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4권 근현대 과학 기술과 삶의 변화
  • 제3장 한국인이 배우고 개발한 과학 기술
  • 1. 녹색 혁명, 그 빛과 그림자
  • 국제 쌀 연구소와 한국의 신품종 개발
김태호

국제 쌀 연구소(IRRI)는 1962년 필리핀 마닐라에 설립되었다. 한국과 일본은 낟알의 길이가 짧고 밥을 지으면 찰기가 많은 자포니카(Japonica) 종 쌀을 주식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들 나라를 빼고는 아시아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낟알의 길이가 길고 밥을 지었을 때 찰기가 없는 인디카(Indica) 종 쌀을 즐겨 먹는다. 필리핀의 IRRI에서도 대부분의 아시아 사람들이 심고 먹는 인디카 종을 위주로 품종 개량 연구가 이루어졌다.

1960년대 초반에 IRRI에서는 소장인 챈들러(Robert F. Chandler Jr.)의 주도 아래 ‘IR8’이라는 신품종이 육성되었다. IR8은 키 작은 대만 품종 디저우젠(低脚烏尖, Deegeowoogen)과 인도 품종인 페타(Peta)를 교배시켜 얻은 반왜성(半矮性) 품종이다. 이것은 수확량이 많았고 이삭이 빨리 여물었으며, 화학 비료를 많이 주어도 뿌리가 썩지 않고 잘 견뎌 냈을 뿐 아니라 도열병에도 저항성을 보여 ‘기적의 벼(miracle rice)’로 일컬어졌다. IRRI에서는 필리핀 농민들에게 종자 2㎏씩을 공짜로 나누어 주는 등 대대적으로 IR8을 보급하였다. 비록 IR8은 쌀의 품질이 좋지 않아 큰 호응을 얻지는 못하였지만, 이를 개선한 IR24·IR36 등 후속 품종이 개발되면서 1970년대 후반에는 아시아 벼 재배 지역의 절반 이상에 IRRI가 개발한 반왜성 다수확 품종이 보급되기에 이르렀다.

쌀을 주식으로 삼는 세계 여러 나라의 농학자들은 IRRI를 찾아 자기네 나라의 기후와 식성에 맞는 신품종 개발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의 농학자들도 1964년부터 IRRI에서 연수를 받았다. 이 가운데 허문회(許文 會)는 IRRI의 육종 과장(plant breeder)이었던 비첼(Henry M. Beachell)의 지도를 받으며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다수확 신품종 육성을 시도했다. 비첼은 1965년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한국에서도 짧은 줄기 신품종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농촌진흥청에 조언하기도 했던 사람이다. 허문회는 IRRI에서 개발한 신품종들과 자포니카를 교배시켜 수확량이 높고 병충해에 잘 견디는 신품종을 만들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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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 시험 연구
벼 시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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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RI의 신품종 가운데는 디저우젠과 병에 잘 견디는 다른 인디카를 교배시켜 얻은 TN1(Taichung Native-1)이라는 것이 있었다. 허문회는 짧은 줄기의 자포니카 종인 유카라(Yukara)와 이 TN1을 교배시켜 1대 잡종을 얻었고, 이것을 다시 IR8(기적의 벼)과 교배시켜 2대 잡종으로 IR667을 얻었다. 이것이 바로 뒷날 통일벼로 불리게 된 품종의 원형이다.

IR667은 부모뻘인 IR8을 닮아 키가 작고 이삭이 빨리 팼으며 다수성(多收性)·내비성(耐肥性)·내병성(耐病性) 품종이었다. 허문회는 정근식(鄭根植) 등과 함께 IR667을 실용화하기 위한 연구를 계속하였다. 이들은 농림부 의 후원을 받아 IR667 종자를 우리나라에 들여와 육성하였다. 1967년에는 잡종 3대의 종자가 수원의 작물 시험장에 재배되었고 그 후손 가운데 우수한 계통이 선택되었다. 한편 1968년에 새로이 농촌진흥청장으로 취임한 김인환(金寅煥)은 이 연구에 큰 관심을 보이며 적극적으로 후원하였고, 농촌진흥청과 IRRI 사이의 기술 협약을 체결하였다. 농촌진흥청은 하루 빨리 IR667을 실용화하기 위해 이모작이 가능한 IRRI에 후속 잡종의 육성을 의뢰하였다. 필리핀에서는 후속 잡종들을 1년에 2세대씩 재배하여 우수 계통을 지속적으로 가려내었다. 그 결과 1970년 무렵에는 IR667-98-1-2 계통이 실용화 후보로 선정되어 IRRI에서 본격적인 종자 증식에 들어갔다. 대개 품종 개량에 드는 시간이 첫 잡종을 얻는 데서부터 농가 보급까지 15년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절반 가까이 시간을 줄인 셈이다. 김인환은 이에 앞서 1969년 9월 IR667이 실용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언론에 공표하였고, 이는 『서울신문』 1969년 9월 6일자에 ‘기적의 쌀 재배 성공, 벼 곱절 거둘 수 있다.’는 제목으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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