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4권 근현대 과학 기술과 삶의 변화
  • 제4장 과학 기술과 일상 생활의 변화
  • 3. 과학 기술, 우리의 일상을 바꾸어 놓다
  • 위생적이고 능률적인 부엌과 상수도
박진희

전기와 더불어 집에 일어난 커다란 변화 중의 하나가 위생 부엌과 상수도의 보급일 것이다.

개항과 더불어 개화 사상가들이 문명의 길로 강조한 것이 위생 관념이었다. 김옥균(金玉均, 1851∼1894)의 『치도약론(治道略論)』과 서재필(徐載弼, 1864∼1951)이 주관한 『독립신문』은 모두 문명개화(文明開化)의 척도로 위생을 전면에 표방하였다. 이들 개화파는 서구의 문명이 위생과 건강을 제일로 삼아 강건한 나라 건설에 성공하였다고 보고, 조선에서도 상하수도 설비·목욕 시설·뒷간 개량 등을 통해 위생에 힘써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런 위생론은 일제 강점기에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주택 개량론에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특히 악취와 습기에 시달리며 병균의 온상이 되고 있는 한옥에서의 부엌을 하루라도 빨리 개선하는 일이 문명의 길임을 강조하였다. 일간 신문에서는 가정생활이 이루어지는 가옥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깨끗한 공기와 채광이며, 정결하고 위생적인 부엌을 유지하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런 위생적인 부엌을 유지하는 것은 주부의 최우선 역할로 규정되었다.

1930년대에 들어와서는 박길룡(朴吉龍) 등의 건축가들이 위생적이고 능률적인 부엌을 위해서 어떤 개량이 필요한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박동진(朴東鎭)은 「우리 주택에 대하여」에서 주부의 노력을 낭비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부엌과 상수도가 연계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동선을 줄이기 위하여 부엌과 안방을 연계시킬 것을 제안하였다. 박길룡은 취반 전용 화덕 등 조리에 필요한 제반 설비가 갖추어져야 하고, 수도 배수구가 설치되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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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룡의 부엌 개선안
박길룡의 부엌 개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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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명이 바로 위생임을 앞세운 계몽 사상가들의 부엌은 일제 강점기에서는 그저 이상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전기의 보급과 마찬가지로 여기에 필요한 기본 설비인 상수도 보급 역시 지체될 대로 지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에 수도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07년 남산 기슭의 일본인 거류지였다. 이때에 보급된 상수도는 남산에서 흐르는 계곡물을 받아 간단한 침전·여과 과정을 거친 뒤 작은 급수관으로 남산 일대에만 공급하던 작은 규모의 것이었다. 실질적으로 상수도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08년 한국 수도 회사가 상수도를 부설하면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수도 회사는 한강의 물을 뚝섬 수원지에서 침전 여과하여 도관으로 송수하는 방식으로 용산 등 서울 일대에 물을 공급하였다. 일제 강점 이후 이 수도 회사의 소유권은 총독부로 이전되고, 전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급수 역시 민족 차별을 겪게 된다. 일본인이 많 이 거주하던 용산 구역에 위치한 노량진에 새로이 수원지가 신설되고, 1941년에 구의 수원지도 추가로 신설되었다. 이런 수원지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1925년 당시 한국인 급수 호수는 29%에 지나지 않았던 반면, 일본인은 89.9%에 이르고 있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한국인 가정에서는 여전히 우물물을 이용하고 있었다. 우물물의 이용은 1960년대까지도 지배적인 것으로, 시부에서는 55.4%, 군부에서는 90%까지 우물물을 이용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게다가 수도를 이용한다고 해도 개인 수도보다는 공동 수도의 공급 비율이 높았고, 시간제로 나오는 물은 제때에 받아두지 않으면 물 기근 속에 하루를 보내야 했다. 1970년대 초반만 해도 공동으로 설치된 수도 앞에 물통을 들고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야 상수도 보급률이 80%에 도달하게 되었다.

<표> 1925년 당시 급수 사용자의 국적별 분포
급수 구역 내 총 호수 급수 호수 보급률(%)
조선인a 일본인b 기타c 조선인d 일본인e 기타f d/a e/b f/c
67,530 47,116 19,442 972 32,088 13,688 17,476 921 29.1 89.9 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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