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6권 연희, 신명과 축원의 한마당
  • 제3장 판소리의 전개와 변모
  • 3. 판소리의 유파와 명창
  • 판소리 유파의 성립
유영대

판소리는 전승된 지역에 따라 가창 방식과 소리 놓는 법 등이 다르다.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 등은 판소리가 전승되는 지역에 따라 소리하는 방식이 각각 독특한 형태로 발달해 왔으며, 그것이 하나의 법제로 굳어졌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 밖에도 경상도 소리 방식인 메나리조나 서울의 소리 방식인 경제 등이 판소리의 소리하는 방식이 되었다.

판소리의 소리제 가운데는 뛰어난 창자가 자신의 독특한 가창 방식을 개발한 것도 있다. 예컨대 19세기 초반의 명창인 권삼득이 개발한 소리인 덜렁제(설렁제, 권마성제)는 우쭐대고 덜렁대는 느낌을 주는 소리제다. 신만엽은 간드러진 단장성을 노래하는 방식으로 석화제(봉황조)를 창안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소리 스타일과 더불어 창자가 독창적인 대목을 창작하여 전승력을 가질 때 이 부분을 ‘더늠’이라고 한다. 더늠은 ‘더 넣는다, 더 늘어난다’는 의미로, 뛰어난 창자가 새롭게 짜 넣어 늘어난 부분이다. 물론 작가이자 작곡가로서의 창자의 창작을 인정해 주며, 이후에 그 대목을 부르는 창자는 소리의 모두(冒頭)에서 누구의 작품인지를 밝혀 준다. 김창환의 제비 노정기라든지 권삼득의 놀부 제비 후리는 대목이 바로 더늠이다.

대체로 판소리의 유파 형성은 19세기 초반 전기 여덟 명창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판소리가 명예와 부의 축적을 보증하는 예술이 되면서 광대의 법통을 강조하는 경향이 나타났으며, 먼저 동편제와 서편제가 대립적으로 존재하였고 중고제가 생겨나게 되었다.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 등의 개념으로 나뉘는 것은 판소리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세기 중엽 이후의 현상으로 파악할 수 있다.

19세기에 이르면 판소리는 양반과 서민층이 함께 즐기는 민족 예술 형태로 발달하게 되었다. 판소리를 감상하는 수준이 높아지면서 양반들은 판소리의 사설과 음악의 내용에 비평적 견해를 제시하였다. 양반층이 개입하면서 조야한 판소리 사설이 양반들의 가치 규범을 따르는 전아한 내용으로 변모되었고, 감정을 과장되게 드러내는 창법에 일정한 제한이 가해져 우아한 곡조나 화평한 곡조가 채용되었다. 판소리의 성격이 이처럼 양반층과 서민층을 아우르게 되면서 유파가 형성되었으며, 유파별로 기법과 미의식에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

판소리를 비롯한 예술 행위는 관객의 취향과 선택이라는 미의식의 작용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한다. 청중은 힘차고 남성적인 것이 좋다는 음악관을 애호하기도 하고, 섬세하고 슬픈 취향의 여성적 음악관을 선택하기도 한다. 마당에서 질박한 내용의 사설을 거칠게 부르는 것에 점수를 더 줄 수도 있으며, 방 안에서 우아한 태를 갖추고 점잖은 소리를 하는 것이 예술적 완성도가 있다는 미의식을 가질 수도 있다.

판소리가 기록의 대상이 된 것은 판소리의 청중이 양반층으로 확대되던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 일반 민중을 대상으로 마당에서 초립을 쓰고 소리할 때의 광대는 그 기반이 민중적인 것이기에 사설이 포괄하는 내용 또한 민중적일 수밖에 없다. 이때 광대가 선택한 음악 어법은 감정 표현을 솔직 하고 직설적으로 토로하는 것으로, 계면조야말로 대표적인 민중 취향의 미의식이었다. 마당에서 하는 소리는 질박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렇지만 양반들이 판소리의 주요한 청중으로 등장하면서부터 상황은 바뀌었다. 광대가 청창옷을 입고 양반 좌상객 앞에서 소리를 할 때, 그들은 격상된 지위를 실감하면서 그것이 주는 풍요로움에 만족하였다. 사대부를 대상으로 하는 방 안에서의 공연은 한 번 소리하면 일 년 먹을 것이 생긴다는 증언이 있듯이, 이전과는 현저히 다르게 광대의 격을 높여 주었다. 판소리가 안방으로 들어가면서 사설도 상황 변화에 걸맞게 변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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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혼례도병(回婚禮圖屛)의 판소리
회혼례도병(回婚禮圖屛)의 판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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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층에서 즐기던 판소리가 감정을 격정적으로 토로하는 폐단이 있다고 양반들이 지적하면서 판소리 음악은 감정의 지나친 표출을 일정하게 자제하는 창법을 구사하게 되었으며, 이 같은 미의식을 반영하면서 자연스럽게 한 유파의 스타일로 정형화되었다.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굿판의 선율을 뜻하는 ‘어정소리’를 판소리 음악으로 담아내면 안 된다는 미의식이 판소리 음악의 변화를 촉진시켰다. 처절한 정서를 진계면으로 표출하는 노래들은 양반의 미의식인 중용의 가치관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었다. 양반층이 요구하는 미의식을 판소리 광대들이 수용하여 판소리 음악은 감정을 지나치게 노출하지 않고 절제하여 표현하는 쪽으로 변화되었다. 판소리 가운데 시창(詩唱)의 빈번한 등장과 가곡성 우조의 등장, 평조를 포함한 경기도 소리제의 편입 등은 이 같은 미의식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판소리를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 등 유파별로 나누어 서술한 최초의 자료는 정노식이 지은 『조선 창극사』다. 정노식은 20세기 전반까지 판소리 현장을 조사하여 보고한 이 책의 ‘대가닥조’에서 판소리의 유파와 그 기법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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