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6권 연희, 신명과 축원의 한마당
  • 제3장 판소리의 전개와 변모
  • 4. 판소리 열두 마당의 내용
유영대

판소리의 전체 레퍼토리는 얼마나 될까? 현재까지 모두 12종류가 알려져 있다. 마당이라는 용어는 마당에서 ‘길게 제대로 하는 소리’라는 의미에서 판소리의 종류를 광범위하게 일컫는 말이다. 원래 판소리의 무대가 마당이라는 점에서 열두 마당이라고 불렀다. 최근에는 ‘판소리 다섯 바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마당 소리’에서 ‘바탕 소리’로의 진행은 판소리의 기반 변모와도 관련된다. 판소리가 마당에서 함부로 불리는 예술이 아니라는 인식에서 ‘바탕 소리’라는 용어가 ‘마당 소리’에 대치되었기 때문이다.

판소리에는 열두 마당이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다섯 개는 전승되고 있으나 일곱 개는 실전되었다. 이들 판소리 작품의 이름은 19세기 송만재가 지은 「관우희」와 신재효의 『판소리 사설집』, 정노식의 『조선 창극사』, 이선유의 『오가전집』 등에 내용과 함께 전한다. 이들의 이름을 정리하면 표 ‘판소리 열두 마당의 내용’과 같다.

춘향가(春香歌)는 조선 후기 사회의 본질적인 모순을 신분이 서로 다른 남녀 간의 사랑을 통하여 문제 삼고 있다. 기생의 딸 춘향이와 양반 자제 이몽룡의 사랑을 중심으로 애절하면서도 신명나게 묘사한 작품으로, 당대의 신분 제도에 대한 모순점과 부도덕하고 탐욕스러운 탐관오리를 벌하려는 서민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판소리 열두 마당의 내용

이름
송만재(관우희) 신재효(6) 정노식(12) 이선유(5)
춘향가 춘향가 춘향가 춘향가 춘향가
심청가 심청가 심청가 심청가 심청가
흥보가 흥보가 박타령 흥보가 박타령
수궁가 수궁가 토별가 수궁가 수궁가
적벽가 적벽가 적벽가 적벽가 화용도
변강쇠가 변강쇠 타령 변강쇠가 변강쇠 타령  
배비장 타령 배비장 타령   배비장 타령  
강릉 매화 타령 강릉매화전   강릉매화전  
옹고집전 옹고집   옹고집  
장끼전 장끼 타령   장끼 타령  
왈짜 타령     무숙이 타령  
가짜 신선 타령     숙영낭자전  

남원 퇴기(退妓) 월매의 딸 춘향은 남원골 사또 자제 이몽룡과 광한루에서 만나 사랑을 나누게 되고 급기야 혼인을 약속한다. 사또가 한양으로 승직하게 되어 헤어지게 되자 두 사람은 후에 만날 기약을 남기고 오리정에서 이별한다. 변학도가 남원에 부임하면서 춘향이 기생 신분임을 알고 수청을 강요하나 춘향은 거절하여 옥에 갇힌다. 한편 이몽룡은 과거에 급제하여 어사가 되어 남원에 나타난다. 다음 날 동헌에서 변학도의 생일 잔치 자리에 출도한 이몽룡은 변학도의 탐학상을 공개하고 춘향을 구하여 혼인한다는 줄거리다.

심청가(沈淸歌)는 조선 후기 사회의 가난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 주 면서, 그것의 환상적 극복을 노래한 작품이다. 전반부의 심청가는 미천한 신분의 부녀가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을 노래 부르는 것으로 현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심청 어미인 곽씨 부인의 품팔이 노래, 심청의 동냥하는 대목, 뱃사람들이 사람을 사가는 대목, 뺑덕 어미의 등장 등은 조선 후기 민중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여 들려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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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춘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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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전』
『심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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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후반부는 심청이 구출되고 귀하게 되는 과정을 아름답고 환상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인당수에 빠진 심청은 용궁으로 안내되어 어머니와 상봉한 후 연꽃을 타고 다시 인당수로 돌아온다. 도사공이 심청이 탄 연꽃을 황제에게 바쳐 심청은 황후에 이르게 되며, 황후의 부탁으로 황성에서 맹인 잔치를 열게 된다. 그 자리에서 부녀가 상봉하고, 심 봉사가 눈을 뜨며, 모든 맹인도 함께 눈을 뜨게 된다는 낭만적 결말에 이른다. 심청가의 구조가 앞부분은 굿처럼 ‘풀이’로 되어 있고, 뒷부분은 ‘놀이’로 되어 있다는 분석은 매우 설득력 있다.

심청가는 슬픈 대목이 너무 많아서 비극적 정서가 강하지만, 향유층이 양반층으로 상승하면서 심 봉사도 양반으로 격상되고, 심청이 장 승상 부인 과 만나는 등 우아한 내용이 첨가되기도 한다. 이 같은 지향에 의하여 심청의 태몽이나 용궁에서의 모녀 상봉이 추가되기도 하고, 장 승상 댁에 가는 대목에서는 가곡성 우조를 사용하여 격조를 유지한다. 이 같은 방식으로 심청가의 내용과 음악은 많은 변화를 겪는다.

흥보가(興甫歌)는 형제 간의 우애 문제를 다루면서 조선 후기 서민 사회의 궁핍한 정황을 살갑게 그려 내고 있는 작품이다. 흥보의 착한 성품과 놀보의 심술궂은 성품을 대조하여 보여 줌으로써 흥미를 먼저 돋운다. 흥보는 부러진 제비의 다리를 고쳐 준 대가로 박씨를 얻고, 그곳에서 온갖 보물이 나와 부자가 된다. 한편 형인 놀보는 일부러 제비 다리를 부러뜨려 곤욕을 당하고 재물을 빼앗기게 된다.

흥보가 매품을 파는 대목이나 가난 타령, 돈 타령 등을 통하여 가난한 서민들이 고생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흥보가의 전체 분위기는 해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흥보의 박에서 밥과 옷과 집이 나온다는 것도 조선 후기 민중들의 의식주에 대한 꿈을 환상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수궁가(水宮歌)는 조선 후기의 정치 현실을 우화적으로 풍자한 작품이다. 힘은 없으나 살아가는 지혜를 가진 토끼로 대변되는 서민층과 탐욕스럽고 부도덕한 용왕 및 별주부로 대표되는 지배층 사이의 갈등이 우화적으로 잘 그려진 통쾌한 정치 풍자 문학이다.

용왕이 병이 들자 명의가 토끼의 간이 약이 된다는 진단을 내린다. 충신인 별주부가 토끼를 구하고자 육지로 나오게 되는데, 이 과정을 그린 노래가 고고천변이다. 자라는 육지에 나와 ‘상좌 다툼’하는 모습을 보다가 드디어 토끼를 만나게 된다. 자라는 세상살이의 고달픔과 함께 이상향적인 용궁 생활을 제시하여 토끼를 꼬드겨 수궁으로 데리고 간다. 수궁에 당도한 토끼가 비로소 속은 줄 알고 꾀를 써서 용왕을 속이고 수궁을 빠져나오는 이야기가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육지에 도착한 토끼는 덫에 걸리 거나 독수리에게 잡혀 다니는 등 고난을 겪으면서 살아간다.

토끼전은 토끼를 중심으로 지배층을 풍자하면서 발랄한 서민 의식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면 계층 간의 갈등보다는 골계적인 요소를 강조하며, 별주부의 충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내용이 바뀌게 된다.

적벽가(赤壁歌)는 원래 중국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가운데 적벽대전을 중심으로 조조의 화용도 피난까지의 줄거리를 차용하여 서민의 입장에서 새롭게 개작한 정치 풍자 작품이다. 수많은 영웅과 장수가 등장하여 전쟁과 웅혼한 기상을 전하는 대목이 많기 때문에, 빠른 장단에 웅장하고 씩씩한 우조 및 호령조를 많이 사용하는 남성적인 작품이면서, 군사 서름 타령이나 군사 점고 등 서민 군사들의 서러움을 직접적으로 토로할 때는 서름조의 노래도 많이 등장하여 판소리다운 묘미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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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도의 지성단제갈제풍(志星壇諸葛祭風)
삼국지연의도의 지성단제갈제풍(志星壇諸葛祭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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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가는 조조를 정당성이 결여된 권력의 핵심으로 규정하여 풍자하고, 부당하게 전쟁에 동원되어 죽음으로 내몰리는 민중들의 한을 절실하게 그려 내고 있다. 전쟁에 대한 혐오가 주된 내용이며, 타락한 정치 지도자를 여지없이 풍자하는 완성도 높은 판소리 작품으로 평가된다. 후대에 이르면 ‘도원결의(桃園結義)’라든지, ‘삼고초려(三顧草廬)’ 같은 대목을 대폭 부연하여 충의(忠義)를 노래하는 장수와 영웅들의 이야기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특히 양반 사대부들이 적벽가를 애호하면서 이 같은 측면이 더욱 부각되었다.

적벽가는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에서 형제가 되는 결의를 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공명을 모시러 삼고초려하는 대목으로 이어지며, 적벽대전에서 공명이 동남풍을 빌려 조조의 군사를 대파하게 되고, 조조가 화용도로 도망치자 관우가 그를 사로잡았다가 놓아 주는 대목까지 부른다. 그러나 각각의 부분에서는 민중의 입장에서 새롭게 개작된 대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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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고초려도(三顧草廬圖)
삼고초려도(三顧草廬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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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열두 마당 가운데 전승이 끊어진 작품을 실전 판소리라고 한다. 변강쇠 타령, 옹고집 타령, 배비장 타령, 강릉 매화 타령, 장끼 타령, 무숙이 타령, 가짜 신선 타령 등 모두 일곱 작품이다. 이 작품들도 조선 후기에는 중요한 레퍼토리로 전승되고 있었으나, 주제가 대체로 민중적 세계관에 철저하다는 점, 사설의 내용이 발랄한 민중 언어로 되었다는 점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전승이 끊겼다. 이들이 전승 과정에서 탈락한 시기는 19세기 후반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중 기반 속에서 태어난 판소리는 19세기 들어 자체 변모와 발전을 통하여 다수의 양반을 청중으로 끌어들이기에 성공했으나, 또 이들의 적극적인 개입과 참여 속에서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양반들의 감성과 미의식에 적합하지 않은 일곱 작품이 탈락하게 되었다. 이 일곱 작품은 내용에 있어서 세속적 욕망의 세계를 담고 있었으므로, 절제와 균형, 세련을 요구하는 양반층의 문화와는 어울릴 수 없었던 것이다.

변강쇠가는 천하의 오입쟁이인 강쇠와 성욕이 왕성한 옹녀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조선 후기 서민과 천민들의 삶의 여러 모습을 흥미 있게 사실 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다. 노랫말은 『신재효 사설집』에 실려 있으며, 송흥록 명창이 이 소리를 잘했다고 전해지고 있고, 일제강점기까지도 부분적으로 불렸다. 최근에 박동진 명창이 이를 재현하여 부른 적이 있다. 변강쇠가는 가루지기 타령 또는 횡부가(橫負歌)라고도 한다. 시체를 ‘가로(橫)+지기(負)’하여 치상(治喪)하는 정황을 그린 판소리라는 의미다. 뻣뻣하게 굳은 시체를 지게에 가로져서 내가는 것은 아주 가난한 천민들의 장례 풍속이라고 할 수 있다.

남도에 사는 천하 양골 변강쇠와 평안도에 사는 천하 음녀 옹녀는 자신들의 삶의 터전에서 살지 못하고 떠돌다가 만나 부부가 된다. 이들은 만나서 처음에는 도시 살림을 해보지만, 변강쇠가 놀기만 일삼고 강짜만 부려 결국 그곳에서 살지 못하고 지리산 속으로 들어간다. 변강쇠는 도시의 룸펜 또는 왈짜 같은 측면을 보여 주기도 한다. 지리산에 들어가서도 놀기만 일삼던 변강쇠는 장승을 베어다 불을 때고는 장승 동티가 나서 죽게 된다. 그런데 변강쇠를 치상하는 과정에서 사건이 다른 양상으로 확대된다. 변강쇠를 치상한 후에 옹녀와 살기로 하고 이 일에 나선 사람들이 모두 죽거나 땅에 들러붙는 변괴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사당 거사패와 뎁득이가 지성으로 귀신에게 빌어 땅에 붙었던 궁둥이가 떨어지고 치상하게 된다는 줄거리다.

변강쇠가는 음란함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지만,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성’을 직접적 소재로 하여 인간사의 여러 가지 문제를 다루었다. 농촌에서 유리된 유랑민들의 뿌리 뽑힌 삶의 모습, 왈짜와 유랑 연희패들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 장승과 관련한 신분 간의 싸움들을 함께 읽을 때 이 작품의 진정한 면모에 다가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배비장 타령(裵裨將打令)은 실전 판소리지만, 소설 『배비장전』을 통하여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도덕 군자인 체하는 배 비장이 제주도에 가서 애랑(愛娘)이라는 기생에게 반한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행실의 바름을 자랑 하던 배 비장의 비속성이 드러나고, 형식에 치우쳐 공허한 유교적 도덕 관념을 통렬하게 풍자하면서 전체적으로 해학이 넘쳐흐르는 작품이다.

서울의 김경(金卿)이라는 양반이 제주 목사가 되어 부임하는 길에 서강(西江)에 사는 배 선달을 비장(裨將)으로 데려간다. 배 비장은 여색(女色)에 심지가 곧기로 정평이 나 있어 제주에 도착하여 주색을 멀리하고 도도하게 지낸다. 상관인 제주 목사의 명을 받은 기생 애랑과 방자는 계교를 써서 비장을 유혹한다. 배 비장은 애랑의 집에 찾아갔다가 알몸으로 뒤주 속에 갇힌 채 바다에 버려진 것으로 꾸며진다. 실제로 배 비장이 버려진 곳은 바다가 아니라 감영의 뜰이었는데, 그는 이 사실을 모르고 헤엄쳐 나오다가 둘러선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한다는 내용이다.

강릉 매화 타령(江陵梅花打令)은 정노식의 『조선 창극사』에 판소리 열두 마당의 하나로 소개되었으나, 사설이 전하지 않다가 지난 1992년 이 사설을 바탕으로 한 『매화가(梅花歌)』라는 소설이 발견되어 면모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작품은 타락한 인물인 골생원에 대한 풍자와 희화를 통하여 삶의 건전성과 균형 감각을 일깨우고자 한 작품이다.

강릉 부사의 책방 골생원이 강릉의 일등 명기 매화를 만나 즐겁게 지내는데, 과거를 보라는 부친의 편지를 받는다. 서울에 온 골생원은 과거 시험 답지에 매화를 그리워하는 시를 쓰고 낙방하여 강릉으로 돌아온다. 강릉 부사는 거짓으로 큰길가에 매화의 무덤을 만들고 매화가 죽었다고 전한다. 골생원은 매화의 무덤에 가서 통곡하고 매화의 초상화를 그려 껴안고 지낸다. 황혼 무렵, 사또의 지시로 매화가 귀신인 체하고 골생원과 만난다. 다음 날 매화는 골생원을 나체로 경포대로 유인한다. 골생원은 매화와 함께 자신의 넋을 위로하는 풍악에 맞추어 춤을 추다가 사또에게 자신이 속았음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옹고집 타령(雍固執打令)은 소설 『옹고집전』의 내용과 일치할 것으로 생각된다. 옹진골 옹당촌에 사는 옹고집은 욕심 많고 고집이 센 인물이다. 그는 불도(佛道)를 능멸하여 동냥 온 승려들에게 행패를 부리다가 도승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도승은 도술을 부려서 지푸라기로 허수아비 옹고집을 만든다. 가짜 옹고집은 진짜 옹고집의 집을 찾아가 진짜를 내쫓고 그의 아내와 함께 산다. 진짜 옹고집은 가짜에게 쫓겨난 후 온갖 고생 끝에 개과천선(改過遷善)하게 되고, 도승의 용서를 받은 다음 다시 집으로 돌아와 살게 된다.

옹고집은 놀보와 같은 유형의 인물로 조선 후기에 등장한 서민 부자층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들은 조선 후기 화폐 경제의 발달과 더불어 심화된 계층 간의 갈등을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보여 주는 극단적 이기심과 일탈적인 행동이 서민들의 반감을 사게 되어 신랄한 풍자 대상이 된 것이다.

장끼 타령은 자치가(雌稚歌)라고도 불린다. 소리는 실전되었으나 소설 『장끼전』이 전하고 있어서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장끼가 까투리의 말을 듣지 않고 콩을 주워 먹다가 짐승을 잡는 틀인 차위에 치어 죽게 되자 까투리는 여러 새들의 청혼을 받는다. 결국 문상을 온 홀아비 장끼에게 시집가서 잘 살았다는 이야기다. 타인의 충고를 받아들여야 하며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등의 교훈적인 내용이 중심을 이루는 가운데 여성의 정조 관념에 대한 풍자와 기층 민중에 대한 참혹한 수탈의 양상을 아울러 함축하고 있는 작품이다.

왈짜 타령(曰者打令)은 무숙이 타령이라고도 하며, 중고제 명창 김정근(金定根)이 잘했다고 하나 소리는 전하지 않는다. 1991년 소설 『계우사(戒友辭)』가 왈짜 타령의 사설 정착본인 것으로 판명된 바 있다. 이 작품은 18세기 이래 서울의 도시 유흥이 사회 현상으로 대두된 현실을 배경으로 사회의 기생적 존재인 왈짜의 행태를 풍자함으로써 새로이 등장한 평민 요호층(饒戶層)의 삶에 대한 균형 감각을 일깨우고자 하는 의도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왈짜’는 왈패, 혹은 건달을 가리키는 말이다.

『계우사』의 주인공 김무숙은 대방왈자로 서울 중촌(中村) 갑부의 아들이며, 여자 주인공 의양은 평양에서 선발되어 궁중에 바쳐진 내의원 소속 기생이다. 무숙(武淑)은 의양을 한 번 본 뒤 그녀에게 반하여 그녀를 기적(妓籍)에서 빼내어 함께 살림을 차린다. 의양은 살림을 제법 규모 있게 꾸려 가지만, 무숙은 여전히 방탕한 생활을 한다. 보다 못한 의양은 무숙의 본처와 노복인 막덕이, 그리고 대전 별감 김철갑, 다방골 김 선달, 평양 경주인 등과 공모하여 무숙을 극도의 경제적 궁핍에 빠지게 함으로써 마침내 개과천선시킨다는 것이 이 작품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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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송희 명창
박송희 명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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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신선 타령(假神仙打令)은 사설이나 소리가 전하고 있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송만재의 「관우희」에 따르면, 한 사내가 신선이 되려고 금강산에 들어가 노승에게 신선이 먹는다는 복숭아와 술을 구해 먹었으나 속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숙영낭자전(淑英娘子傳)』은 판소리로서의 전승은 끊겼지만 소설로서의 재미 때문에 예전부터 많이 읽혔다. 경상도 안동 땅에 백상군이라는 선비가 명산대찰(名山大刹)에 기도하여 아들 선군을 얻었다. 근사한 사내가 된 선군은 어느 날 서당에서 글을 읽다가 잠시 조는 사이에 꿈속에서 선녀인 숙영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 선군은 부모님께 산천 경치를 구경하고 오겠노라고 고하고는 숙영을 찾아 옥련동으로 떠난다. 옥련동에 도착한 선군은 숙영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부모님께 아뢰고, 함께 8년 동안 아들과 딸을 낳고 행복하게 지낸다. 그러다가 선군이 과거를 보기 위하여 한양으로 떠나게 되는데, 선군은 숙영 낭자를 잊지 못하여 가던 길을 되돌아와 부모 몰래 숙영 낭자의 방에 들어가서 자고는 다시 길을 떠난다. 그러나 이를 시기한 시녀 매월이가 백 진사에게 달려가 숙영 낭자의 방에 외간 남자 가 출입한다고 모함을 한다. 백 진사가 숙영을 불러 이를 꾸짖자 숙영 낭자는 억울함을 이기지 못하여 아들과 딸에게 슬픈 내용의 유언을 남기고는 자살한다. 이때 선군은 과거에 장원 급제한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내는 모함에 빠져 몸에 칼을 꽂고 자살해 있다. 선군은 울면서 숙영 낭자를 살리기 위하여 약을 구하러 천태산으로 길을 떠난다. 천태산에 도착한 선군은 노승이 주는 약을 받아 집으로 돌아와 숙영 낭자를 살리고 행복하게 산다.

숙영낭자전은 그동안 전승이 끊어졌었지만, 일제강점기에 정정렬 명창이 천태산에 약 구하러 가는 대목 등 몇 구절을 소리로 짜서 불렀다. 숙영낭자전은 박녹주 명창을 거쳐서 박송희 명창에게 전수되었다. 특히 박송희 명창은 전승되지 않은 이 소리의 앞부분을 새로 짜 넣어 소리를 완미한 작품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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