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4권 근현대 과학 기술과 삶의 변화
  • 제3장 한국인이 배우고 개발한 과학 기술
  • 3. 한글의 기계화
  • 한글 기계화의 선구자들
김태호

현재까지 알려진 최초의 한글 타자기는 재미 교포 이원익(李元翼)이 1914년 무렵 만든 것이다. 이원익은 당시 미국에서 쓰이던 7행식 스미스 프리미어(Smith Premier) 타자기의 활자를 한글로 바꾸어 달아 한글 타자기를 만들었다. 이 타자기는 세로쓰기 타자기로, 글자를 왼쪽으로 드러누운 꼴로 찍어 나중에 인쇄한 종이를 오른쪽으로 돌려 보면 세로로 쓰인 문서를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또 두 벌의 초성 글쇠, 두 벌의 중성 글쇠, 한 벌의 종성 글쇠를 지닌 다섯벌식이었다. 오늘날 실물은 확인할 길이 없고, 공병우 등의 기록을 통하여 자판의 배열만 알 수 있을 따름이다.

1929년 무렵에는 미국에 유학 중이던 송기주(宋基柱)가 언더우드 포터블(Underwood Portable) 타자기를 개조하여 네벌식 세로쓰기 타자기를 개발하였다. 송기주는 평안남도 강서 출생으로, 1921년 연희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텍사스 주립 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시카고 대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하면서 지도 제작 및 도안 일을 하고 있었다.

『동아일보』는 1934년 초 ‘연전(延專) 출신의 천재 발명가’라는 이름 아래 송기주의 발명을 대서특필하고(1월 24일), 3월에는 그를 서울로 초청하여 명월관에서 대대적인 후원회를 열었다(3월 20일). 같은 해 가을에는 그의 타자기를 화신 백화점에 전시하여 자랑거리로 삼기도 했다. 『조선일보』도 이광수의 기고를 통해 “문필에 종사하는 이로서 아직 원고를 손으로 쓰는 것은 아마 동양 사람뿐일 것이거니와 이제 조선ㅅ글은 송 씨의 타자기로 하야 이 원시 상태를 벗어나게 되엿다.”면서 송기주의 타자기를 높이 평가했다. 송기주 타자기의 세로쓰기 원리는 이원익의 것과 같으며, 모음 한 벌에 자음 세 벌(옆자음·윗자음 겸 받침·복모음에 쓰이는 작은 자음)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밖에도 역시 미국에서 활동하던 목사 김준성은 1946년 무렵 영문 타자기를 한글 풀어 쓰기 타자기로 개조하여 사용했다.

이들 타자기는 한글 기계화의 가능성을 열어 준 선구적 업적이지만 여러 가지 한계점을 안고 있었다. 우선 일제의 식민 통치를 받고 있던 한반도에서는 한글 기계화 작업은 꿈도 꾸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따라서 초창기 한글 타자기도 재미 교포가 개발하고 재미 교포들이 사용했을 뿐, 대중에게 널리 선보일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또 글쇠를 가나다순으로 배열하는 등 타자 동작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뒷받침되지 못하여 능률면에서도 뚜렷한 한계가 있었다. 이런 한계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글을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시대가 와야 했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