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6권 연희, 신명과 축원의 한마당
  • 제6장 가면극의 역사적 전개 양상
  • 2. 우리나라 가면극의 역사적 전개
  •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의 역사적 전개
  • 삼국시대
전경욱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산악·백희 또는 산악잡희라고 부르는 연희가 유입되었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나 중국과 일본의 고구려 관련 기록은 고구려가 중국 및 서역과 매우 활발히 교류하였고, 고구려에 이미 서역이나 중국에서 유래한 연희와 산악·백희 같은 가면희가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후한서(後漢書)』에 보이는 “무제가 조선을 멸하고 고구려를 현으로 삼아 현도에 속하게 하고, 악사와 놀이꾼을 하사하였다.”라는314)『후한서(後漢書)』 권85, 동이열전75, 고구려. 기록은 중국의 연희가 고구려에 유입되었음을 전해 준다.

고구려는 서역계의 악기와 가면무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일본에서도 백제악, 신라악이라는 명칭은 사라지고 고려악(高麗樂, 고마가쿠)이라는 명칭으로 전래되었다. 고구려악(高句麗樂) 24곡 가운데 12곡은 가면 무악(假面舞樂)이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는 산악·백희에 해당하는 연희들이 다양하게 그려져 있다. 특히 안악 3호분의 벽화 가운데 후실의 가면희도(假面戲圖)에 는 외국 출신으로 보이는 춤꾼이 가면을 착용하고 있다. 세 사람이 각각 긴 퉁소, 완함(비파의 한 종류), 거문고를 연주하는 가운데 한 사람이 탈춤을 추는 그림이다. 중국 지린성 지안시 다섯 무덤의 4호 고분과 5호 고분에도 가면을 쓴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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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악 3호분의 가면희도
안악 3호분의 가면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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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가면극 관계 연희도 우리나라의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나, 백제인 미마지가 중국 남조 오나라에서 배워 612년 일본에 전했다는 기악의 내용이 일본 문헌인 『교훈초(敎訓抄)』(1233)에 소개되어 있다. 이는 절에서 불사(佛事) 공양의 무곡(舞曲)으로 연출되던 교훈극으로서 묵극(默劇)이었다.

신라의 연희는 가무백희를 들 수 있다. 가무백희라는 용어는 『삼국사기』에 처음 보이는데,315)『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년. 이것이 산악·백희 계통의 연희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551년(진흥왕 12) 처음 설치한 팔관회에서 가무백희를 놀았다는 내용이 나오는데,316)『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107, 악고(樂考)18, 산악(散樂) 신라. 두 개의 채붕(綵棚)을 설치하였던 점으로 보아 산악·백희와 같은 연희일 것이다.

신라의 산악·백희 중에는 중국에 전해진 종목도 있었다. 당나라로부 터 일본에 전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신서고악도(信西古樂圖)에 신라의 신라박이 그려져 있다. 신라박은 동물 가면을 착용한 가면희다. 동물로 가장한 가면희 역시 산악·백희의 일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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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박
신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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