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나라에서는 산악·백희가 매우 융성하였다. 『수서(隋書)』 「음악지(音樂志)」에 “어룡란만(魚龍爛漫) 배우(俳優), 난장이(侏儒), 산거(山車), 거상(巨象), 발정(拔井), 종과(種瓜), 살마(殺馬), 박로(剝驢) 등 매우 기괴한 것이 100여 가지가 되었다. 이를 백희라고 한다.”160)『수서(隋書)』 권15, 지10, 음악 하.고 하였다. 백희의 내용은 흉내 내기, 기괴한 몸짓, 환술 등으로 종목이 매우 다양한데 이를 통틀어서 백희라고 하였다. 백희와 산악은 비슷한 용어로 엄격하게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혼용된다. 예를 들어 줄타기, 무거운 물건 들어 올리기, 솟대놀이, 칼 던지기, 불 뿜기 등도 백희 또는 산악에 포함되는 연희인데, 이러한 종목은 일반인이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요령이나 비법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전문적인 훈련을 받아야 터득할 수 있는 것이므로 볼거리로서 가치가 높다.
산악·백희는 수나라 이전부터 서역에서 전래되었는데, 우리나라에도 삼국시대부터 유입되었다. 삼국에서 산악·백희를 연희한 사람들은 서역에서 온 사람일 가능성도 있지만, 이미 중국에 뿌리를 내린 연희를 중국인이 전래자가 되어 삼국에 들어와 연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뿐 아니라 일단 전래된 서역 계통의 연희는 삼국에 정착되면서 차츰 연희를 익힌 삼국인에 의해서 공연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과정은 최치원의 「향악잡영」 5수에서 노래한 오기(五伎)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향악(鄕樂), 즉 신라의 연희라는 제목이기는 하지만, 그 내용으로 보아 중국과 서역에서 전래된 산악·백희에서 영향을 받아 형성된 삼국의 연희를 종합한 다섯 가지 놀이라는 견해는 이미 여러 방면에서 제시되었다.161)김재철, 『한국 연극사』, 조선어문학회, 1939, 9쪽 ; 최남선, 『조선 상식 문답』(속편), 동명사, 1947 ; 양재연, 『국문학 연구 산고(國文學硏究散稿)』, 일신사, 1976, 223쪽.
‘금환’은 방울받기 재주를 보이는 것으로 몸을 돌리고 팔을 휘둘러 방울을 돌리는 솜씨가 대단하여 의료(宜僚)를 능가한다며 연희자를 칭찬하는 내용이다. 의료는 초나라에 살았던 전설적인 인물인데 방울받기의 명인으로 아홉 개의 방울을 번갈아 공중에 던져 올려 빠른 손놀림으로 한 개는 손에 있고 나머지 여덟 개는 언제나 공중에 떠 있었다고 한다.162)傅起鳳, 『中國藝能史』, 三一書房, 1993, 32∼33쪽. 웅의료(熊宜僚)라고도 한다. 초나라와 송나라가 교전 중에 진지에 들어가 송나라 병사들에게 재주를 보여 놀라게 하니 병사들이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고 할 정도로 재주가 능했다. 『장자(莊子)』 「서무귀(徐無鬼)」에 수록되어 널리 알려졌다. 오기에서 의료가 신라에 왔다는 것은 아니고, 그와 같은 재주꾼이 여기 있다는 것을 노래한 것이다. 오기에 열거된 연희 가운데 산예도 전래된 종목임을 노래 중에 드러내고 있다. 사막 먼 모랫길을 거쳐 왔기에 사자는 누런 털이 다 빠지고 먼지가 뿌옇게 묻었다고 하여 오기가 고비 사막 저편에서 온 연희임을 말해 준다. 이 연희를 향악이라 명명한 단계에서는 서역이나 중국인이 직접 연희한 것이 아니라, 이미 신라인이 연희를 익혀서 신라화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최치원이 연희를 노래하면서 연기를 구절구절 칭찬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숙련된 전문가의 적극적이며 세련된 연기가 있었기 때문이다.163)예를 들면 의료보다 더 뛰어난 재주, “춤은 너울너울 봉황새 날아가듯, 사븐사븐 요리 뛰고 저리 뛰노나, 온갖 짐승 재주 좋다 이와 같으랴.” 등의 구절에서 연희에 큰 감동을 받았음을 드러내고 있다.
고구려악은 수나라에 도입되어 칠부기와 구부기에 편입되고, 당나라에서는 십부악에 편입하여 외래 무악으로 정리해 두었을 정도로 중국과의 연희 교류가 활발하였고, 그만큼 서역과 중국의 연희가 많이 도입되었다. 최치원은 물론이거니와 신라에서는 많은 구도승과 유학생이 당나라에 다녀왔다. 이들이 직접 연희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연희를 적극적으로 평가하면서 민간에 서역 계통의 연희가 뿌리를 내리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음은 주목할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