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5권 상장례, 삶과 죽음의 방정식
  • 제4장 한국의 묘제와 변천
  • 1. 선사시대의 묘제와 부장품
  • 초기 철기시대의 묘제와 부장품
신광섭

기원전 3세기경에 중국 북방 지역 문화와 접촉하면서 한반도에 철기가 전래된다. 철기가 보급되면서 단단하고 예리한 철제 도구를 이용하여 대규모 농경이 이루어지면서 농업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 생산력이 급속히 증가하였다. 또한 광석 채굴에서 제련·제조에 이르는 공정(工程)에는 대규모 집단 노동이 필요하게 되어 전문적 지식을 습득한 집단이 생겨나게 되고 사회에서는 계급 분화가 더욱 촉진되었다. 전쟁 형태도 짧은 무기를 이용한 보병전에서 긴 철제 칼과 말을 이용한 기마전(騎馬戰)으로 바뀌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고고학적 출토 유물에 견주어 보면,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다량으로 출토된 명도전(明刀錢)이 이러한 철기의 전래와 관련이 깊다. 명도전은 중국 전국시대 때 북부 지역에 자리 잡고 있던 연나라(기원전 323∼222)의 화폐인데, 형태는 손칼(刀子) 모양으로 내부에는 ‘明(명)’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압록강 중류와 대동강 상류의 서북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명도전은 중국제 철제 무기, 농기구와 함께 출토되기 때문에 명도전이 도입된 시기와 철기가 도입된 시기가 비슷함을 알 수 있다.

무덤 양식도 한(漢)나라 문화의 영향으로 널무덤, 이음독무덤 등이 나 타났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과 돌널무덤도 계속 사용하였다. 북한 지역의 널무덤에서는 철기류와 함께 한국제 청동기와 중국 한나라 문화의 영향을 받은 수레갖춤, 도장 등이 출토되었으며, 남한 지역에서는 한국식 동검, 투겁창, 꺾창, 방울, 거울 등의 청동기와 칼, 손칼, 도끼, 말갖춤 등의 철기류가 함께 출토되었다.112)성낙준, 「철기시대의 유적-무덤-」, 『한국사 3-청동기 문화와 철기 문화-』, 국사 편찬 위원회, 1997.

부여 합송리 유적은 낮은 언덕에 위치한 초기 철기시대 널무덤이다. 이 널무덤에서 출토된 청동 제품들은 형태나 무늬로 보아 한국식 동검 문화의 후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출토 유물 중에는 유리대롱옥이 눈에 띄는데, 성분 분석 결과 중국 전국시대의 납-바륨계 유리로 당시 중국과 교류하였고 그 과정에서 들여온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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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도무덤
늑도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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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남양리 유적도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 단계의 것으로, 초기 철기시대 널무덤 유적이다. 구덩이를 파고 내부에 널을 안치한 뒤 널과 구덩이 사이의 공간에 냇돌을 채웠는데, 그 속에 껴묻거리를 매납하였다. 이것은 껴묻거리를 관에 넣지 않고 널과 구덩이 사이에 부장하는 관외부장(棺外副葬) 형식이다. 이 같은 매납 방식은 함평 초포리 유 적과 같은 것으로 원삼국시대 초기 무덤인 창원 다호리 널무덤의 껴묻거리 구덩이와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지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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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리 출토 일괄 유물(동검의 길이 32.7㎝)
소소리 출토 일괄 유물(동검의 길이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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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늑도 유적은 초기 철기시대에서 원삼국시대에 걸친 시기의 유적으로 돌널무덤, 널무덤, 독무덤 등이 있다. 이 중 독무덤은 모두 유아용으로 인골이 확인되었고, 널무덤은 성인용인데 특이하게 개도 함께 묻은 것이 있다. 출토 유물에서 관심 있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이들의 해외 교류이다. 이 유적에서는 일본 야요이 토기, 낙랑계 토기, 중국 동전 등이 발견되었는데, 늑도가 연안 항로의 중심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낙랑과 일본을 연결하는 국제 무역의 중심지 노릇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시기 무덤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한국식 동검 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철기 문화가 더해진 것이다. 초기 철기시대 전기는 한국식 동검 문화의 전성기로서 앞 시대에 비해 종류도 다양하고 수량도 많지만, 후기가 되면 청동기 제작은 형식으로 흐른다. 즉 합금이나 마무리가 매우 거칠어지는 등 양식상의 퇴화가 일어났다.

청동기와 함께 출토되는 철기는 수량이 적지만, 각종 무기류와 농공구류에 사용하였을 것으로 본다. 철은 부식이 잘되기 때문에 출토되는 수도 적지만, 경주 구정동이나 위원 용연동 유적에서는 철제 농공구가 다량으로 출토된 예가 있다. 따라서 후기에는 일상생활에 철기를 광범위하게 사용하였을 것이며, 소수의 지배자가 사용하던 청동기와는 달리 철기는 사회 전반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을 것이다.113)이성주, 「철기시대의 유물-철기 유물-」, 『한국사 3-청동기 문화와 철기 문화-』, 국사 편찬 위원회, 1997. 철기가 도입되면서 새로이 등장한 유물은 남양리 널무덤과 합송리 널무덤에서 출토된 유리대롱옥이다. 앞서 언급 했듯이 유리 제작 기술은 중국과 교역하고 접촉하는 과정에서 전래된 것인데, 유리대롱옥은 길이가 긴 대롱 모양으로 철기가 등장하는 시기의 특징적인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114)이인숙, 「철기시대의 유물-유리 공예-」, 『한국사 3-청동기 문화와 철기 문화-』, 국사 편찬 위원회, 1997.

토기의 경우 서북 지방에서는 화분형(花盆形) 토기, 한강 이남 지역에서는 덧띠토기와 조합식 쇠뿔잡이토기 등이 주로 출토되었다. 민무늬토기에도 변화가 일어나 원통형이나 나팔형의 굽이 달린 접시나 사발 형태인 두형(豆形) 토기가 등장하였고, 항아리의 몸통이 둥글게 부푸는 경향을 보였다. 초기 철기시대의 토기는 중국 문화의 영향과 토기 제작 기술의 보급으로 원삼국시대 토기인 연질(軟質) 토기와 와질(瓦質) 토기에 그 전통이 계승되었다.115)최성락, 「철기시대의 유물-토기-」, 『한국사 3-청동기 문화와 철기 문화-』, 국사 편찬 위원회, 1997.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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