래에 따른 공무역(公貿易)과 외국 상인과의 사무역(私貿易)이 번창하여 개경은 상업 도시로 크게 발전하였다.

흔히 예성강에서 임진강 유역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통틀어 개성 사람이라고 부른다. 앞에서 본 것처럼 개성은 시대에 따라 넓 어지기도 하고 좁아지기도 하였다. 행정 구역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그렇지만 개성 사람들은 한결같이 긍지를 느꼈고 개성 사람다운 동질성을 지니고 있었다. 개성이라고 할 때 우리가 맨 처음 떠올리는 것은 음식을 비롯하여 문화 유적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개성 상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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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폭원도(松都幅員圖)
송도폭원도(松都幅員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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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상인을 가리켜 송도(松都) 상인이라고도 부른다. 송도란 개경의 다른 이름이다. 개성 사람들은 그들의 독특한 문화 중심지였던 송악을 가운데 놓고 성곽 안을 가리켜 송도라고 불렀다. 그래서 개성 상인을 송도 상인이라 지칭했는데 이것을 줄여서 송상(松商)이라고도 하였다.

그렇다면 개성 상인은 언제부터 출현한 것일까? 개성 상인을 넓은 의미로 해석한다면 그 시작은 아주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개성 지역에서 상업이 시작된 고대 사회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개성 상인이 활약한 때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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