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6권 연희, 신명과 축원의 한마당
  • 제2장 궁정 연회의 전통과 정재의 역사적 전개
  • 2. 궁정 연회의 공연 공간
  • 궁중 연향의 공연 공간
사진실

진연을 거행한 궁궐의 정전(正殿)이나 편전(便殿)은 임금이 정사를 보는 집무 공간이며, 내전(內殿)은 왕비가 거처하는 생활 터전이다. 그러나 진연을 거행하는 동안 전각과 마당은 일시적으로 연회를 위한 행사 장소가 된다. 제1작부터 제9작까지 정재를 공연하고 관람하는 동안 연회 공간은 다시 공연 공간으로 전환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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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기축진찬의궤』의 명정전진찬도
『순조기축진찬의궤』의 명정전진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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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기축진찬의궤』의 명정전진찬도
『순조기축진찬의궤』의 명정전진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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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순조기축진찬의궤(純祖己丑進饌儀軌)』에 나오는 도식과 기록을 중심으로 궁중 연향의 공연 공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의궤의 도식에는 본래 궁궐의 모습과 진찬을 거행할 때의 모습이 함께 실려 있어 궁궐이 연회를 위한 의례 공간 및 공연 공간으로 전환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48)『순조기축진찬의궤(純祖己丑進饌儀軌)』 상(영인본), 서울대 규장각, 1996, 28∼31쪽.

명정전은 두 단의 넓은 월대(月臺) 위에 기단을 세우고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건축되어 있다. 명정문에서 월대까지는 복도를 놓았으며 화려하게 조각된 돌계단을 통하여 명정전의 정면으로 연결된다. 1829년(순조 29) 2월 9일 이 명정전에서는 임금 및 왕세자 이하 문무 대신들이 참석한 외진찬 행사가 거행되었다.

대청의 안쪽 중앙에는 어좌(御座)가, 화면 오른쪽에는 왕세자의 좌석이 마련되어 있다. 대청 앞의 넓은 공간에는 시연(侍宴)하는 신하들이 앉아 있고, 악공들과 무동들이 늘어서 있다. 이 공간은 언뜻 보기에 월대 같지만 사실은 월대의 높이에 맞추어 가설된 보계(補階)다. 보계는 마루 따위를 넓게 쓰기 위하여 대청마루 앞에 임시로 좌판을 잇대어 깐 덧마루라고 알려져 있는데,49)『만기요람(萬機要覽)』 재용편(財用編) 4, 호조 각장 사례(戶曹各掌事例) 별례방(別例房)에 “慶禮時, 則殿堂有補階之例, 臨時待下敎擧行”이라고 하였다. 궁정 연회에서 보계는 평범한 덧마루의 개념을 넘어서 예식 절차와 정재 공연을 위한 필수 설비로 사용되고 있다.

명정전이 연회 공간 및 공연 공간으로 전환되기 위하여 월대 두 단의 높이에 맞추어 보계가 설치되었다. 『순조기축진찬의궤』의 「명정전내외배설(明政殿內外排設)」에 따르면, 하층 보계(下層補階) 18칸(길이 12칸, 너비 2칸 반)을 가설하였고, 상층 보계(上層補階) 80칸(동서 8칸, 남북 10칸)을 가설하였다.50)『순조기축진찬의궤』 하, 123쪽. 보계 주변에는 죽난간(竹欄干) 47칸을 두르고 차일(遮日) 80칸을 설치하였다. 그 위에 어탑(御榻), 일월오봉병(日月五峯屛), 보안(寶案), 찬안(饌案), 수주정(壽酒亭), 진작탁(進爵卓), 진화탁(進花卓), 진치사탁(進致詞卓) 등을 배설하고 참석자의 좌석을 마련하였다.51)『순조기축진찬의궤』 하, 122∼125쪽. 궁궐의 일상 공간이 진찬을 거행하기 위한 연회 공간으로 전환된 것이다.

궁궐의 모든 건축 요소들은 진연의 예악(禮樂)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상징적이며 기능적인 설비가 된다. 전(殿)의 정문과 어도(御道), 월대, 행각 (行閣), 전내(殿內)에 세워진 기둥, 수렴(垂簾) 등은 의례 절차를 진행하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문을 열거나 닫아 공간의 조화와 차별을 도모하고, 기둥을 지표로 의물(儀物)을 배설하며, 월대와 보계의 층위를 사용하여 상하의 차별과 질서를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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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진찬도병(己丑年進饌圖屛)의 명정전외진찬(79쪽)
기축년진찬도병(己丑年進饌圖屛)의 명정전외진찬(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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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계는 예악론에서 말하는 ‘예악의 꾸밈(禮樂之文)’52)『예기(禮記)』, 악기(樂記)19. 을 실현한 것이다. 보계는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 ‘위와 아래’의 차별을 위하여 고안되 었다. 품계에 따라 좌석을 배치하고 아래위로 오르내리는 예의 꾸밈을 위하여 높이가 다른 공간이 필요했으며, 신분과 위계에 따라 좌석을 배치하는 반차(班次)를 위하여 높이로 구별되는 여러 층위의 공간이 필요하였다. 보계는 예를 위한 그릇일 뿐만 아니라 악(樂)을 위한 그릇이기도 하였다. 정재의 공연이 행해지는 동안에는 보계를 무대와 객석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계는 예의 꾸밈을 위하여 높이를 제공하였고, 악의 꾸밈을 위하여 넓이를 제공하였다.

진연이 거행되는 공연 공간은 무대를 중심으로 객석이 삼면으로 둘러싼 구조를 이루게 된다. 무대의 정면을 향해 있는 일등 객석에는 임금의 어좌가 배치된다. 어좌는 가장 좋은 전망을 확보할 수 있는 최고의 관람석이다. 무대와 악사석, 궁궐의 정문으로 이어지는 일직선 위에 자리 잡기 때문에 공연 장면은 물론 궁궐의 장엄한 모습, 시위대의 위용, 의장기의 화려한 물결까지도 한눈에 볼 수 있다. 단 한 명을 위한 일등 객석의 존재는 중세적인 공연 공간의 특징이었다.

명정전 진찬에서 왕세자의 좌석은 이등 객석에 해당하는데, 전내 대청에 있으나 동쪽에 서향으로 앉기 때문에 정면으로 무대를 접하지 않는다. 왕세자는 공연을 관람할 뿐 아니라 임금 곁에서 시연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보계의 양쪽에 있는 동반과 서반의 좌석은 삼등 객석으로 무대 측면에 접하고 있다.

고려시대 궁중 연향의 공연 공간은 기록화가 남아 있지 않아 문헌 기록을 통하여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고려사』 「예지」의 기록을 통하여 강안전(康安殿)에서 상원연등회를 거행할 때 궁궐이 연회 및 공연 공간으로 전환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기일(期日) 전에 도교서(都校署)는 부계(浮階)를 강안전의 층계 앞에 설치한다. 상사국(尙舍局)은 그 소속 인원을 거느리고 임금의 악차(幄次)를 전 위에 설치하며 악차의 동편에 편차(便次)를 설치하고 두 개의 사자 화로를 앞쪽 기둥 바깥에 설치한다. 상의국(尙衣局)은 어좌의 좌우 기둥 앞에 꽃탁자(花案)를 설치한다. 전중성(殿中省)은 부계의 상하 좌우에 등롱(燈籠)을 진열하고 궁궐 마당에 채산(彩山)을 설치한다.53)『고려사』 권69, 지23, 예11, 가례잡의(嘉禮雜儀), 상원연등회의(上元燃燈會儀), 소회일좌전(小會日坐殿).

부계는 보계와 같다. 계단의 층위를 없애 넓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설치하는 것이다. 부계를 설치함으로써 품계에 따라 문무백관의 좌석을 배치하고 교방 가무백희를 공연하는 무대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채산은 아름답게 꾸민 산대로 궁궐 마당에 설치하여 연회의 화려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상원 연등회의 대회(大會)에서 산대악인(山臺樂人)에게 꽃과 술을 하사하였다는 기록이나54)『고려사』 권69, 지23, 예11, 가례잡의, 상원연등회의, 대회일좌전. 1279년(충렬왕 5)에 정전산대색(庭殿山臺色)을 폐지하여 연등도감(燃燈都監)에 병합하였다는 기록55)『고려사』 권77, 지31, 백관2, 제사도감각색(諸司都監各色). 등으로 미루어 보아 산대의 위와 앞에서 가무백희를 공연한 악공과 배우가 존재하고 산대의 제작과 공연을 담당한 관리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궁중 연향에서는 산대를 세우고 가무백희를 공연하는 절차를 찾아볼 수 없다. 고려 때는 연등회가 아닌 일반적인 궁중 연향에서도 궁궐 마당에 산대나 채붕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는 유교적인 이념에 따라 궁정 연회의 규식이 더욱 강화되었고, 진연과 같은 궁중 연향에서 잡희 형식의 공연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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