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5권 상장례, 삶과 죽음의 방정식
  • 제5장 무속과 죽음
  • 5. 죽음의 역사 사회화
  • 개인적 죽음의 해원
주강현

죽음은 단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무속 체계 안에는 억울하게 죽은 자에 대한 해원(解冤)이란 과제가 매우 중요한 대목으로 숨어 있다. 해원은 사회적인 것도 있고 개인적인 것도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아무리 거창한 해원도 민간에 보편적으로 깔려 있는 개인적인 해원 의식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다음의 ①은 비록 사산아(死産兒)일망정 해원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②는 억울하게 죽은 영혼은 반드시 그 원한을 갚아 주는 해원 없이는 원만하게 해결할 수 없음을 말해 준다. ③, ④, ⑤는 억울하게 죽은 자에 관한 해원이다. ④에서처럼 ‘아랑의 전설’과 같은 부류는 전국에 보편적으로 전승되며 서사성이 있다. 비슷한 이야기가 『계서야담』 「밀양 영남루(密陽嶺南樓)」에도 전해지며, 아예 “내가 공무로 밀양에 이르러 영남루에 올라서 보니 누각 밖의 대밭에 아랑의 사당이 있었다.”라고 하여 아랑 전설임을 분명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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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북교(北郊)에는 귀신에게 수화(水火)와 굶주림, 병에 죽은 사람만 제(祭)하고 사산아는 제향하지 않았다. 옛날에 한성 부윤이 북교에서 제사 지내고 돌아오다 성문이 잠겨 있어 말에서 내려 잠시 잠이 들었다. 그때 한 여자가 피를 흘리며 나타나 국법에 사산아는 제향하지 않으니 이 때문에 호소하러 왔다고 하였다.184)『어우야담』 북교무사귀신제(北郊無祀鬼神祭).

② 풍원군(豊原君) 조현명(趙顯命)이 영조조 영번(嶺藩)의 안찰사를 지낼 때 정언해(鄭彦海)가 통판(通判)이었다. 어느 날 밤새도록 숨을 마시고 돌아온 통판이 취침하려는데 순사(巡使)에게서 빨리 와 달라는 전갈이 왔다. 순사에게 가니 배이발, 배지발 형제를 찾아 동생을 체포하고 배이발의 딸 시신을 검사하라고 명령하였다. 통판이 배씨 형제를 불러들이고 시신을 검사하니 죽은 지 3년이 지났는데도 생생하였다. 배씨 형제 부부를 심문하니 동생이 형의 후처와 짜고 조카를 죽이고서 형에게는 모처의 총각과 간통하였다고 속인 뒤 자기 아들이 재산을 상속받게 하려 했다고 자백하였다. 순사가 동생과 형수를 타살하여 죽은 이의 원한을 풀었다. 통판이 순사에게 사건의 정황을 물으니, 그날 밤 죽은 여자의 원혼이 나타나 한을 풀어 달라고 했다고 하였다.185)『계서야담』 조풍원군현명(趙豊原君顯命) ; 『기문총화(記聞叢話)』 조풍원현명(趙豊原顯命).

③ 어떤 재상이 전라 감사로 있을 때에, 어느 날 자려고 하는데 노란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은 여인이 방으로 들어왔다. 감사가 연고를 물은즉, 자신은 이 고을 이방의 딸인데 계모와 이복동생이 재산을 독차지하려고 아버지가 며칠 출타한 사이에 뒷목을 목침으로 쳐서 죽이고는 아버지가 돌아오자 복통으로 죽었노라고 하였으니 원한을 풀어 달라는 것이었다. 감사가 즉시 본관을 불러 이방과 후처와 그 아들을 잡아들이게 하고 죽은 여자의 시신을 찾아보니 과연 어젯밤에 나타났던 그 차림이었고 뒷목의 피가 마르지 않은 상태였다. 감사가 계모와 이복동생을 죽이고 이방은 용서하여 그 여자의 원한을 풀어 주었다.186)『청구야담』 설신원완산윤검옥(雪伸寃完山尹檢獄).

④ 부사 남모(南某)는 문관으로 슬하에 딸 하나만 있었는데 예쁘고 지혜로웠다. 밀양 부사로 제수(除授)되어 딸을 데리고 갔는데 어느 날 그 종적이 사라졌다. 남이 끝내 딸을 찾지 못하고 울다가 병들어 죽었다. 그 뒤로 밀양에 부임하는 사람은 모두 갑자기 죽어 버렸다. 김씨 무변(武弁)이 밀양 부사로 제수되었는데 친구 중에 담력 있고 지혜로운 이 상사(李上舍)를 데려갔다. 이가 김을 관헌에 재우고 영남루에서 동정을 살피는데 갑자기 곡성이 들리면서 한 여자가 붉은 깃발을 들고 나타났다. 이가 내력을 물으니, 자신은 남 부사의 딸로 유모에게 속아서 영남루에서 한 총각에게 죽임을 당했다며 원한을 풀어 달라고 하였다. 다음 날 이가 이안(吏案)을 들추어 주모라는 이름을 가진 자를 잡아오게 하였다. 심문을 한 즉, 처녀의 미모에 반하여 유모를 통해 유혹하여 겁간하려다 여의치 않자 처녀와 유모를 함께 죽여 대나무 숲에 버렸다고 자백하였다. 부사가 대나무 숲에서 시체를 찾아내서 장사 지내고 주모를 사형시켰다. 이는 등과(登科)하여 현달(顯達)하였다.187)『동야휘집』 남루거주기소원(南樓擧朱旂訴寃).

⑤ 광해군 때에 허균이 주살(誅殺)된 뒤 집안이 망했는데, 그 뒤로 밤이면 귀신 소리가 났다. 이달이 ‘불초영무자(不肖寧無子)……’라는 시를 묘비에 지어 넣자 울음소리가 그쳤다. 묘비가 묘 앞에 있는데 수십 년 전 보니 자획이 완연한 것이 한석봉의 글씨더라.188)『기문총화』 허초당엽(許草堂曄).

해원을 해주면, 그에 따른 보은은 반드시 뒤따르게 마련이다. 억울하게 죽은 혼령일수록 한을 풀어 주면 그 음덕을 돌려주었다. 다음의 ①은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데, 여인의 한을 풀어 주고 평생 공을 돌려받은 것을 보여 준다. ②는 망자의 소원을 들어줌으로써 화를 면하게 되는 음덕으로 보여 준다.

① 상국(相國) 김모(金某)는 젊어서 친구 몇 명과 함께 백련봉 아래 영월암에서 글을 읽었다. 밤에 여인의 곡성이 들리더니 귀신이 나타났다. 사연인즉, 자신은 역관의 딸로 남편이 음부(淫婦)에게 미혹(迷惑)되어 자신을 죽여서 골짜기에 버리고는 친정에는 자신이 음행(淫行)을 저질렀다고 거짓으로 말하였다. 귀녀(鬼女)는 김 공이 등과 후에 형조 참의를 지낼 터이니 그때 원을 풀어달라고 하였다. 김 공이 다음 날 골짜기에 가서 시체를 확인하였으나 발설(發說)하지 않았다. 과연 등과하여 벼슬이 참의에 이르니 그 여인의 남편을 불러 죄를 자백 받고 징벌하였으며, 여인의 시신을 찾아 매장해 주었다. 그날 밤 여인이 나타나 사례하고 공의 앞일을 예언하였는데, 공의 평생이 그녀의 말과 부합하였다.189)『계서야담』 김상국모(金相國某) ; 『청구야담』 검암시필부해원(檢巖屍匹婦解寃) ; 『동야휘집』 영월암수해해원(映月菴收骸解寃) ; 『기문총화』 김상군모(金相君某).

② 봉조하(奉朝賀) 이규서가 젊었을 적에 용인의 한 민가에서 벗들과 과거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꿈에 어떤 관인이 나와서는 자신은 전조의 벼슬아치로 집이 서쪽 방 아래에 있는데 조석으로 불을 피워 견디기 어렵다고 하소연하였다. 최 공이 그 집을 지을 때 서쪽 방밑에 무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주인에게 돈을 주어 집을 옮기게 하였다. 그 관인이 꿈에 나타나 사례하면서 장차 현달할 것이나 벼슬에 이른 후에 물러나지 않으면 화를 입을 것이라고 하였다. 최 공이 그 말을 좇아 용인으로 물러나 살았다.190)『청구야담』 빙치몽고총득전(憑侈夢古塚得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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