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4권 근현대 과학 기술과 삶의 변화
  • 제1장 조선인에게 비친 과학 기술
  • 3. 일제 강점기의 과학 기술 교육
  • 일제의 근대 과학 기술 교육 정책
  • 대한제국의 적극적인 과학 기술 교육 정책
김근배

대한제국은 근대적인 과학 기술 문화를 뿌리내리고자 과학 기술 발전을 위한 여러 정책을 실시했다. 전기·통신·기차 등의 근대 서양 기술 문명을 적극적·자주적으로 도입하면서 이들 근대적 산업 기반 시설을 위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기관을 차례로 설립했다.

확실히 대한제국의 과학 기술 교육은 당시까지 걸음마 단계이긴 했지만 제국 열강의 정치 전략적인 왜곡 없이 점차 본궤도에 올라 뚜렷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1899년의 광무개혁으로 설립 인가된 관립 상공학교와 양지아문(量地衙門)의 견습생 제도, 제중원(濟衆院) 산하 의학교, 1900년에 관립으로 개교했던 광무 학교(礦務學校)를 들 수 있다. 또 이들 학교보다 이전에 설립되었으나 매우 불안정하게 운 영되었던 우무 학당(郵務學堂)과 전무 학당(電務學堂)도 이런 시너지 효과에 힘입어 차츰 운영에 내실을 기하기 시작하였다.

교육 부문에서 근대 과학 기술의 토대를 닦고자 하는 노력을 대한제국 정부에서만 기울였던 것은 아니었다. 민간 차원에서도 이런 노력을 꾸준히 시도하였고 점차 눈에 띄는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사립 교육 기관도 잇따라 설립되었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한성 직조 학교, 철도과와 공업 제조과가 있는 낙영 학교, 양지 속성과(量地速成科)가 있는 흥화 학교, 철도 학교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함께 근대 과학 기술을 서양에서 직접 배우려고 하는 많은 대한제국의 학생은 외국으로 유학을 떠났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공부를 마치고 들어오는 이들도 점차로 늘어났다. 1899년에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관비 유학생 자격으로 일본에 간 사람 중에서 10여 명이 기술 전문학교 수준의 교육을 이수하고 돌아왔다. 이들은 이후 과학 기술 교육 기관이나 관련 산업 기관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조선의 과학 기술계를 주도적으로 이끈 인적 자원이 되었다. 정부가 추진한 관비 유학 이외에 개인 비용을 들여가면서 유학을 떠나는 이도 점차 그 수가 늘어나는 추세였다. 1900년에 대한제국 정부는 각종 기술 경연 대회와 산업 장려 박람회를 주도적으로 개최하여 과학 기술을 장려하려는 정부의 의지를 한껏 천명했다. 이때를 전후로 조선에는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고, 전신과 철도도 도입되었다. 일제가 조선 식민 지배를 본격화하기 전인 대한제국 시기에,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근대적 과학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반을 확실히 다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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