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상인은 이미 고려시대부터 중국과 대외 무역을 벌여 이윤을 획득하는 길을 알고 있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개성 상인 가운데 규모가 큰 이른바 대상인들은 국내 상업과 더불어 대외 무역을 통해 그들의 자본을 더욱 확대해 나갔다. 명나라와 일본을 잇는 대외 무역은 이 시기 개성 부상(富商)들의 자본 축적 수단이자 매우 중요한 기회였다. 그렇기에 건국 초기부터 조선 정부는 밀무역 금지를 기본 방침으로 정하였지만 서울 상인과 개성 상인의 밀무역 활동은 15세기 초반에 들어오게 되면 이미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1423년(세종 5) 중국으로 파견되어 가던 사신들 가운데 경상으로 추정되는 손석(孫錫)과 함께 개성 상인 박독대(朴獨大)가 끼어들었다가 그의 소지품 수량이 과다하여 문제가 된 사건은 잘 알려져 있다.127)『세종실록』 권22, 세종 5년 10월 을축, 병자 ; 박평식, 『조선 전기 상업사 연구』, 214쪽.
그 뒤 18세기에 이르러 개성 상인은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의 일행 속에 잠입하여 청나라 상인과 은·인삼 등을 직접 교역하는 밀무역을 일삼았다. 조선 초기에 이미 그 이익이 100배에 이른다고 하였으니,128)『선조실록』 권210, 선조 40년 4월 신해 ; 박평식, 『조선 전기 상업사 연구』, 216쪽. 인삼 무역은 이윤 추구를 목표로 삼은 상인들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기회였던 셈이다.
또한 개성 상인은 그들의 장기인 도고라고 하는 매점 방식을 동원하여 피혁·지물 등을 독점적으로 사 들인 다음 그것을 중국에 직접 수출하였다. 그 대신 중국에서 바늘·모자·말총·채련피(采蓮皮, 부드럽게 다룬 당나귀 가죽)·백삼승(白三升, 흰 무명)·궤자(가맛바탕)·잡품 등을 수입하였다. 개성 상인은 삼포(蔘圃)에서 인삼을 재배하기 이전부터 인삼을 미리 사들인 다음 그것을 일본에 수출하여 이윤을 획득하였다. 또한 일본에서 은을 들여와서 그것을 다시 중국에 수출하여 큰 이익을 얻었다. 개성 상인은 이렇게 해서 축적한 자본으로 인삼 재배와 가공, 광산 개발 등에 투자하였다.129)조병찬, 『한국 시장사』, 154쪽.
인삼밭
개성 상인이 자본을 크게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홍삼의 밀조(密造)와 밀수출 덕분이었다. 정부의 단속이 심하였으나 선박을 동원하여 밀수출을 하였다. 심지어 홍삼 제조장을 다른 지방에 두기도 하였다. 1864년(고종 원년)에 발생한 홍삼의 밀조·밀무역 사건에 연루된 인물 가운데 개성 사람들이 끼어 있었다. 그 가운데 홍병구(洪秉九)라는 인물은 개성 사람으로서 삼포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는 인삼의 주인으로 홍삼 밀조를 주도한 혐의를 받았다. 임시형(林時衡)은 개성 출신 삼상(蔘商)으로서 거간 노릇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동생인 임봉익(林鳳益)도 삼상이었는데 홍삼 밀무역의 주범이라 하여 체포되었다. 개성 상인과 중국말을 할 줄 아는 의주인이 공모한 조직적인 밀무역 사건이 이때 발각된 것이다.130)유승주·이철성, 『조선 후기 중국과의 무역사』, 경인문화사, 2002, 256쪽.
이 사건을 보더라도 개성 상인은 국내 상업과 더불어 대외 무역을 통하여 막대한 이윤을 얻고 있었다. 현재 전해지는 1880년 개성 상인의 회계 장부에서도 이러한 사실이 증명된다. 1874년 6월 13일부터 같은 해 8월 13일까지 불과 두 달 동안에 구입한 상품 총액(買得秩)이 3만 7,548냥 4전 5푼에 달하였다. 또한 그해 8월 13일 이후부터 10월 14일까지 2개월 동안 상품 구입 총액이 6만 6,011냥 8전 2푼에 이르렀다. 약 4개월 동안의 구입 총액이 무려 10만 냥이 넘은 것이다. 이것은 개성 유수부의 1년 총수세액보다 더 큰 규모였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사이에 개성 유수부의 연간 수세 총액이 6만 2,000냥을 조금 넘었으며, 19세기 말에도 8∼9만 냥을 넘지 못하였다.131)홍희유, 「송도 사개 문서에 반영된 송상들의 도고 활동」, 62쪽. 그런데도 2∼4개월 동안에 개성 유수부의 1년 세입 총액에 해당하는 규모의 상업 활동을 전개한 것을 볼 때, 개성 상인의 활발한 상업 활동과 높은 자본 축적의 실상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