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4권 근현대 과학 기술과 삶의 변화
  • 제3장 한국인이 배우고 개발한 과학 기술
  • 3. 한글의 기계화
  • 표준화·전문가·아마추어 발명가
김태호

타자기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자판의 표준화가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1958년에는 정부에서, 1962년에는 한글학회 등의 민간단체에서 각각 한 차례씩 표준 자판 제정을 시도하였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정부의 표준 자판은 최현배의 풀어쓰기 안을 기본으로 한 것이어서 대중화되기 어려웠다. 또 한글학회가 주도한 민간 표준안도 업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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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벌식 타자기
세벌식 타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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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벌식 타자기
다섯벌식 타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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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후반에 세 번째 표준 자판 제정 작업이 시작되었다. 공병우는 자신의 타자기가 시장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표준으로 제정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기존에 시판된 타자기를 모두 인정하지 않고 전혀 새로운 자판을 만들어 그것을 표준으로 삼겠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기존 제품 중 하나를 표준으로 결정하는 데 정치적 부담이 따르기도 했고, 기존의 세벌식과 다섯벌식이 모두 장단점이 뚜렷한 제품이었 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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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용이 제시한 한글 타자기의 구비 조건
황해용이 제시한 한글 타자기의 구비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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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기존 타자기 제작자들이 아마추어 발명가라는 문교부 및 과학기술처 관료들의 선입견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과학기술처에서는 연구 조정관 황해용(黃海龍)의 주도 아래, 타자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자모의 이용 빈도를 조사하여 글쇠의 배열을 정했다. 그 결과 1969년에 과학기술처는 새로운 네벌식 자판을 타자기 표준 자판으로 제정하였다. 초성 자음 한 벌, 긴 모음 한 벌, 짧은 모음(안움직글쇠) 한 벌, 받침 한 벌로 이루어진 글자판이었다.

과학기술처에서는 네벌식 자판이 세벌식과 다섯벌식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합쳐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벌식보다는 자형이 네모반듯하고, 다섯벌식보다는 글쇠가 적어 배우고 치기 쉽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기존 제품의 제작자들이 강하게 반발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언론에서도 ‘공병우식과 김동훈식의 단점만 모아 만든 자판’이라며 혹평을 서슴지 않았다.

과학기술처의 연구자들은 속도와 미관 어느 한 쪽에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은 무던한 타자기를 만들고자 했지만, 그것은 사용자들의 욕구와는 동떨어진 생각이었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한 마리 토끼라도 확실히 잡는 쪽을 원하게 마련이다.

네벌식 타자기는 속도가 공병우식보다 느렸고, 글꼴이 김동훈식보다 들쭉날쭉했다. 전문가가 이것저것을 모두 따져 만들다 보니, ‘아마추어 발명가’들의 일장일단(一長一短)이 뚜렷한 작품보다도 매력이 없는 결과가 나온 셈이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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