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6권 연희, 신명과 축원의 한마당
  • 제3장 판소리의 전개와 변모
  • 3. 판소리의 유파와 명창
  • 판소리의 유파
  • 서편제
유영대

서편제는 섬진강 서쪽인 광주·나주·보성 등지에서 전승되는 소리를 지칭하며, 박유전의 법제를 표준으로 삼은 것이다. 박유전은 헌종 무렵 전북 순창에서 태어났으며, 흥선 대원군의 총애를 받으며 한양에서 크게 활약하다가 만년에 보성군 강산리로 옮겨 판소리에 장식과 기교를 덧붙여 서편제를 발전시켰다. 박유전은 정노식의 표현대로 ‘목청이 절등(絶等)하게 고와서 당시 비주(比儔)가 없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 박유전이 애초에 가졌던 소리는 서편제로, 정노식은 “서편조의 분류가 박씨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박유전은 자신의 본 바탕을 서편제 소리로 채운 후에 한양에서 활동하면서 서편제와는 취향이 대조되는 다른 유파를 개발하였는데, 그것이 이른바 강산제(江山制)다. 현재의 심청가는 애초의 출발이 박유전으로 비롯되었기 때문에 서편제와 강산제 사이에 공통점이 많다.

        정창업→김창환→김봉학·김봉이→정광수→박초월

박유전→이날치→김채만→박동실→한승호·김소희·한애순·김록주

        정재근→정응민→정권진·성우향·조상현·성창순·안채봉

박유전의 심청가는 이날치에게 전승되었다. 이날치의 소리는 김채만에게, 김채만의 소리는 다시 박동실에게 전승되어 서편제 심청가의 본류가 되었다.

앞의 계통도 가운데 정창업은 박유전 계통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이 경우 서편제는 다른 계통으로 정창업 계열을 상정할 수 있다. 정창업은 철종·고종 전기까지 활동한 명창으로 전남 함평 출신이다. 정창업은 흥보가를 특히 잘 불렀으며, 김창환을 통하여 전승되고 있다.

박유전이 정재근에게 전수한 심청가를 특별히 ‘강산제’라고 부르며, 정재근이 정응민에게 전수한 소리의 유파를 ‘보성소리’라고 한다. 이로 보면 보성소리는 서편제 가운데 특히 19세기 말에 보성을 거점으로 형성된 판소리 유파인 셈이다. 정응민은 당시의 풍조가 슬픈 성음, 계면조만 좋아하고 노랑목에 경도되는 풍조에 대해 여러 차례 개탄하면서 스스로 고제 소리를 지켜야 한다고 다짐하였다. 이러한 원칙 때문에 청중들이 계면 성음의 노랑목을 원해도 영합하지 않고 꼿꼿한 양반 취향의 판소리를 지켜 왔다.

보성소리 안에는 김세종제 춘향가와 강산제 심청가 그리고 정응민으로 상징되는 정씨 가문의 내림 소리가 혼재되어 있다. 이 가운데 보성소리의 범위가 가장 크며, 그 안에 김세종제 춘향가와 강산제 심청가가 포함된다. 보성소리에 강산제 심청가는 포함되지만, 그렇다고 강산제가 바로 보성 소리 전체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보성소리는 다음의 표와 같이 구성되어 있다.

보성소리의 구성
보성
소리
동편제 춘향가(김세종→김찬업→정응민→정권진·성우향·조상현·성창순)
강산제 심청가(박유전→정재근→정응민→정권진·성우향·조상현·성창순)
적벽가(박유전→정재근→정응민→정권진)
수궁가(박유전→정재근→정응민→정권진)

보성소리는 춘향가의 경우 김세종제를, 심청가, 적벽가, 수궁가의 경우는 강산(박유전)제를 받아들여 자신들의 자산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보성에서 전승되어 온 소리 일반을 지칭할 때는 보성소리라는 명칭이 적절하며, 그 소리의 원래 계통을 밝힐 때는 김세종제 춘향가, 강산(박유전)제 심청가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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