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6권 연희, 신명과 축원의 한마당
  • 제1장 전통 연희의 전반적 성격
  • 3. 전통 연희의 역사적 전개
  • 통일신라시대
전경욱

통일신라시대의 연희는 처용무(處容舞)와 최치원의 「향악잡영」 5수에 묘사된 다섯 가지 연희를 들 수 있다.

처용무는 통일신라시대에서부터 고려·조선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꾸준히 전승되면서 시대의 변천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겪은 것으로 나타난다. 처용 설화는 신라 헌강왕(재위 875∼886) 때의 것이다. 이 설화는 처용을 문신(門神)으로 신격화하면서 처용의 모습이 역귀를 퇴치할 수 있는 주술력을 갖게 되는 과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처용 설화와 처용무의 성립에 대해 그동안 많은 견해가 제시되었다. 우선 이두현은 처용무가 신라 이전부터 내려온 우리나라 토착의 고대 전승인 벽사가면(辟邪假面)과 산신(山神) 탈굿과 용신(龍神) 탈굿 등의 복합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대륙계 가면무의 영향을 받아 2차적·3차적 변용을 거듭하여 오늘날의 오방처용무(五方處容舞)에 이르렀다고 보았다.

김학주는 처용이 문신으로서 역신을 쫓고 역신의 침입을 막는 것은 바 로 중국의 나례신(儺禮神)인 종규와 통하고 있고, 처용과 종규는 발생 설화, 문신으로서의 성격, 가면무희로서의 특징, 나례의 구역신으로서의 위치 등 모든 면에서 유사점 내지 공통점이 있으므로, 처용이 중국 종규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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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역사학계에서는 처용을 아랍인으로 보는 견해가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술사학계에서는 경주에서 출토된 서역 관련 유물을 논하면서 신라와 서역의 교류가 활발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용범과 정수일은 한반도에서 발굴된 서역 유물, 아랍 문헌 속의 신라 내왕 및 신라의 대아랍·이슬람 제국 수출품에 대한 기사, 그리고 신라가 아랍·이슬람 제국의 문물을 일본에 중개 수출했다는 일본 쇼소인(正倉院) 문서의 내용, 고려 초기인 1024년·1025년·1037년에 대식(大食), 즉 아라비아 상인들이 무역을 위해 집단적으로 벽란도(碧瀾渡)에 왔었다는 사실 등을 감안할 때, 신라와 서역 간의 직접 교류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처용 설화를 당나라 말 광저우(廣州)에서 양저우(揚州) 일대까지의 지역에서 해상 무역권을 장악하고 있던 이슬람 상인의 표착 전설(漂着傳說)로 보고, 동해 용의 아들로서 그 모양이 괴이하고 의관도 달랐던 처용을 이슬람 상인으로 보았다.

『삼국사기』의 “그 생김이 괴이하고 또 의관도 다르다.”는 내용이나,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誌)』(1425)와 『세종실록지리지』(1454) 가운데 처용을 묘사하며 “그 생김이 기괴하였다.”는 내용은 처용이 신라인이 아닌 아랍인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악학궤범(樂學軌範)』(1493)의 처용가에서는 처용의 생김을 “넓은 이마, 무성한 눈썹, 일그러진 귀, 붉은 모양(얼굴), 우묵한(우뚝 솟은) 코, 밀어 나온 턱, 숙여진 어깨”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17)『악학궤범(樂學軌範)』 권5, 학연화대처용무합설(鶴蓮花臺處容舞合設). 그리고 『악학궤범』의 관복도설(冠服圖說) 가운데 처용관복도설(處容冠服圖說)에 그려져 있는 처용의 모습 역시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18)『악학궤범』 권9, 관복도설(冠服圖說), 처용관복도설(處容冠服圖說).

한편 『삼국사기』 「잡지」에 최치원이 당시의 연희를 직접 보고 지은 한시 「향악잡영」 5수가 실려 있다. 이 시에는 금환(金丸), 월전(月顚), 대면(大面), 속독(束毒), 산예(狻猊) 등 다섯 가지 연희가 묘사되어 있다.

금환은 죽방울을 공중에 여러 개 던졌다가 받는 연희다. 월전은 구경꾼의 반응을 통해 골계희임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산악·백희 종목의 하나인 우희로 보인다. 대면은 황금색의 가면을 쓴 후 손에 구슬 채찍을 들고 귀신을 부리는 춤을 묘사하고 있다. “황금색 가면을 썼다 바로 그 사람, 구슬 채찍을 손에 쥐고 귀신을 부리네.”라는 내용으로 볼 때, 일종의 구나무(驅儺舞), 즉 귀신을 쫓는 춤이다. 속독은 흐트러진 긴 머리에 남색 가면을 착용한 사람들이 떼를 지어 나와서 난새춤을 추는 내용이다. 산예는 사자 가면을 쓰고 춤을 추는 동물 가면희다. 이 시는 사자춤이 유사(流沙), 즉 고비 사막을 거쳐 왔다고 그 유래를 밝히면서 이 사자춤이 서역 계통임을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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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다섯 가지 연희는 산악·백희에 속하는 종목으로 전문 연희자가 공연한 것으로 보인다. 이 연희를 공연하던 연희자는 산악·백희의 전문 연희자였기 때문에 서역 계통인 외래의 사자놀이도 공연 종목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상의 다섯 가지 연희를 「향악잡영」이라고 하여 향악이라는 제목을 달았지만, 서역 계통 악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최치원의 「향악잡영」은 신라 당시의 신악(新樂)인 당악(唐樂)과 구별하기 위해 당악 이외의 것을 모두 향악이라고 부른 데서 기인한 명칭으로 보고 있다. 즉, 향악은 신라 때 새로 들어온 당악과 구별하기 위해 기존의 악을 통칭한 것인데, 그 속에는 신라 고유의 악뿐만 아니라 서역악, 불교악(佛敎樂) 같은 외래의 악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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