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6권 연희, 신명과 축원의 한마당
  • 제4장 전통 연희 집단의 계통과 활동
  • 5. 조선 후기의 다양한 유랑 예인 집단
  • 풍각쟁이패
박전열

풍각쟁이패는 판소리, 퉁소, 북, 가야금, 검무를 공연했다.223)박전열, 「풍각쟁이의 기원과 성격」, 『한국 민속학』 11, 한국민속학회, 1979. 서울 봉은사(奉恩寺)의 감로탱(1892)에는 퉁소쟁이 소경, 검무쟁이, 가얏고쟁이, 해금 쟁이, 북쟁이가 묘사된 풍각쟁이패가 그려져 있다.

신재효본 변강쇠가에서는 변강쇠의 치상 장면에 풍각쟁이패로 판소리 가객, 퉁소쟁이 소경, 검무쟁이, 가얏고쟁이, 북쟁이가 등장한다. 이들은 변강쇠의 송장을 치우기 전에 우선 각자의 재주를 자랑한다. 검무쟁이는 여민락(與民樂)과 심방곡(心方曲)에 맞추어 춤을 춘다. 판소리 가객은 초한가(楚漢歌)를 부른다. 가얏고쟁이는 “황성(荒城)에 허조벽산월(虛照碧山月)이요, 고목(古木)은 진입창오운(盡入蒼梧雲)이라 하던 이태백으로 한짝. 삼년정리관산월(三年征裡關山月)이요, 만국병전초목풍(萬國兵前草木風)이라 하던 두자미(杜子美)로 한짝. 둥덩덩지둥덩둥” 하며 짝타령을 연주한다.

최영년의 『해동죽지』 중 「풍각패」 시에서도 풍각쟁이패가 신방곡(神房曲), 즉 심방곡을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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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감로탱의 풍각쟁이패
봉은사 감로탱의 풍각쟁이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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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각쟁이패는 대부분 장애인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며, 이 시에서도 벙어리와 소경이 풍각쟁이패를 구성하고 있다. 그러므로 봉은사의 감로탱은 조선 후기의 풍각쟁이패를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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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도 제11폭의 솟대타기
봉사도 제11폭의 솟대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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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조선 후기의 유랑 예인 집단 가운데 광대패는 삼현육각·판소리·민요창·무용·줄타기·땅재주를, 굿중패는 풍물·버나·땅재주·줄타기·한량굿(1인 창무극(唱舞劇))을 공연했다. 걸립패는 풍물놀이·줄타기·비나리(덕담)를 주로 공연했는데, 반드시 자신들이 관계를 맺고 있는 사찰의 신표(문서(文書)라 한다)를 제시했다.224)심우성, 앞의 책, 192∼196쪽. 중매구패는 풍물놀이·불경·중매구(오광대 가면극)를 공연했다.

우리나라의 전통 연희를 전승하는 주체로 각 시대의 연희자 집단 또는 연희자 계층이 있었다. 불교의 포교를 위한 연희가 있는가 하면, 불교를 표방하여 수입을 올리고자 하는 연희 집단도 있었다. 원효의 무애희 전통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민중에 널리 수용되었으며, 무애희뿐 아니라 직·간접적으로 불교 색채를 띤 다양한 재승 계통의 연희 집단이 출현하였다.

삼국시대 이래로 서역의 연희가 연이어 전래되었는데, 연희의 성격상 연희 그 자체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연희 집단이 도래하였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서역인의 면모를 지닌 연희자에 대한 여러 기록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서역에서 온 연희 집단은 대사로 이루어지는 연희보다는 몸짓으로 이루어지는 산악·백희를 중심 종목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북방인 계통의 연희자는 여러 가지 잡역에 종사하는 한편 연희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고려시대 이래로 때로는 노비로서 관청의 대규모 연희 행사에 동원되기도 하며, 민간의 산대놀이를 담당하기도 하는 중요한 연희 계층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세습무 계통 연희자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들의 조직인 재인청은 지방 관아의 연희 행사에 동원됨은 물론 궁중의 대규모 행사에도 동원되어 산악·백희, 여러 가지 춤, 판소리 등을 연행하는 집단이었다.

조선 후기는 기존의 연희 집단의 활동은 물론 유랑 예인의 연희 방식이 세분화되기에 이른다. 유랑 예인은 연희 내용에 불교 또는 무속적인 색채를 띠기도 하고, 고도의 기예나 세련된 골계미를 추구함으로써 관객의 흥미를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였다.

우리나라 전통 연희는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공동의 연희 문화 유산인 산악·백희에 근원을 두고 있었다. 산악·백희의 뿌리는 다시 멀리 서역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 이러한 연희는 이를 전래한 집단, 이를 계승하여 직업으로 삼은 집단, 이를 배우고 익혀서 생업으로 삼은 계층들이 있었기에 전승되었다.

각 시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전통 연희를 담당해 온 집단이나 계층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연희 전승의 주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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