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4권 근현대 과학 기술과 삶의 변화
  • 제3장 한국인이 배우고 개발한 과학 기술
  • 4. 반도체 신화
  • 세계 1위로의 도약
송성수

앞서 살펴보았듯이, 삼성은 1982년에 첨단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 후 6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64K·256K·1M·4M D램을 잇따라 개발하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도 5.5년·4.5년·2년·6개월로 점차 단축되었다. 그러나 4M D램까지는 외국의 기술을 도입하거나 신제품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여 선진 업체를 신속히 추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물론 1M D램과 4M D램을 개발할 때에는 선진 업체로부터 샘플을 입수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이 경우에도 C-MOS나 스택 방식과 같이 기술 경로에 대한 선택지는 제공되고 있었다. 이에 반해 삼성이 1988년부터 추 진했던 기술 혁신 활동은 이전과 달리 선행 주자와 모범 사례가 없는 상태에서 무형의 목표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삼성은 1988∼1989년에 경기도 기흥에 D램을 전담하는 연구소를 설립하여 신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였다. 16M D램은 1988년 6월부터 1990년 8월까지 26개월에 걸친 노력 끝에 개발되었다. 당시에는 16M D램의 시제품을 생산하는 해외 업체가 없었기 때문에 설계 기술과 공정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것은 물론, 감광 재료나 노광 장비와 같은 자재도 자체적으로 개발해야 했다. 삼성보다 약간 앞서거나 비슷한 시기에 일본의 히타치·도시바·미국의 IBM 등이 16M D램을 개발했다고 발표하였다. 16M D램의 개발을 계기로 일본과 미국의 업체들은 삼성의 독자적인 기술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표> 삼성의 D램 개발사
구분 64K 256K 1M 4M 16M 64M 256M 1G
개발 시기 83. 5∼
83. 11
84. 3∼
84. 10
85. 9∼
86. 7
86.5∼
88. 2
88. 6∼
90. 8
90. 6∼
92. 9
92. 1∼
94. 8
94. 4∼
96. 10
소요 기간 6개월 8개월 11개월 20개월 26개월 26개월 30개월 30개월
개발 비용 8억 12억 250억 500억 600억 1200억 1700억 2200억
최초 개발 기업 인텔 NEC 도시바 도시바 NEC 삼성 삼성 삼성
선진국과의 격차 5.5년 4.5년 2년 6개월 1개월 선행 선행 선행
선폭(線幅) 2.4㎛ 1.1㎛ 0.7㎛ 0.5㎛ 0.4㎛ 0.35㎛ 0.25㎛ 0.18㎛

삼성은 선례가 없는 무형의 목표에 도전하기 위하여 1989년 4월부터 수요 공정 회의라는 제도를 도입하였다. 기술 개발 담당자들이 매주 수요일 오후 7시에 모여서 자유로운 난상 토론을 통해 문제점을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그 회의는 발표자와 토론자가 자신의 명예를 걸고 진지하게 의견을 교환하는 장이 되었다. 수요 공정 회의를 통해 삼성은 기술 개발이 진척 되는 정도를 사전에 점검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기술 개발의 방향이나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도 극복할 수 있었다. 삼성은 16M D램의 개발을 목전에 두고 있었던 1990년 6월에 64M D램을 개발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아직 16M D램의 개발이 완료되지 않았는데, 차세대 제품인 64M D램에 착수했던 것이다. 그것은 삼성이 두 세대의 신제품을 동시에 개발하는 방식을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즉, 4M D램이 양산 단계에 이르면 그것을 개발했던 팀이 64M D램의 개발에 착수하고, 다시 16M D램을 개발한 팀은 차차세대 제품인 256M D램의 개발에 투입되는 것이다. 이처럼 공격적인 방식을 활용하여 삼성은 1992년 9월에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였다. 1991년은 삼성에게 또 한 번의 행운이 다가온 해였 다. 당시 일본의 반도체 3강인 도시바·NEC·히타치는 반도체 산업의 주기적인 불황에 대비해 1M D램 생산 라인의 증설을 중단하고 4M D램으로의 이동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불황으로 예상되었던 반도체 시장이 뜻밖의 호황을 맞았다. 당시 세계 각국의 컴퓨터 업체들은 대량 공급이 가능하고 가격이 저렴한 1M D램을 선호하였다. 여기에 일본의 엔화 절상 사태까지 겹쳐 컴퓨터 업체의 구매 담당자들은 삼성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에 따라 삼성은 1992년부터 D램 분야에서 일본의 도시바를 제치고 세계 제1의 메이커로 부상하였다. D램 분야에 진출한 지 10년 만에 삼성이 세계정상에 우뚝 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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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흥 사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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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에 삼성은 또 하나의 승부수를 띄웠다. 그것은 16M D램 양산 라인을 8인치로 하는 데 있었다. 8인치 라인은 6인치 라인에 비해 생산성이 1.8배 높을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막대한 설비 투자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업체들은 6인치에 집착하고 있었다. 특히, 8인치 라인은 공정이 복잡하고 가공 중에 깨지기 쉬워서 품질의 균일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삼성은 엄청난 위험 부담을 안고 과감히 8인치에 도전한 후 1993년 6월에 양산 라인을 준공하는 데 성공하였다.

삼성은 1992년 1월부터 256M D램을 개발하는 작업을 추진하였다. 그 과정에서는 처음부터 256M D램을 제작하지 않고 이미 개발된 16M D램에 256M D램의 사양을 적용하는 방식이 적용되었다. 16M D램을 통해 선폭을 축소하는 기술을 확보한 후에 이를 바탕으로 완전한 256M D램을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선폭의 축소와 용량의 증가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에 채택된 전략이었다. 삼성은 1992년 12월에 16M D램의 선폭을 0.28㎛으로 축소하는 기술을 확보한 후 1994년 8월에는 선폭이 0.25㎛인 256M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처럼 삼성은 기존의 제품에 새로운 사양을 적용하고 이를 통해 차세대 제품을 개발하는 방식을 통해 16M D램의 성능을 향상시킴과 동시에 256M D램을 추가로 개발하는 일거양득(一擧兩得)의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삼성은 꿈의 반도체로 불리는 G급 D램에서도 다시 한 번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입증하였다. 1996년 10월에 선폭이 0.18㎛인 1G D램을 개발하였고, 2001년 2월에는 선폭이 0.10㎛인 4G D램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였다. 삼성의 G급 D램은 세계에서 최초로 개발된 것일 뿐만 아니라 가장 선폭이 좁은 초미세 가공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삼성은 경쟁 업체보다 1년 정도 앞선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러한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제품의 생산 시기를 주도적으로 결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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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M D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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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1990년대 이후에 D램의 설계와 제조에 필요한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면서 이에 대한 특허권을 확보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256M D램의 경우에는 해외 특허 49건을 포함하여 총 129건의 특허를 받았다. 이러한 특허권은 외국 업체의 견제를 막아낼 수 있는 기반으로 작용했는데, 그것은 1997년 9월에 발생한 후지츠의 특허 제소 사건에서 잘 드러난다. 일본의 후지츠가 삼성이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기술이 자사의 특허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국제 무역 위원회에 제소하자, 삼성은 후지츠가 자사의 특허를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맞고소했던 것이다. 결국 그 사건은 1998년 10월에 삼성과 후지츠가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특허를 공동으로 사용하기로 합의하고, 상대편 회사에 대해 제기한 소송을 철회함으로써 해결되었다. 1986년에 있었던 텍사스 인스투르먼츠의 특허 제소 사건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은 1980년대 이후에 D램을 중심으로 급속히 성장하였다. 특히, 삼성은 64K D램부터 시작하여 선진국을 급속히 추격한 후 64M D램 이후에는 세계를 주도하는 반도체 업체로 부상하였다. 삼성은 1992년부터 D램에서, 1993년부터는 메모리 반도체에서 세계 1위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로는 1998년부터 D램에서 세계 1위, 2000년부터 메모리 반도체에서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반도체의 사례는 후발국이 선진국을 추격하는 것은 물론 추월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반도체의 성공을 배경으로 우리나라는 산업화를 시작한 지 30여 년 만에 세계 1위의 기술과 세계 1위의 기업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상 1980년대만 해도 일본과 미국의 전자 제품을 선호할 정도로 국산품의 품질은 좋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국산품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반도체를 비롯한 몇몇 분야에서는 오히려 선진국을 앞서고 있다. 반도체를 매개로 세계 최고의 한국산 제품(Made in Korea)을 창출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도 많다. 메모리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이지만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아울러 생산에 필요한 재료와 장비를 외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물론 1990년대 후반부터 국내의 반도체 업체들이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몇몇 부분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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