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4권 근현대 과학 기술과 삶의 변화
  • 제4장 과학 기술과 일상 생활의 변화
  • 3. 과학 기술, 우리의 일상을 바꾸어 놓다
  • 집 안에 들어 온 전기
박진희

1887년 3월 6일 경복궁 건천궁에 처음 전깃불이 밝혀졌을 때, 서울 사람들은 소격동 관화방으로 모여들어 이 광경을 넋을 놓고 지켜보았다고 한다. 경복궁 향원정 연못의 물을 발전기라는 기구에 넣어 불빛을 만들어낸 다는 설명은 신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황실에서는 1910년 1월까지 이렇게 자가 발전을 통해 전기를 이용하게 되었으나, 이렇게 황실에 첫 선을 보인 전기가 일반 가정에 들어오기까지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필요하였다.

전기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고종이 1898년 최초의 전기 회사인 한성 전기 회사를 설립하였지만, 여기서 생산되는 전기는 우선적으로 전차·가로등에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1900년 4월 10일에 종로에 처음으로 세 개의 전등이 점등되어, 사람들은 황실 밖에서도 전깃불을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일반 가정에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가로등이 등장하고 약 한 달이 지난 후인데, 당시 진고개에 거주하고 있던 일본 상인들이 전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때 가설된 전구는 약 600여 개였다고 하며, 불빛의 세기는 10촉 정도였다.

이렇게 시작된 일반 가정에 대한 전기 보급은 일제 침략과 더불어 더 이상 진전되지는 못하였다. 일제 강점기 동안 전기 공급 대상은 주로 일본인과 상류층 또는 관공서·회사 등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일반 가정의 전기 보급률은 무척 낮아서 1929년에는 약 6%, 1942년에 이르러서도 17.5%에 불과했다. 이런 보급률은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에 심한 불균형을 보여 주고 있었다. 1940년까지 조선인 총 가구 420여만 호 가운데 전등을 켤 수 있었던 가구는 10%에도 미치지 못하였다고 한다. 반면 일본인 가구 18만 호는 모두 전기를 쓰고 있었다. 일제 침략은 이렇듯 조선인이 전기 문명의 혜택을 입는 것에 제한을 가하고 있었다.

광복과 더불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해졌던 차별은 사라지게 되었으나 이어진 분단 상황이 다시 족쇄로 작용하게 되었다. 광복 당시 존재하던 발전 회사로는 조선 전업과 배전 회사인 경전·남전·서전·북전 등 다섯 개가 있었다.

당시 전국의 발전 설비는 172만㎾였고, 이 가운데 약 90%인 152만 4000㎾가 북한에 위치해 있었다. 즉, 남한에서의 전기 사용은 북한에서의 송전이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38선이 그어진 이후, 북한에서 남한으로의 송전은 미흡한 수준이었으나 지속되고는 있었다. 그러나 1948년 5월 14일 북한은 정치적인 이유로 남한으로의 송전을 일방적으로 중단하고 말았다. 이어진 6·25 전쟁은 그나마 남한에 존재하던 발전 설비마저 못쓰게 만들어버렸다. 결국 폭격을 용케 피해 무사했던 집이든 피난민의 임시 판자촌이든 다시 호롱불과 촛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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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화력 발전소
동대문 화력 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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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깃불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전력 공급이 안정화되기 시작한 1964년 이후였다. 조선 전업과 경성 전기·남선 전기를 통합한 한국 전력 회사가 수립되고 화력 발전 중심의 전력 공급 정책이 실시되어, 1964년에 들어와 무제한 송전이 가능하게 된 것이었다.

1964년 4월 1일을 기하여 광복 이후 19년 동안 되풀이되었던 제한 송전이 해제되었으며, 한국 전력 회사는 본격적인 전력 판매에 들어가게 되었다. 한 여성 잡지에 실린 한전의 광고 ‘전기로 생활을 즐기자’는 이런 변화된 상황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공급 위주의 정부 전력 정책으로 1962년 당시 43만 4000㎾에 불과하던 전력량은 1973년에 427만 2000㎾로 급신장하게 된다. 이때가 되면서 일반 가정의 전기 보급률은 90%에 이르게 되었다. 전기는 이제 일상품이 되어버렸다. 1975년의 통계에 따르면, 전국 가구의 90%, 행정 단위 시(市) 가구의 98.5%, 군(郡) 단위 가구의 81.5%에 전기 설비가 갖추어졌다고 한다. 이런 전기 설비는 한편, 가사 노동을 도와줄 각종 가전 기기 확산의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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