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4권 근현대 과학 기술과 삶의 변화
  • 제2장 다른 길로 들어선 남·북한 과학 기술
  • 4. 과학 기술자이자 시민으로
  • 과학 기술 정책의 틀이 잡힌 1970년대
김태호

1960년대에는 경제 개발 정책이 궤도에 오르면서 과학 기술자가 사회에 이바지하는 몫도 크게 늘어났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해외로 유학을 떠나 돌아오지 않던 과학 기술자 중 상당수가 귀국길에 오르기도 했다. 그에 따라 과학 기술자들의 사회적 영향력도 강화되었다.

오원철(吳源哲, 1928∼)은 서울 대학교 공대 화학 공학과를 졸업한 뒤 시발(始發) 자동차 공장장(1957)을 거쳐 국가 재건 최고 회의 기획 조사 위원회 조사 과장(1961)으로 관계에 진출하였다. 이후 상공부에서 승진을 거듭, 1971년에는 대통령 경제 제2수석 비서관으로 발탁되어 박정희 정부가 끝날 때까지 경제 및 산업 정책의 수립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1974년부터는 중화학 공업 기획단 단장을 겸직하며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 시기 과학 기술 정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연구자 출신의 과학 행정가인 최형섭(崔亨燮, 1920∼2004)이다. 그는 일본과 미국에서 금속 공학을 공부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으며, 중년 이후 과학 정책가로 변신하여 큰 업적을 남겼다.

원자력 연구소 소장으로 출발한 그의 공직 생활은 한국 과학 기술 연구소(KIST)의 초대 소장(1966∼1971)을 거쳐, 무려 7년 6개월 동안의 역대 최장수 과학기술처 처장(1971∼1978) 재직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최형섭은 KIST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해외에서 활동하던 우수한 과학 기술자들을 파격적인 대우로 끌어들였으며, 연구소의 재정 자립을 위해 기업의 연구 과제를 위탁 받는 방식을 도입하는 등 KIST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 결과 KIST는 개발도상국의 국립 과학 기술 연구소로서는 드물게 성공을 거둘 수 있었으며, KIST의 운영에서 얻은 경험은 뒷날 다른 정부 출연 연구소들에 대부분 그대로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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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과학 기술 연구소(KIST) 건설 현장
한국 과학 기술 연구소(KIST) 건설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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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6월 과학기술처 처장에 취임한 최형섭은 과학 기술 개발의 방향을 과학 기술 발전의 기반 구축, 산업 기술의 전략적 개발, 과학 기술의 풍토 조성이라는 세 가지로 설정했다. 그는 이를 위해 1972년 기술 개발 촉진법과 기술 용역 육성법 등의 제정을 주도했으며, 국가 기술 자격 제도를 실시하여 기술 인력 양성의 효율화를 꾀했다. 또 연구 역량의 집중을 위해 대덕 연구 단지의 건설을 계획·추진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정책적 지원과 경제 성장에 따른 이공계 인력에 대한 수요 급증으로, 1970년대가 되면 과학 기술계는 다수의 우수한 인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이 시기 한국 과학 기술은 다른 개발도상국들의 주목을 받을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최형섭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도상국의 과학 기술 개발 전략을 정립하고, 다른 나라의 정책 자문에 적극적으로 응했다. 태국·파키스탄·말레이시아·스리랑카·방글라데시·버마(미얀마)·요르단·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세네갈 등 많은 개발도상국이 최형섭을 통해 한국 과학 기술 발전의 전략과 경험을 듣고자 했다.

최형섭 이래로 과학기술처의 위상은 크게 높아졌다. 과학기술처는 이후 과학기술부로 승격되었으며, 최근에는 장관이 부총리 급으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그 사이 과학기술처(과학기술부)의 처장(장관)은 주로 전문 행정가가 맡기는 했으나, 적지 않은 수의 전문 과학 기술자들도 장관으로서 국정에 참여했다. 화학 공학자 성좌경(成佐慶, 1920∼1986)은 한양 대학교와 인하 공대 등에서 연구·교육에 힘쓰다가 과학기술처 처장(1979∼1980)으로 입각하였다.

물리학자 정근모(鄭根謨, 1939∼)는 산업을 위한 응용 연구에 치중했던 KIST를 보완하기 위해 한국 과학원(KAIS) 설립을 주도한 바 있으며, 12대(1990)와 15대(1994∼1996) 두 번에 걸쳐 과학기술처 처장으로 재직했다. 이밖에도 과학 기술 행정이나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과학 기술자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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