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6권 연희, 신명과 축원의 한마당
  • 제4장 전통 연희 집단의 계통과 활동
  • 5. 조선 후기의 다양한 유랑 예인 집단
  • 솟대쟁이패
박전열

솟대쟁이패라는 명칭은 이 패거리들이 벌이는 놀이판의 한가운데에 반드시 솟대와 같은 긴 장대를 세우고, 그 꼭대기로부터 양편으로 두 가닥씩 네 가닥의 줄을 늘여 놓고 그 위에서 갖가지 재주를 부린 것에서 비롯되었다. 솟대쟁이패는 1930년대 이후 사라졌다. 후에 남사당패의 일원이 된 송순갑(宋淳甲)은 본디 솟대쟁이패 출신으로서 땅재주꾼이었다.

이들의 공연 종목은 풍물, 땅재주, 얼른, 줄타기, 병신굿, 솟대타기 등의 여섯 가지였다. 풍물은 농악, 무동 등 곡예에 가까운 체기(體技)가 돋보였다. 땅재주는 불이 담긴 화로를 양손에 들고 공중회전을 할 정도로 숙달된 재주를 보였다. 얼른은 요술이었다. 줄타기는 새미놀이라고도 했는데, 재담보다 곡예 위주였다. 병신굿은 지주와 머슴 두 명이 엮는 무언극으로, 올바른 일을 하지 못하면 신분과 계층에 관계없이 모두가 병신이라는 내용의 아주 해학적인 연희다. 솟대타기는 쌍줄백이라고도 불렀는데, 높은 장대 위에 오늘날의 평행봉 너비의 두 가닥 줄을 양편으로 장치하고 그 위에서 물구나무서기, 두 손 걷기, 한 손 걷기, 고물 묻히기(떡고물 묻히듯이 줄 위를 빙글빙글 구르기) 등의 묘기를 연행했다.218)심우성, 앞의 책, 189쪽.

조선 후기의 솟대타기는 경북 상주 남장사(南長寺)의 감로탱(1701),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구룡사(龜龍寺) 감로탱(1727), 경남 하동 쌍계사(雙磎寺)의 감로탱(1728), 경남 고성 운흥사(雲興寺)의 감로탱(1730), 전남 승주 선암사(仙巖寺)의 감로탱(1736), 전남 곡성 봉서암(鳳瑞庵)의 감로탱(1759), 자수박물관 소장의 감로탱(18세기 중엽) 등에서 다양한 연기를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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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풍속도의 솟대쟁이패
기산풍속도의 솟대쟁이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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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풍속도에 그려진 솟대쟁이패는 솟대타기, 윤고(輪鼓, 서양에서는 diable이라고 한다)라고도 하는 죽방울받기, 나무 공 던지기(서양에서는 cap and ball이라고 한다)를 연희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놀이인 윤고는 조선에서도 널리 유행하고 있었다. 1895년 당시 민간에서 행하던 놀이 그림에 설명을 넣은 스튜어트 컬린은 “큰 무리를 지어 유랑하는 솟대패라는 곡예사들은 두 개의 막대 끝을 줄로 연결해 양손에 막대 하나씩 잡는다. 그 다음 두 개의 원추형을 거꾸로 해 그 뾰족한 끝을 붙여서 만든 물건을 줄에 올려놓고 두 막대를 연결한 줄로 조종하여 논다.”고 소개하였다.219)스튜어트 컬린, 윤광봉 옮김, 『한국의 놀이』, 열화당, 2003, 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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