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5권 상장례, 삶과 죽음의 방정식
  • 제5장 무속과 죽음
  • 3. 죽음의 시공간
  • 죽음과 시간
주강현

이제 시간의 문제를 살펴본다. 천도제에서 행하는 넋두리에는 과거에 대한 재해석이 담겨 있다. 넋두리를 통한 한풀이는 새롭게 과거를 사는 시간이 된다. 과거는 죽은 시간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밑거름으로 굿판에서 재현된다. 즉 살아 있는 시간이 된다. 이렇듯 살아 있는 ‘과거의 시간’은 오직 굿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사람은 죽음을 체험할 수 없다. 이야기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산 사람에게도 죽은 사람에게도 죽음은 갑작스러운 사건이다. 그리하여 굿에서는 죽음을 체험하는 과정을 중요한 의례로 마련한다. 굿을 통하여 죽음과 삶은 새로 만나게 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다. 굿을 통하여 만나는 저승의 시간은 인간사와 질적으로 다른 시간이다. 다르게 움직이는 시간이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같은 시간으로 가늠할 수는 있다. 공간이야 이승과 저승으로 전혀 다르지만 하나의 시간 단위를 잣대로 잴 수는 있다고 보는 것이다.

죽음의 시간은 그저 무로 무한할 뿐이 아니다. 그곳도 분명히 시간은 흐르고 그 시간은 이승의 잣대로 환산하여 계산할 수 있다. 이승과 저승은 하나의 시간으로 계산이 가능하니 같은 시간 안에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이승과 저승이 단절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죽음의 의례는 매우 ‘현실적인 계산’에 따라서 정리할 수 있다. 죽음을 대하는 의례에는 살아 있는 자들의 현실성이 강하게 살아 있다. 무속에서 사령제는 현실적인 의미가 강하다. 순수한 종교적 의미 외에 사회적 의미도 강하다. 망자의 도움을 받아 가운(家運) 번성을 꾀하는 목적 외에도 망자에 대한 사회·도덕적인 의무가 보태진다.

죽음은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재산이나 인간관계 등을 전부 버리고 가는 것으로, 인생은 죽음으로써 무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망자는 무능력하고 슬픈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죽음이 슬프고 헛된 것이기 때문에 살아 있을 때 그렇게 물욕에 마음을 쏟기보다는 자신이 건강하게 오래 살되, 좋은 것도 많이 먹고 좋은 옷도 많이 입으면서 이 세상을 즐겁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즉, 현세 이익적인 가치관과 사후 세계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드러낸다.

전라도 씻김굿에서 천근, 희설, 길 닦음은 살아 있는 가족과 망자 사이의 관계가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천근은 저승으로 떠날 노자를 마련해 주는 것이며, 희설은 떠나게 될 망인이 가족에게 말을 남기는 것이다. 남은 사람과 가는 사람 사이의 마지막 대화인 것이다. 씻김은 언뜻 보면 망자를 위한 굿이지만 내용을 보면 살아 있는 자를 위한 현실적 맥락을 지닌다. 제주도 시왕맞이의 영개울림도 이와 같다. 부모, 자식, 형제, 자매, 친척, 벗 들에게 차례로 이야기한다. 사령을 불러 준 데 대한 사의, 자신의 죽음에 대한 심경, 사후 장례가 끝날 때까지의 심경, 생전의 친애(親愛)에 대한 회상과 앞으로의 부탁, 생존자의 운수 예언과 주의 환기, 저승에서 공을 갚겠다는 말, 결별의 인사로 이루어진다. 즉 무속에서 굿은 인간이 살고 있는 공간과 시간에 의탁한 살아 있는 신화의 굿판인 셈이다.

굿은 대개 야심한 밤에 한다. 조선 전기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망자를 위한 천도굿인 야제는 죽음의 현현이 정상적인 낮보다는 비정상적인 밤에 이루어짐을 암시한다. 낮이 양이라면 밤은 음이며, 신들이 강림하기에는 음의 시간인 밤이 좀 더 적합하다. 그래서 낮은 인간의 시간인 반면에, 밤은 신들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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