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5권 상장례, 삶과 죽음의 방정식
  • 제1장 죽음이란 무엇인가?
  • 2. 이승과 저승
주강현

육신에서 이탈한 넋은 저승을 찾아가고, 육신은 이승에 남는다. 이승은 현재의 삶을 의미하며, 저승은 내세의 삶을 의미한다. 이승은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행복한 곳일 수도 있고, 저승은 서천(西天) 세계처럼 최고의 행복을 구가할 수 있는 곳일 수도 있지만 지옥도 있어 지극히 고통스럽기도 하다. 이렇듯 이승과 저승은 양가성을 지닌다. 그러나 역시나 인간의 마음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처럼 이승에 기울어져 있으며, 그 반대급부로 저승이란 세계가 만들어진 것이리라.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났다는 사실을 못 견뎌 하는 인간으로서는 이승 이후의 세계인, 이승에 대응하는 저승을 창조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해 왔다. 물론 서양에서 뒤늦게 창조된 연옥(煉獄)과 달리 저승은 역사적 전통이 매우 오래된 것이며, 저승이란 개념의 역사는 한민족의 태동과 더불어 시작되었음직하다.

저승은 조선시대 중세 국어로는 ‘뎌’으로 지시 대명사 ‘뎌’와 ‘(生)’이 결합한 말이다.9)『가례언해(家禮諺解)』. 이와 대립되는 이승은 대명사 ‘이’와 ‘’이 결합한 말이다. 즉, 이승은 이곳의 삶, 저승은 저곳의 삶을 뜻한다. 저승이라는 말에는 “죽어서도 생이 있다.”라는 뜻이 있으므로 한국인에게는 “죽어서도 삶이 이어진다.”는 의식이 있다. 저승의 다른 말로는 황천(黃泉)이 있으니, 황은 흙을 뜻하고 천은 물을 뜻한다. 그러나 황천은 중국의 황허(黃河)에서 비롯된 말로, 저승의 토속성에 비하면 문화적 원형질에서는 조금 뒤늦게 출발한 말일 것이다. 여하튼 저승길이나 황천길이란 말이 두루 쓰여 왔으며 두 단어는 같은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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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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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과 이승이란 두 세계가 존재하지만 양자는 이분법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저승은 이승과 공존하는 공간이다. 구체적인 실례로 무속 신화 ‘바리데기’를 살펴보자. 바리데기는 태어나자마자 딸이란 이유만으로 버림받는다. 그러나 부모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저승길을 넘어가서 약수를 구하여 돌아와 마침내 부모의 병을 고쳐 준다. 바리 공주에 따르면, 저승은 이승의 끝에서 다시 육로 삼천리, 해로 삼천리 너머에 있다. 넋은 칼산지옥, 화탕지옥, 얼음지옥, 칼나무지옥, 혀 빼는 지옥, 독사지옥, 암흑지옥 등 시왕(十王)이 다스리는 10종의 지옥 외에, 팔만사천 지옥을 거쳐 가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 지옥을 지나 다시 높은 산을 넘고 험한 길 너머의 끝없이 넓은 바다를 건너야 비로소 생명수가 있는 저승에 닿는다. 그러나 바리데기는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생명수를 구하여 이승으로 돌아와 부모의 생명을 구한다. 바리데기의 사례처럼 이승은 저승과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저승은 이승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저승은 공포와 죄악의 표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제주도 무속 신화에서 형제지간인 대별왕과 소별왕이 서로 저승의 주관자가 되기를 기피하고 이승의 주관을 놓고 경합을 벌인 다. 아무리 이승과 저승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 있다손 치더라도 저승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어쩌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인간의 마음 자체가 두려움에서 비롯된, ‘만들어진 상상의 세계’일 것이다.

죽음은 보통 일이 아니다. 저승은 아무나 쉽게 가는 길이 아니어서 저승 가는 길에도 온갖 절차가 있다. 또한 혼자서는 저승에 갈 수 없다. 이승에서의 삶을 부모·형제의 보살핌 속에 시작한다면, 저승에서의 삶은 저승사자의 보살핌 속에 출발한다. 즉, 삶과 죽음 사이에는 매개자가 존재하니 저승사자가 바로 그들이다. 저승사자는 이승에 내려와 넋을 빼앗는 존재이지만, 사실은 저승의 온갖 난관에 같이 동행하면서 최종 목적지까지 함께 가는 동행인으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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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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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는 사람을 마구잡이로 잡아가지 않는다. 명부(名簿)에 쓰인 대로 명단을 파악하고서 수명이 다한 사람을 잡으러 나온다. 사자는 짚신감발하고 육갑책(六甲冊)을 손에 들고 청사슬과 홍사슬을 걸머지고 쳐들어온다. 이렇듯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사자의 이미지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였다. 상갓집의 문밖에 반드시 사잣밥을 놓는 전통은 저승사자의 구실이 매우 뿌리 깊은 것임을 알려 준다.

사자는 단순하게 저승사자 하나로만 존재하지 않아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10)『왕랑반혼전』에 따르면 사자는 다섯 명으로 확인되나 일반적으로 무속에서는 세 명으로 등장한다. 일직사자, 월직사자, 강림사자가 바로 그들이다. 사자는 일직사자, 월직사자, 시직사자, 칙호사자, 병부사자 등 다양하다. 강림도령은 팔뚝 같은 쇠사슬로 인간을 옭아맨다. 사자의 명칭과 직분이 다르기는 하지만 사자는 인간에게 무서운 존재로 그려진다. 그래서 사자에게 인정을 놓아 잘 봐달라고 빌기도 하고, 사자 역시 무섭기는 하지만 인간의 모습을 조금은 닮아서 인정에 약하여 제물을 얻어먹고 자신이 할 일을 잊기도 한다. 사자는 무서운 존재이지만, 무서운 존재에게도 인간적인 면모를 부여하여 엄중한 사태를 약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처럼 의례는 무서움을 연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서움을 완화하는 장치로 작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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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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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의 영혼을 천도하는 오구굿을 보면, 망자의 혼이 저승사자에게 끌려갈 때 그의 몸은 향물로 씻기고 상하 의복이 곱게 입혀져 묏자리에 깔린다.11)『한국 무가집』 2권, 집문당, 1971. 망자의 혼은 이렇게 육신을 남긴 채 저승으로 들어간다. 이렇듯 혼과 육신의 분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죽음에 관한 의식이다.

혼과 육신이 분리되기 직전, 인간은 당연히 죽음과 대항한다. 함경도의 망묵굿 가운데 타승굿에서,12)『한국 무가집』 3권, 집문당, 1971. 환자가 못 가겠다고 버티자 사자들이 얼러대며 목을 졸라 숨을 강제로 끊는다. 환자가 입었던 저고리를 벗겨서 지붕 꼭대기에 올라가 ‘복호, 복호, 복호’를 세 번 거듭 외치니 망자도 ‘할 수 없이’ 세상을 떠나 사자들을 따라서 수천 리를 간다. 혼과 분리되면서 남은 육신은 인간의 손에 넘겨지고 혼만이 저승으로 향한다. 경기도 화성의 집가심에서 사자들의 모습을 살펴보자.13)『한국 무가집』 3권, 집문당, 1971, 218∼219쪽.

일직사제 와르르 달려들어 덜미에는 육모를 얹어 놓으면

목에는 쇠사슬을 옭어 놓아

한 번을 나위치니 눈에는 망녕 그물 씨어 놓고

귀에는 자물통을 채여 놓아

듣던 말 한마디 못 들어보구

한 번을 나위치니 열 손에 맥이 끊어지구

시 번을 나위치니 열 발에 장맥이 끊어져

제 망제씨 명 끊는 소리

대첩 바다 한가운데 이천 석 실었든 배 닻줄 끊어지는 소리 같든구여

강님도령 그둥 봐라

두 문지방 가루 짚으며 시두 늦어가구 때두 늦어가니

어서 가자 서리같이 재축헐 제

저 망제 그둥 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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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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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가 잡으러 오는 장치가 있기 때문에 그를 속이는 장치도 있었는데, 대명 신화(代命神話)가 바로 그것이다. 대신 죽게 하여 목숨을 건진다는 방식으로 사마장자와 우마장자 신화가 대표격이다. 사마장자는 재산이 많았지만 인색하고 마음씨도 나빴다. 시왕이 이와 같은 사마장자의 죄상을 알고 사마장자의 꿈에 나타나 잡아갈 것이라고 알려 준다. 그러나 사마장자는 꾀를 내어 체포를 피하게 되고 그 대신에 가난한 우마장자가 저승으로 끌려간다. 우마장자의 조상신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청원(請願)한 결과, 잘못 잡혀온 우마장자는 다시 소년의 몸이 되어 세상으로 나오게 되고 저승에서는 사마장자를 잡으려고 저승사자들을 다시 내보낸다. 그러나 이번에도 사마장자의 며느리가 묘안을 내어 인정(人情)을 바치고 인정을 받아먹은 저승사자들의 직무 방기로 그 대신에 말이 잡혀간다. 그래서 사마장자는 저승의 명부에서 이름이 지워지며, 죽은 뒤에도 저승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도는 객귀가 된다.14)『한국 무가집』 1권, 집문당, 1971.

대명 신화 곳곳에 부자들이 액을 면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대신 액을 뒤집어쓰는 예가 많이 발견되는 것은 대개 살아생전에 대명을 위한 굿판을 청하는 이들이 부자라는, 즉 후원자와 관련된 현상일 것이다. 이는 이승에서의 불평등이 저승에서까지 관철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승에서의 신분과 재산의 불평등을 저승에까지 연장하려는 이승 지배 세력의 의도가 대명 신화 곳곳에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장가풀이는 액운을 면하고 오래 살 수 있도록 장수를 기원하는 굿으로 충남 부여에서 재수 발원(財數發願)을 위해 하는 축원굿인데, 여기서도 우마장자가 사마장자 대신에 잡혀간다. “신수가 사나우면 이렇게 남 대신 죽기도 하고, 돈이 많으면 귀신도 사귀고 신께 빌어 자손도 얻을 수 있는 법”이라고 하니, 이승의 냉혹한 질서가 저승에까지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명을 통하여 아무리 예방해도 누구나 결국은 저승에 가야만 한다. 저승 가는 길에는 거쳐야 하는 여러 대문이 있고 여기에는 문지기들이 지키고 있다. 그들은 다양한 시험을 걸어 뇌물 성격의 인정을 받고 통과하게 해준다. 인정을 주어야 통과한다는 말에는 저승 세계를 인간 세계로 즉자적(卽自的)으로 비유하는 관념이 반영되어 있으며, 저승을 이승이 반영된 곳으로 그린 것이다.

충남 서산의 무가인 황천해원풀이를 보면,15)『한국 무가집』 2권, 집문당, 1971. 저승길의 험로를 이렇게 묘사했다. 저승길을 가려면 육로로는 구만 사천 리이고 수로로는 팔만 사천 리이나 수로로는 가지 못하니 육로로 가라고 하면서, 칼성·쇠성·가시성을 넘어서 삼천지옥으로 가는 길이 있는 식이다. 바리데기가 거쳐야 했던 엄청난 고난의 길은 저승길의 어려움을 잘 설명해 준다. 이렇듯 온갖 통과 의례를 거쳐야만 비로소 저승의 시왕은 망자를 극락세계로 인도한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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