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5권 상장례, 삶과 죽음의 방정식
  • 제4장 한국의 묘제와 변천
  • 1. 선사시대의 묘제와 부장품
  • 신석기시대의 묘제와 부장품
신광섭

신석기시대의 사람들은 대개 물과 식량 자원이 풍부한 큰 강가나 해안가의 언덕, 섬 지방에 자리 잡고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발굴·조사 과정에서 내륙 지방의 작은 강가에서도 생활하였음이 밝혀졌다. 당시 에는 움집에 거주하면서 사냥, 고기잡이, 야생 식물 채집을 통해 생활하였으며, 잡곡을 재배하는 원시적인 농경도 시작하였다. 그리고 주술적인 의미를 담은 기하학적인 무늬를 토기나 각종 꾸미개에 장식하였으며, 토테미즘의 원형을 엿볼 수 있는 동물 모양의 장식품과 생산의 풍요를 기원하는 여인상 등은 신앙적인 의식에 사용하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주술적인 행위와 신앙 의식 등을 볼 때 신석기시대에는 사후 세계나 영혼에 관념이 있었으며 이에 따라 무덤을 만들어 주검을 안치하고, 사용하던 꾸미개나 토기, 석기를 껴묻어 주는 매장 의식을 행한 것으로 보인다.104)임학종, 「남해안 신석기시대의 매장 유구」, 『선사와 고대』 18, 한국 고대학회,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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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연대도의 조개더미 1호 무덤
통영 연대도의 조개더미 1호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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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보편적인 매장법은 땅을 파서 주검을 묻어 주는 토장(土葬)이라고 할 수 있다. 신석기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구덩이를 얕게 파고 그 안에 주검을 바로 펴 넣은 후 그 위를 잔돌과 큰 돌을 차례로 덮는 형식인 펴묻기를 하였으나 간혹 굽혀묻기와 세골장도 확인된다.

통영 연대에서 발굴한 조개 유적에서는 주검을 펴묻기하였고 주검의 머리 방향이 모두 바다 쪽인 서쪽을 향하였는데, 이것은 껴묻거리를 의도적으로 묻는 의식과 함께 당시 매장 풍습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한 이 무덤에서 출토된 인골(人骨)은 한민족의 직계 조상으로서 신석기에 대한 연구를 크게 진전시킬 것으로 보인다.105)박선주, 「신석기시대 인골의 출토」, 『한국사』 2-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국사 편찬 위원회, 1997. 두개골의 귀 부분에서는 잠수부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외이도골종(外耳道骨腫)이 확인되어 당시 주민이 소라와 전복 등 비교적 깊은 바다 속에 사는 조개류를 채취하는 등 활동 영역이 광범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연대도 조개더미에서 출토된 토기는 덧무늬토기와 빗살무늬토기가 대부분이며, 이 밖에도 화살촉, 작살, 이음낚시축 등 여러 가지 석기류와 송곳, 낚싯바늘, 꾸미개 등 뼈 제품, 그리고 옥 제품이 출토되었다.

한편 동굴을 무덤으로 쓰는 경우도 있었는데, 춘천 교동 동굴에서는 사람 뼈 3구와 생활 용구인 석기와 토기, 꾸미개인 대롱옥이 출토되어 이 동굴이 무덤으로 사용되었다고 파악하였다. 그런데 동굴의 천장이 그을어 있는 것으로 보아 무덤으로 쓰기 전에 집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았는데, 동굴이 집으로 사용되다가 무덤으로 마감된 것은 교동 동굴 유적이 유일한 예이다. 굴 안에는 3구의 인골이 발을 중앙으로 모은 굽혀묻기로 벽 쪽을 향해 누워 있었으며, 그 옆에는 토기·석촉·옥 등이 놓여 있었다. 이 동굴에서 출토된 토기는 모두 납작바닥으로, 주둥이 부분에 점이나 선으로 표현한 무늬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형식은 우리나라 동북 지방과 오산리 유적의 토기에 많이 보이는 것으로, 서로 연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106)김원룡, 「춘천 교동 혈거 유적과 유물-교동 문화의 성격과 연대-」, 『역사학보』 20, 역사학회,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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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후포리 무덤
울진 후포리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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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경북 울진군 후포리 무덤 유적은 집단 세골장을 한 무덤 시설로, 지름 4m 내외의 불규칙한 둥근 구덩이 안에 40구 이상의 사람 뼈가 많은 석기와 함께 겹쳐 있는 상태로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신석기시대의 본격적인 무덤 시설의 아주 희귀한 예로, 여러 번에 걸쳐 사람 뼈를 묻었을 것(改葬)으로 보인다. 이곳에서는 간돌도끼(磨製石斧)와 돌대롱옥, 주걱 모양 돌판 등이 출토되었다. 이 가운데 돌도끼는 130여 점이 발견되었는데 길이가 대개 20∼30㎝ 안팎이다. 이러한 돌도끼는 춘천 교동 동굴, 회령 연대봉, 종성 상삼봉 등의 유적에서도 유사한 것이 출토되어서 동북 지방과 동해안에 분포한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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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미개와 조각품(조개 팔찌의 지름 8.8㎝)
꾸미개와 조각품(조개 팔찌의 지름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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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미개는 개, 새, 뱀 등 여러 종류의 동물을 장식하여 토테미즘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것과 사람의 전신상(全身像) 또는 얼굴을 새긴 것 등이 있다. 전신상은 대부분 여성상으로 보이는데, 이는 모계 씨족 사회로 여성 숭배 사상을 나타내고 생산의 풍요를 기원한 데서 연유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웅기 서포항, 양양 오산리, 부산 동삼동 유적 등에서 출토된 사람 얼굴 모양의 조각품은 신앙 의식에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신석기시대에는 고기잡이와 사냥을 주로 하였을 것이므로 뼈나 뿔로 연장을 많이 제작하였을 것이다. 연장은 돌보다는 뼈나 뿔로 만드는 것이 효율적이었으며 이에는 바늘, 낚싯바늘, 찔개살, 삿바늘, 송곳, 토기무늬새기개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조가비로 만든 팔찌, 물고기나 동물의 이빨로 만든 발찌 등이 무덤에서 나왔는데, 이는 꾸미개나 호신구(護身具)로써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107)최종혁, 「신석기시대 동해안 지방의 토기 문화에 대한 연구」, 『문물 연구』 5, 동아시아 문물 연구 학술 재단, 2001 ; 신숙정, 「신석기시대의 유물-예술품-」, 『한국사 2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국사 편찬 위원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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