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6권 연희, 신명과 축원의 한마당
  • 제4장 전통 연희 집단의 계통과 활동
  • 1. 연희 집단의 태동
박전열

연희는 연희자와 관객이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모임으로써 비로소 시작된다.

한반도에서 언제부터 전문 연희 집단이 활동하였는지는 분명한 기록이 없어 단정할 수 없지만,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제천 의식의 일부로 일찍이 연희가 행해졌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3세기경 한반도의 생활상을 기록한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다른 중국 사료에 따르면, 한반도에서는 국중 대회를 열고 제천 의식을 치르며 가무백희를 연희하였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마한의 봄가을 제사 등에서 신에게 제사를 올린 뒤에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즐겁게 놀았다.

마한에서는 5월이 되어 씨를 뿌리고 나면, 귀신에게 제사를 올린다. 밤낮에 걸쳐 쉬지도 않고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노는데 수십 명씩 되었다. 춤을 출 때는 한꺼번에 일어나 서로 뒤를 따르면서 땅을 디디며 손발을 함께 높였다 낮추었다 한다. 서로 장단을 맞추는데 탁무(鐸舞)와 비슷하다. 10월에 농사일을 마치면 또 이렇게 놀았다.151)『삼국지(三國志)』 권30, 위서30, 동이전, 한(韓).

비록 전문 연희에 관한 구체적인 기술은 없지만 인용문과 같이 제의 현장을 묘사한 기록을 통하여 당시 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 기록에는 수십 명씩의 무리가 참가하여 노래와 춤을 즐기는 모습이 나타나는데, 이 무리는 전문 연희 집단이 아니라 오늘날의 관객에 해당하는 일반인일 것이다. 그리고 제천 의식을 주관하는 사제단이 제의의 일부로 연희된 노래와 춤을 선도하였을 것이다.

오늘날 각지의 동제(洞祭)에서 볼 수 있는 무당의 제의(祭儀)와 놀이는 고대 제천 의식의 원형을 유추하는 근거로 삼을 수 있다. 마을 사람들과 무당 등의 사제단 사이에는 관객과 연희자라는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모습은 이미 고대 제천 의식에도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고대에는 아직 전문 연희 집단이 형성되었다고 보기 어렵지만, 제천 의식 가운데 연희자로서의 사제 집단이 일반인보다 세련된 연희를 함으로써 무리를 선도한 것으로 보인다.

고대 사회에 뿌리를 둔 사제 집단의 연희자 역할은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전승되었으며, 오늘날에도 민간 신앙에 뿌리를 둔 마을 단위의 제의에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제 집단의 연희자 역할이 민간에 계승되는 한편, 삼국시대에 들어서면서 중국으로부터 불교와 서역 문물이 유입되었다. 서역과 중국의 연희가 전래되고 이에 자극을 받아 원래 있던 연희의 내용도 다양해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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