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4권 근현대 과학 기술과 삶의 변화
  • 제2장 다른 길로 들어선 남·북한 과학 기술
  • 3. 북한 과학 기술의 어제와 오늘
  • 다시 강성 대국을 향해
김근배 김태호

주체 과학이라는 기치는 1960년대 북한 과학 기술의 성공에 힘입어 나부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과학 기술의 형식과 내용을 규제하는 규범으로 군림하면서, 주체 과학의 이상은 북한 과학 기술의 발전을 제약하였다. 특히 외국과의 학술 교류가 끊긴 것은 북한 과학 기술에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의 북한의 과학 기술은 극히 몇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게 되었다. 특히 첨단 기술·소비재 기술·기초 과학 부문의 낙후성이 두드러졌다.

이런 문제를 누구보다도 절실히 느낀 것은 북한의 과학 기술자들이었다. 더욱이 1970년대 중·후반이 되면서 그동안 북한에 뒤처져 있었던 남한의 산업과 과학 기술이 북한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북한의 정치 지도자들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1980년대 중반이 되자 북한으로서도 자신들의 낙후함을 인정하고 새로운 발전 방향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학과 기술의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주체 과학이나 주체 기술에 대한 강조가 한층 누그러지고, 대신 ‘과학 기술에서의 주체’ 같은 정도로 완곡하게 표현되기 시작했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하면서 이런 변화는 한층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북한 정부는 과학 기술자들을 산업 현장에 무리하게 동원하던 관행을 개선하고 전문적인 연구 활동을 상당 부분 보장하기 시작했다. 또 그동안 등한시해 온 고급 전문 지식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영재와 수재 교육 기관이 생겨났다. 예컨대 컴퓨터와 과학 부문의 영재 중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나이가 어려도 대학에 곧바로 들어가, 20∼30대에 준박사(準博士)나 박사 학위를 딸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20여 년의 은둔을 통해 벌어진 격차는 단숨에 따라잡기에는 너무 버거운 것이었다. 오늘날 북한 과학 기술의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다. 대체로 주체 과학의 취지와 잘 맞는 분야인 지질학·군사 기술·핵물리학·석탄 화학·공작 기계·고려 의학·소프트웨어 등 몇몇 분야에서는 남한과 비교하더라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기초 과학·컴퓨터 과학·생명 공학·통신 기기·신소재·반도체·신의약·에너지 등은 낙후된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더욱이 1990년대 중반의 북한은 과학 기술만 세계 수준에 뒤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의 붕괴는 북한 산업의 뿌리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여기에 1990년대 중반의 대홍수는 농업 생산의 기반마저 무너뜨렸다. 세계화의 바람이 부는 가운데, 세계에서 얼마 남지 않은 사회주의 나라인 북한은 물자와 정보의 교류에서 소외되었다. 석유·전기·비료·공업 원료 등 산업과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이 모자랐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북한이 기대를 걸었던 것은 고등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었다. 북한의 정책 입안자들은 많은 투자가 필요한 중화학 공업보다는 수준 높은 인력만 있다면 선진국과의 격차를 빠른 시일에 좁힐 수 있는 정보 통신과 소프트웨어 분야에 많은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이 분야에서는 현재 남한과 의 합작도 다각도로 추진되고 있다. 또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로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생물 공학·열공학·신소재 공학 등도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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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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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과학 기술은 국력의 뒷받침이 있어야 발전할 수 있다. 따라서 1990년대 중반의 경제난에서 충분히 회복되지 못한 북한의 과학 기술이 세계 수준을 따라잡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과학 기술의 사회적 위상은 여전히 높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강성 대국(强盛大國)’이 북한의 새로운 신조로 떠오르면서 과학 기술의 중요성은 다시금 강조되고 있다. 강성 대국이란 정치사상 강국·군사 강국·경제 강국을 말하는데, 뒤의 두 가지는 과학 기술의 뒷받침이 없이는 불가능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대중들에게 인공위성 광명성 1호는 김일성의 사망 이래로 지속돼 온 ‘고난의 행군’을 끝내고 강성 대국 건설이라는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다는 신호였다.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건국 후 6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과학 기술은 여전히 북한 사회를 이끄는 하나의 ‘사상’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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