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4권 근현대 과학 기술과 삶의 변화
  • 제2장 다른 길로 들어선 남·북한 과학 기술
  • 4. 과학 기술자이자 시민으로
  • 후발 주자에겐 그에 맞는 잣대가 필요하다
김태호

무슨 일이건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가 똑같을 수는 없다. 배우는 이는 가르치는 이가 보기에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그지없이 쉬운 것도 일러 주기 전에는 깨닫지 못하곤 한다. 마치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되풀이한다.”는 생물학의 격언처럼, 개인의 자질에 따라 빠르고 느린 차이는 있겠으나, 배우는 이는 가르치는 이가 예전에 밟았던 차례를 그대로 따라가게 된다. 물론 열심히 배우고 익히면 나중에는 가르치는 이를 얼마든지 넘어설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가르치고 배우는 동안만큼은 배우는 이와 가르치는 이를 평가하는 잣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비록 한때 수준 높은 전통 과학 기술을 키워 나가기도 했으나 19세기 말이 되자 서양에서 자라난 근대 과학 기술을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배워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약 1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는 이미 근대 과학 기술의 많은 부분을 배웠지만, 아직도 우리는 과학 기술을 배 우는 쪽이다. 따라서 근대 과학 기술을 낳고 완성한 서양의 과학 기술과 과학 기술자와 같은 잣대로 한국의 과학 기술과 과학 기술자를 평가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다.

우리가 서양의 과학 기술자를 평가할 때는 “얼마나 독창적인 연구 업적을 냈는가?” 또는 “다른 과학 기술자들보다 얼마나 뛰어난 연구 결과를 남겼는가?” 등이 기준이 된다. 하지만 한국의 과학 기술자를 평가하는 잣대는 이와 달라야 한다.

한반도에 근대 과학 기술이 들어온 지는 한 세기 넘게 지났지만, 우리나라에서 과학 기술자들이 연구를 주업으로 삼은 것은 이제 막 한 세대가 될까 말까한 최근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전까지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들은 허송세월을 했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일찌감치 안정된 연구 기반을 갖춰 놓은 서양이나 일본의 과학 기술자들보다 더 힘들고 더 바쁜 나날을 보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나라의 과학 기술자들은 과학 기술이란 무엇인지, 그것을 배우고 익히면 왜 좋은지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과학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를 세웠고, 학교에서 쓸 교재를 짓거나 우리말로 옮겼으며, 때로는 자신의 연구 욕심을 접어 가면서까지 다음 세대의 인재를 키우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일부는 자신의 과학 기술 지식을 산업에 응용하기 위해 학교나 연구소가 아닌 공장을 일터로 잡았다. 또 다른 이들은 과학 기술 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국가 정책을 세우기 위해 정책가나 행정가로 변신하기도 했다.

우리가 뉴턴이나 아인슈타인과 같은 탁월한 연구 업적을 이들에게도 기대한다면, 그것은 지나치게 불공평한 처사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연구를 하기에는 형편이 너무 어려웠거나 연구에 몰두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연구 업적으로만 따진다면 이들 가운데 우리 기억에 남을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에 현재와 같은 수준의 과학 기술도 존재할 수 없다. 이들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자신이 속한 사회에 의무를 다하기 위해 개인적인 꿈을 희생해야만 했다. 만일 이들이 더 나은 연구 업적을 남기겠다는 꿈에만 매진하여 미국이나 일본 같은 과학 기술 선진국에서 연구에만 전념했더라면, 그 가운데서 노벨상을 받는 이도 혹 한둘쯤 나왔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의 과학 기술은 전반적으로 상당히 뒤떨어진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훌륭한 과학 기술자란 개인적으로 뛰어난 연구 업적을 남긴 이들뿐 아니라 우리나라 과학 기술 발전의 터전을 닦은 이들을 함께 아울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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