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6권 연희, 신명과 축원의 한마당
  • 제3장 판소리의 전개와 변모
  • 1. 판소리란 무엇인가
유영대

판소리는 조선 후기에 정립된 민중 예술로, 서민들을 울리고 웃기면서 애환을 함께했다. 조선 후기의 민중 회화가 사실주의적 기풍을 지녔던 것과 마찬가지로, 판소리 역시 사설과 창곡뿐 아니라 지향한 정신까지 사실적이었다.

병풍을 두르고 돗자리를 펼친 마당이나 너른 마루, 즉 놀이판에서 광대의 소리와 몸짓 그리고 고수의 북 반주와 추임새가 어우러지는 판소리는 짧게는 3시간, 길게는 8시간씩 이어지면서 흥을 더해가는 판의 예술이다. 연행하는 형태로 보면 음악극이고, 담긴 내용으로 보면 서사극인 판소리는 이야기와 노래가 몸짓과 함께 어우러지는 종합 예술이다.

광대는 오른손에 부채를 들고 소리를 하는데, 노래로 하는 부분과 말로 하는 부분이 교차되어 나타난다. 노래로 하는 부분을 ‘창(唱)’이라 하고, 말로 하는 부분을 ‘아니리’라고 한다. 또한 연극적 동작도 함께하는데, 이를 ‘발림’ 또는 ‘너름새’라고 한다. 고수는 북을 치며 반주를 하면서 소리 중간중간에 ‘얼씨구!’, ‘좋다!’ 따위의 추임새를 넣는다.

판소리는 대체로 17세기경 숙종조 말에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판소리는 무당이 굿판에서 부르는 긴 서사적인 내용의 무가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 무당의 남편이었던 판소리 광대는 장단을 맞추어 주거나 창악·잡희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와 같은 추정은 설득력을 얻는다. 판소리와 굿에서 사용하는 장단이나 선율의 유사함이 이와 같은 추정을 뒷받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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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풍속도의 무녀굿
기산풍속도의 무녀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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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는 처음부터 광범위하게 ‘소리’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타령(打令), 잡가(雜歌), 광대 소리, 극가(劇歌), 창극조(唱劇調) 등으로도 불렸다. 판소리라는 명칭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신문과 정노식의 『조선 창극사(朝鮮唱劇史)』에서 창극과 함께 사용되었다. ‘판소리’는 ‘판’과 ‘소리’ 두 단어로 이루어진 합성어다. ‘판’은 장면이나 무대 또는 여러 사람이 모인 공간을 뜻한다. 유흥을 위하여 마련된 공간을 우리는 ‘놀이판’이라고 한다. 놀이판에서는 여러 종류의 놀이가 벌어진다. 전통 사회에서는 유랑 예인 집단이 놀이판을 마련하고 땅재주나 줄타기 등의 곡예를 공연했다. 그들이 공연한 무대를 ‘굿판’이라고 하며, 굿판에서 벌인 여러 예술 형태를 종합하 여 ‘판굿’ 또는 ‘판놀음’이라고 불렀다. 전통 사회의 굿판에서 광대들이 벌이는 판놀음에는 풍물, 줄타기, 꼭두각시놀음 등의 여러 종목이 있었으며, 판소리는 명창이 청중을 대상으로 부르는 소리의 측면이 강화된 연행 예술이었다. 그 후 판소리는 이 판놀음에서 분리되어 개인 집 안마당이나 고을 관아 또는 궁중의 정원 등 많은 사람들이 모인 판에서 독자적으로 공연하게 될 정도로 매우 인기 있는 놀음으로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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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흥갑의 판소리 장면
모흥갑의 판소리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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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에는 물건을 일정한 규격으로 찍어 내는 틀이라는 의미도 있다. ‘판을 짜다’라는 말 그대로 판소리는 긴 노래의 사설과 악조(樂調)를 배합하여 하나의 완결된 형태, 즉 판으로 짜서 부르는 노래라는 의미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판창(板唱)이 일정한 장단을 가진 악조로 부르는 노래라는, 동아시아권에 흔히 있던 일반적 구송 예술을 지칭하는 개념이므로 판소리는 판에 꽉 짜서 부르는 우리 노래라는 구체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판에 박히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판소리는 일정한 줄거리를 ‘정해진 상투적 양식에 따라 부르는 소리’로 이해할 수 있다.

판소리는 상당히 완강한 틀로 짜여져 있기 때문에 쉽게 변화하지 않은 채 전승된다. 하지만 명창은 공연 현장에서 관중과 호흡을 맞추는 과정에서 즉흥성을 도입하여 원래 짜여진 판의 내용이나 곡조와는 다른 새로운 요소를 삽입하여 부르기도 한다. 조동일은 정해져 꽉 짜인 판을 ‘고정 체계면’ 이라고 부르고, 바꿔 부르는 것이 가능한 대목을 ‘비고정 체계면’이라고 불렀다.

판소리는 20세기에 들어서서 다양한 용례를 가지고 있는 ‘창극’으로 불리기도 했다. 창극은 판소리를 무대 상황에 맞게 연극으로 재편성한 것으로, 먼저 판소리의 내용을 두세 명의 광대가 나누어 부르는 분창 또는 입체창의 형태를 거쳐 이루어 낸 것이다. 또한 창극은 판소리의 연극적 판짜기라고도 부를 만하기 때문에 판소리와 창극은 의미하는 바가 다르면서도 혼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송만갑은 판소리 창자(唱者)를 극창가(劇唱家)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판소리 창자가 노래 부르면서 연극적 동작도 보여 준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판소리 창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가장 전통적인 것은 ‘광대’다. 이들은 판소리로 구연되는 작품의 문학적 이해와 그에 근거한 음악적·연극적 표현 기술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 그러므로 광대는 전통 사회의 예술인으로서 음유 시인이자 작곡가이며, 가수이자 연극 배우라고 할 수 있다.

판소리 창자는 우선 훌륭한 가수로서 좋은 목을 타고나야 하며, 오랜 훈련을 통하여 완성된 성음을 구사해야 한다. ‘득음(得音)’은 판소리에서 필요로 하는 음색과 여러 가지 발성의 기교를 습득하는 것을 말한다. 판소리는 쉬어서 거친 듯하고 탁한 목소리, ‘곰삭은 소리’를 구사하여 연행한다. 그러나 탁하면서도 맑아야 하고,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소리를 지향한다.

판소리는 목소리를 표현 매체로 사용하는 예술이므로 목소리의 특징을 설명하는 ‘목’, ‘성음(聲音)’ 등의 용어로 소리의 특징과 완성도를 설명하고 있다. ‘성음’은 명창이 내는 소리의 특질을 나타내는 용어로, ‘통성’, ‘수리성’, ‘천구성’, ‘떡목’ 등으로 소리의 등급과 완성도를 표현한다. ‘통성’은 뱃속에서 바로 위로 뽑아 내는 호방한 소리를 말하며, ‘수리성’은 쉰 목소리와 같이 걸걸하게 나오는 소리를 이른다. ‘천구성’은 거칠고도 맑으 면서 높은 음역에서 내는 슬픈 선율의 소리를 말하며, 가장 좋은 ‘성음’으로 친다. 그리고 ‘떡목’은 텁텁하고 너무 거칠어서 별 조화를 내지 못하는 목소리를 이른다. 이 밖에도 ‘양성’, ‘노랑목’, ‘귀곡성’ 등과 같이 소리의 특징을 나타내는 용어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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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너름새
판소리 너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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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는 연희를 보여 주는 배우로서 소리뿐 아니라 ‘너름새’ 또는 ‘발림’이라고 하는 몸짓을 통해서도 판소리를 연기한다. ‘너름새’는 사설이 그려 내고 있는 장면을 춤이나 동작을 통하여 보조적으로 보여 주는 행위다. 부채를 펴서 박을 타는 흉내를 내거나 부채를 떨어뜨려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모양을 하듯 너름새는 사실적이기도 하지만 상징화되고 양식화된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신재효는 그의 광대가(廣大歌)에서 광대가 갖춰야 할 요건으로 ‘인물치레’, ‘사설치레’, ‘득음’, ‘너름새’의 네 가지 덕목을 꼽고, 그 중에서도 순식간에 천태만상을 보여 주기 위하여 ‘너름새’를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이 밖에 판소리 창자를 표현하는 용어로 ‘명창(名唱)’, ‘국창(國唱)’, ‘대광(大廣)’, ‘가왕(歌王)’ 등이 있다. 판소리 광대는 대체로 전통적인 예인 집단에서 충원되었으며, 예능도 대부분 세습되었다. 그런데 세습 집단이 아닌 곳에서 충원되는 경우도 있었다. ‘비가비 광대’는 전통적인 예인 집단이 아닌 양반층에서 충원된 광대를 특별히 지칭하는 말이다. 양반 출신이면서 명창이 된 권삼득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창하는 솜씨는 뛰어나지 않으나 재담 등으로 판을 휘어잡는 솜씨가 뛰어난 명창을 ‘아니리 광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판소리 명창들은 시인이며 음악가이자 배우이고, 연출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 판짜기의 명수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문학 작품의 작가에 관한 검토를 ‘작가론’이라는 분야에서 다 루듯 이들 명창들의 계통과 소리의 특징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광대론’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예컨대 ‘정정렬론’, ‘송만갑론’, ‘임방울론’ 등이 가능하고도 필요하다.

광대는 오랜 시간에 걸쳐 연창하는 서사 구조의 판소리를 부르기에 앞서 목을 풀기 위하여 짤막한 서정적인 노래를 부르는데, 이때 부르는 노래를 ‘단가(短歌)’라고 한다. 단가는 허두가(虛頭歌), 초두가(初頭歌), 영산(靈山)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단가를 부르면서 광대는 목의 상태를 점검하고, 고수와 호흡을 조절하며, 청중의 분위기나 수준을 가늠한다. 단가는 대체로 중모리 장단에 우조로 짜여져 있다. 현재까지 전하고 있는 단가는 40여 가지 정도 되는데, 이 가운데 진국명산(鎭國名山), 죽장망혜(竹杖芒鞋), 편시춘(片時春), 적벽부(赤壁賦), 사철가, 백발가(白髮歌), 이산저산, 호남가(湖南歌) 등이 자주 불린다.

단가를 부르고 난 다음 광대는 본격적으로 판소리를 말로 하는 대목인 아니리와 노래로 하는 대목인 소리를 서로 교차해 가면서 차례로 구연한다. 판소리는 아니리와 소리를 서로 교차하여 부르면서 극적인 내용을 고조시키기도 하고 완화시키기도 한다. 즉, 판소리는 ‘아니리+소리+아니리+소리+아니리+소리 ……’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서사시라고 할 수 있다.

아니리는 소리와 소리 사이에 평탄한 말로 줄거리를 요약해 주거나 이야기의 진행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광대는 아니리를 통해 지금 막 들려 준 노래에서 죄어 놓았던 청중의 긴장을 풀어 주면서 스스로는 숨을 돌리고 목을 쉬면서 다음 소리를 준비한다.

소리에는 일정한 박자의 장단이 있으며 고수가 소리북을 쳐 장단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소리 중에 장단과 어긋나게 자유 리듬으로 말로 하는 부분을 ‘도섭’이라고 부른다. 도섭은 또한 아니리를 하는 도중에 장단 없이 소리를 하는 대목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곧 창 가운데 들어 있는, 말로 하는 부분이나 아니리 가운데 포함되어 리듬을 매우 생동감 있고 다채롭게 만드는 붙임새를 도섭이라고 한다.

판소리가 성립되면서 성장하던 19세기 초반까지 판소리 공연은 지금처럼 완창할 경우 보통 3, 4시간 정도 걸리는 긴 작품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줄거리가 확장되고 ‘더늠’이 늘어나면서 매우 긴 노래가 되었다. 이로써 한 판을 완창하는 데 시간이 지나치게 오래 걸리기 때문에 한 작품 전체가 한 자리에서 공연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판소리가 양반층의 애호물이 되면서 전 판이 공연되는 경우가 생겨났다. 방만춘이나 주덕기와 같은 명창이 밤을 새워 가면서 적벽가를 완창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인기의 높이를 가늠할 수 있다.

판소리는 연행되는 형식에 따라 전체 내용을 완창하는 경우와 한 대목만을 따로 떼어서 부르는 경우가 있다. 한 대목의 판소리가 불리는 것을 ‘토막 소리’라고 하며, 완창되는 소리 전체를 ‘바탕 소리’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많은 명창들이 유성기 음반으로 소리를 박아 넣었는데, 이때는 소리가 음반의 규격에 맞게 짜여져서 보통 3분 정도의 토막 소리로 규격화되기도 하였다. 예컨대 일제강점기 때 명창인 임방울이 부른 쑥대머리나 이화중선이 부른 선인따라는 대표적인 토막 소리다.

판소리는 문학적 내용의 시로 이루어진 사설에 악곡과 장단을 배합하여 짜 맞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으로 보면 연극적인 성격이 강한 문학 작품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노래극이기도 하다. 판소리는 각각의 사설이 있고, 이 사설의 의미에 부합하는 악곡과 장단을 짜 넣어 완성한 음악극의 형식이다. 판소리의 사설은 일정한 장단과 악상에 따라서 정서가 결정된다. 보통 슬픈 내용의 사설은 느린 장단에 슬픈 악상으로 결합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사설은 빠른 장단에 슬픈 악상으로 결합되어 있어서 슬픔의 정도를 강화시키는 독특한 효과를 내기도 한다. 판소리 사설에 장단과 악상이 결합하는 양상은 매우 다채롭다. 서양 음악에서 장조는 기쁘고 씩씩하고 남성적인 악상을 주는 데 반해, 단조는 슬프고 어둡고 여성적인 느낌을 준다. 판소리에도 이 같은 악상이 있다. 악상에는 슬픈 선율과 즐거운 선율이 있고, 장단에는 느린 장단과 빠른 장단이 있어서 이 둘의 결합 방식에 따라 흥겨운 느낌, 장중한 느낌, 슬픈 느낌 등의 방식이 만들어진다. 판소리의 각 대목은 소리의 미의식이나 지향에 따라 우조, 평조, 계면조 등의 정서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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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풍속도의 판소리
기산풍속도의 판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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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에는 합당한 장단이 있으며 고수(鼓手)가 북으로 반주한다. 판소리 광대의 소리에 북으로 장단을 맞추는 사람을 고수라고 한다. 장단은 서양 음악의 박자와 흡사하며 소리의 빠르기를 북으로 조절한다. 어떤 대목에서는 북으로 강하게 각을 쳐서 소리의 진행을 강조하거나 소리의 미진함을 보완하며, 다른 부분에서는 북소리를 거의 내지 않아 소리의 흐름을 터주면서, 소리와 반주의 조화를 이루어 내는 것이 고수의 역할이다. 판소리에 사용되는 장단으로 가장 느린 진양조부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등으로 점점 빨라지며 이 밖에 엇모리, 엇중모리 등의 장단이 있어서 소리의 빠르기를 규정하고 호흡을 조절한다.

고수는 단순히 기계적으로 정해진 리듬을 치는 것뿐만 아니라 소리의 완급과 사설이 가진 정서까지 조절해 준다. 또한 다양한 장단의 틀을 가지고 창자의 소리 운용 태도에 따라 기교를 달리하여 북을 친다. 소리에 장단을 맞추는 방식으로 ‘대마디 대장단’이나 ‘부침새’ 등이 있으며, 고수는 소리의 흐름을 적절히 파악하여 다양한 기교로 북을 쳐서 반주하는 것이다.

‘대마디 대장단’은 박자의 첫박을 시작함과 동시에 사설의 구절도 시작하며 끝날 때도 함께 끝나야 하는 기교를 말한다. 규칙적이면서도 엄격한 기준이 있어서 쉽게 소리의 흐름을 예견할 수 있다. ‘부침새’의 기교로는 ‘엇부침’, ‘잉애걸이’, ‘완자걸이’, ‘괴대죽’ 등이 사용된다. 우리 몸에는 적절한 리듬감이 있기 때문에 강하게 북을 쳐야 할 대목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다. 그런데 예상하고 있는데도 강한 박이 나오지 않거나 미리 강한 박이 나오면 자연스레 그 대목에서 더욱 긴장하여 소리에 몰입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노래와 박자가 서로 엇갈려 구사되거나 장단을 구분할 수 없게 연출하는 기교도 청중에게는 기대의 위반이라는 독특한 경험을 유발시키면서 작품에 몰입하게 한다. 노래의 절정 부분에서 부침새의 기교가 많이 연출되는 것도 그와 같은 효과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다.

소리의 맥을 제대로 살려 주는 고수의 기능과 역할을 중요시하여 예전부터 ‘일고수이명창(一鼓手二名唱)’이란 말로 고수의 위상을 높여 주기도 했다. 고수가 소리판의 분위기를 흥겹게 만들고 창자를 북돋워 주기 위하여 ‘얼씨구’, ‘좋다’ 등 흥겨움을 돋우는 일정한 말을 노래의 사이에 집어넣기도 하는데, 이를 추임새라고 한다. 특히 소리꾼의 상태나 처지를 잘 헤아려 적절히 북으로 반주하는 것을 ‘보비위’한다고 한다. 고수가 내는 추임새는 광대의 구연 의욕을 북돋우기 위한 적극적 탄성이지만, 관중도 감상하는 자리에서 추임새를 발할 수 있다. 관중의 추임새는 판소리를 들으면서 일어난 감흥을 자연스럽게 발산하는 감탄사이며, 판을 생동감 있게 이끌어 나가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

판소리 사설의 수사법과 창곡의 구성에서 중요한 특징으로 ‘이면(裏面)’이라고 불리는 사실적인 묘사가 있다. 판소리 사설과 창곡의 구성 원리는 그려 내고자 하는 대상의 형태와 소리를 흡사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모든 사물을 똑같이 묘사하여 현실감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 바로 판소리의 수사법이다. 각각의 소리 대목들의 내용에 맞는 정서를 실감나게 음악적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 판소리의 미의식이다. ‘이면’은 사설의 내용이나 앞뒤 맥락에 서로 어긋나는 곳은 없는가, 사설의 내용과 음악적 결합이 적절한가, 창자는 이 대목에서 적절하게 노래를 부르고 너름새를 하고 있는가 하는 판소리의 부분적 완성도와 전체적 균형을 문제 삼는 철학적 기준을 나타내는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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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도
삼국지연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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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옥에 갇힌 춘향이가 밤중에 귀신이 우는 소리를 듣는 정황을 그린 노래인 귀곡성 대목은 19세기 명창 송흥록의 장기였다. 어느 날 송흥록이 진주 촉석루에서 이 대목을 부르자 갑자기 바람이 일며 촛불이 일시에 꺼지면서 하늘로부터 귀신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적벽가(赤壁歌)에서 부르는 새타령은 조조의 군사들이 적벽대전에서 참담하게 패한 후 달아나는 정황을 묘사한 더늠이다. 이날치가 이 대목을 부르자 수많은 새들이 모여들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와 같은 예는 원래 판소리의 사설이나 창곡이 가지고 있는 사실적인 묘사의 성격을 말해 주고 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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