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3권 거상, 전국 상권을 장악하다
  • 제4장 개성 상인과 동래 상인
  • 5. 한국 자본주의의 문화적 전통
정성일

개성 지역의 상업 행위가 오늘날까지도 한국 자본주의의 전통적 표상처럼 전해 내려오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외국 상인이나 외래 자본에 대한 대응 방법과 관련된 것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쳐 축적된 개성의 상업 지향적 분위기는 개항기와 일제강점기에 들어와서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조선 후기 대표적 사상 세력이던 경강 상인은 대부분 외래 자본에 종속되어 기생화(寄生化)의 길로 빠지고 말았지만 개성 상인은 사정이 달랐다.

개성 상인은 마지막까지 외래 상업 자본과 경쟁을 벌였다. 수로와 해로를 장악하고 있던 경강 상인과 달리, 육로를 통한 행상에 주력하고 있던 개성 상인은 적어도 1910년대까지는 일본 상인과 경쟁할 수 있을 만큼 여전히 과거의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고 평가된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와서도 민족 자본의 상업 활동에 대한 강한 공동체 의식은 외세의 침략과 외국 자본의 적극적인 침투에 맞서 가면서 더욱 활성화되고 공고해졌던 것이다.153)고동환, 「조선시대 개성과 개성 상인」, 219∼220쪽 ; 김영수, 「한국 자본주의 가치관의 역사적 전통」, 146쪽.

그런데 개항 이후 우리나라 경제가 근대적 산업 구조로 개편하기를 강요받던 상황에서 과연 개성 상인이나 동래 상인이 얼마나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응하였는가 하는 점은 다른 시각에서 면밀하게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근대화, 즉 자본주의의 길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전통적인 한국의 정서를 대변하는 개성 상인이나 동래 상인의 활동이 근대의 주역으로 끝까지 살아남았더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현실로 전개된 우리의 역사는 반드시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통과 근대의 역사적 단절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역사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개성 상인이나 동래 상인의 문화적 전통이 오늘의 상업 문화 발전과 연결되는 측면도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개인의 절제와 금욕만을 요구하던 중세의 가치관과 종교관에서 벗어나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하는 경제 활동이 개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본 막스 베버(Max Weber)는 일찍이 서구 자본주의의 정신적 토대를 프로테스탄티즘(청교도주의)에서 찾았다.154)김영수, 「한국 자본주의 가치관의 역사적 전통」, 147∼148쪽. 이렇듯 개성 상인이나 동래 상인의 정신과 활동은 오랜 유교적 전통 문화 속에서 근대를 향한 새싹으로서 피어날 가능성을 제시하였는지도 모른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고 하는 전통적 유교 이념에 바탕을 두고 상업을 천시하거나 억제하려는 정책 아래서도, 개성 상인이나 동래 상인은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을 동원하여 이윤 추구를 위한 노력을 부단히 하였으며 부를 축적하기 위해 전국의 시장을 누볐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북으로는 중국, 남으로는 일본으로 통하는 물류의 길목을 장악하면서 국내 시장과 해외 시장을 연결하는 물적·인적 네트워크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보여 준 근면성과 뛰어난 상술 그리고 투철한 상인 정신은 그 뒤로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예를 들어 개성 상인들이 개발한 송도 사개 치부법이라고 하는 회계 작성법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의 전통은 20세기 초반까지도 전수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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