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6권 연희, 신명과 축원의 한마당
  • 제6장 가면극의 역사적 전개 양상
  • 3.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과 조선 후기의 유흥 문화
  •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의 연희 내용
전경욱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인 해서 탈춤(황해도), 별산대놀이(서울·경기), 야류와 오광대(경상남도) 등은 각 과장의 구성과 연희 내용, 등장인물, 대사의 형식, 극적 형식, 가면의 유형 등을 살펴볼 때 동일 계통임을 알 수 있다.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들은 벽사(辟邪)의 의식무, 양반 과장, 파계승 과장, 영감 할미 과장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강이천의 한시 「남성관희자」는 현전하는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과 그 내용이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가)평평한 언덕에 새로 자리를 펼쳐 / 平陂更展席

상좌 아이 깨끼춤 추는데 / 僧雛舞緇素

선녀 하늘로부터 내려왔나 / 仙娥自天降

당의(唐衣)에 수놓인 바지(繡袴)를 입었으니 / 唐衣復繡袴

한수(漢水)의 선녀 구슬을 가지고 노는 듯 / `漢女弄珠游

낙수(洛水)의 여신 푸른 물결에 걸어나오듯 / 洛妃淸波步

(나)노장 스님 어디서 오셨는지 / 老釋自何來

석장을 짚고 장삼을 걸치고 / 拄杖衣袂裕

구부정 몸을 가누지 못하고 / 龍鍾不能立

수염도 눈썹도 도통 하얀데 / 鬚眉皓如鷺

사미승 뒤를 따라오며 / 沙彌隨其後

연방 합장하고 배례하고 / 合掌拜跪屢

이 노장 힘이 쇠약해 / 力微任從風

넘어지기 몇 번이던고 / 顚躓凡幾度

한 젊은 계집이 등장하니 / 又出一少妹

이 만남에 깜짝 반기며 / 驚喜此相遇

흥을 스스로 억제치 못해 / 老興不自禁

파계하고 청혼을 하더라 / 破戒要婚娶

광풍이 문득 크게 일어나 / 狂風忽大作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즈음 / 張皇而失措

또 웬 중이 대취해서 / 有僧又大醉

고래고래 외치고 주정을 부린다 / 呼號亦恣酗

(다)추레한 늙은 유생 / 潦倒老儒生

이 판에 끼어들다니 잘못이지 / 闖入無乃誤

입술은 언청이, 눈썹이 기다란데 / 缺脣狵其眉

고개를 길게 뽑아 새 먹이를 쪼듯 / 延頸如鳥嗉

부채를 부치며 거드름을 피우는데 / 揮扇擧止高

아우성치고 꾸짖는 건 무슨 연고인고 / 呌罵是何故

헌걸차다 웬 사나이 / 赳赳一武夫

장사로 뽑힘직하구나 / 可應壯士募

짧은 창옷에 호신수 / 短衣好身手

재주가 씩씩하고 뛰어나니 누가 감히 거역하랴 / 豪邁誰敢忤

유생이고 노장이고 꾸짖어 물리치는데 / 叱退儒與釋

마치 어린애 다루듯 / 視之如嬰孺

젊고 어여쁜 계집을 / 獨自嬰靑娥

홀로 차지하여 손목 잡고 끌어안고 / 抱持偏愛護

칼춤은 어이 그리 기이한고 / 舞劍一何奇

몸도 가뿐히 도망치는 토끼처럼 / 身輕似脫兎

(라)거사와 사당이 나오는데 / 居士與社堂

몹시 늙고 병든 몸 / 老甚病癃痼

거사는 떨어진 패랭이 쓰고 / 破落戴敝陽

사당은 남루한 치마 걸치고 / 纜縷裙短布

선승(禪僧)이 웬 물건인고 / 禪律是何物

소리와 여색을 본디 좋아하여 / 聲色素所慕

등장하자 젊은 계집 희롱하더니 / 登場弄嬌姿

소매 벌리고 춤을 춘다 / 張袖趂樂句

(마)할미 성깔도 대단하구나 / 婆老尙盛氣

머리 부서져라 질투하여 / 碎首恣猜妬

티격태격 싸움질 잠깐새 / 鬪鬨未移時

숨이 막혀 영영 죽고 말았네 / 氣窒永不窹

무당이 방울을 흔들며 / 神巫擺叢鈴

우는 듯 하소하듯 / 如泣復如訴

너울너울 철괴선(鐵拐仙) 춤추며 / 翩然鐵拐仙

두 다리 비스듬히 서더니 / 偃蹇植雙胯

눈썹을 찡긋 두 손을 모으고 / 竦眉仍攢手

동쪽으로 달리다가 서쪽으로 내닫네339)강이천, 『중암고(重庵稿)』, 「남성관희자」. / 東馳又西騖.

인용한 내용은 「남성관희자」 중에서 가면극 부분이다. (가)는 상좌춤과 팔선녀춤을 말한다. 현재 상좌춤 과장은 별산대놀이와 해서 탈춤에서 전승되고 있다. 팔선녀춤은 야류와 오광대에 전승되고 있다.

(나)는 노승춤으로, 노승이 젊은 계집에게 반해 파계하면서 청혼한다. 이때 “또 웬 중이 대취해서 고래고래 외치고 주정을 부린다.”는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술 취한 중, 즉 취발이가 등장해 주정을 부린다. 지금도 별산대놀이와 해서 탈춤의 노승 과장에서 노승이 소매(小妹)를 차지한 후 취발이가 나와서 노승으로부터 소매를 뺏기 위해 노승과 싸우는데, 이 시에서도 노승이 소매를 차지한 후 취발이가 등장하고 있다.

(다)는 샌님과 포도부장춤이다. 샌님(늙은 유생)이 젊은 계집 소매를 차지하고 있는데, 칼을 찬 젊은 포도부장이 등장해 소매를 뺏고 칼춤을 추는 내용이다. 이는 현재 양주 별산대놀이, 송파 산대놀이, 봉산 탈춤 등의 샌님 포도부장 과장과 동일한 내용이다. 특히 샌님의 가면은 긴 눈썹에 언청이 모습이어서 별산대놀이, 해서 탈춤과 완전히 일치한다.

확대보기
봉산 탈춤 노장 과장
봉산 탈춤 노장 과장
팝업창 닫기

(라)는 거사(居士)와 사당(社堂)춤이다. 현재도 봉산 탈춤에 거사와 사당춤이 있다.

(마)는 영감과 할미춤이다. 할미가 첩을 질투해 싸우다가 죽자 무당이 등장해 방울을 흔들며 굿을 거행하는 내용이다. 이는 지금도 별산대놀이와 해서 탈춤에서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내용이다. 야류와 오광대에서는 할미의 죽음 후에 상여를 내가며 상엿소리를 부르는 내용으로 변이되어 있다.

확대보기
봉산 탈춤 미얄 과장
봉산 탈춤 미얄 과장
팝업창 닫기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들은 공통적인 연희 내용을 가지고 있지만 지역에 따라 특징적인 과장도 가지고 있다. 별산대놀이의 연잎과 눈끔적이 과장, 해서 탈춤의 사자춤 과장, 야류와 오광대의 사자춤 과장, 영노(비비) 과장, 문둥이춤 과장 등이 그것이다. 김일출의 조사에 따르면, 봉산 탈춤의 사자춤 과장은 1913∼1915년경부터 비로소 놀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한편 가면극의 많은 대목들은 독립적인 우희의 모습을 하고 있다. 본산대놀이의 형성에는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을 터이지만, 대사의 구성이나 양반 과장 가운데 양반의 모습 등은 우희·유희(儒戲)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보여 준다. 우희는 산악·백희의 한 종목이었다. 그러므로 산악·백희 계통의 연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본산대놀이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우희 가운데 양반 계층에 대한 풍자가 주목된다. 도목정사(都目政事)놀이는 이조 판서와 병조 판서가 서로 정실(情實)로서 조카와 사위의 임명을 청탁하는 내용으로 양반 계층의 부정을 폭로하고 있다. 탐관오리놀이는 실제로 있었던 일을 소재로 하여 부패한 관리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또 우희에서는 관리들의 탐오하고 청렴한 모양과 민간의 더럽고 자질구레한 일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건들을 들추어내기도 했다.

우희와 유희에 이미 양반층을 풍자하는 내용이 있었으므로 가면극에서 양반 과장의 성립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전국의 모든 가면극에 양반 과장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을 뿐 아니라,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에서 양반 과장이 분량과 내용 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봉산 탈춤의 양반 과장에서는 양반이 말뚝이에게 나랏돈을 떼어먹은 취발이를 잡아 오라고 명령한다. 취발이를 잡아 온 말뚝이는 양반에게 “샌님 말씀 들으시오. 시대가 금전이면 그만인데, 하필 이놈을 잡아다 죽이면 뭣 하오. 돈이나 몇백 냥 내라고 하여 우리끼리 노나 쓰도록 합시다.”라고 말한다. 양반은 취발이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여기서 양반은 바로 우희의 부패한 관리와 일치한다.

말뚝이 : 양반 나오신다아! 양반이라거니 노론, 소론, 이조, 호조, 옥당(玉堂, 홍문관)을 다 지내고, 삼정승(三政丞) 육판서(六判書) 다 지낸 퇴로 재상(退老宰相)으로 계신 양반인 줄 아지 마시오. 개잘량이라는 양 자에 개다리소반이라는 반 자 쓰는 양반이 나오신단 말이오.

양반 : 이놈 뭐야아!

말뚝이 : 아아, 이 양반 어찌 듣는지 모르겠소. 노론, 소론, 이조, 호조, 옥당을 다 지내고, 삼정승 육판서 다 지내고 퇴로 재상으로 계시는 이 생원네 삼 형제 분이 나오신다고 그리했소.

양반 : (합창) 이 생원이라네에.(봉산 탈춤 양반 과장)

양반을 조롱하는 내용이다. 처음에는 점잖게 양반을 소개하다가 갑자기 개잘량(방석처럼 쓰려고 털이 붙은 채로 손질해 만든 개가죽)이라는 ‘양’ 자 와 개다리소반의 ‘반’ 자를 양반과 연결시켜 조롱하고 있다. 유희에서 유자(儒者)를 조롱하듯 양반을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진한 : 들어 봐라. 지주불폐(知主不吠)허니 군신유의(君臣有義)요, 모색상사(毛色相似)허니 부자유친(父子有親)이요, 일폐중폐(一吠衆吠)허니 붕우유신(朋友有信)이요, 잉후원부(孕後遠夫)허니 부부유별(夫婦有別)이요, 소부적대(小不敵大)허니 장유유서(長幼有序)라. (강령 탈춤 양반 과장)

개는 주인을 알아보고 짖지를 않으니 군신유의요, 어미와 새끼의 털 색깔이 같으니 부자유친이요, 한 마리가 짖으면 여럿이 함께 짖으니 붕우유신이요, 새끼를 가진 후에는 수컷을 멀리하니 부부유별이요, 덩치가 작은 놈은 결코 큰 놈에게 대들지 않으니 장유유서가 있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양반층에서 중시하던 유교적 도덕 덕목인 오륜(五倫)을 개와 관련시켜 설명하면서 오륜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

주목되는 점은 강령 탈춤에서 진한 양반이 개가죽관을 쓰고 있고, 대부분의 가면극에서 양반들의 가면이 추한 모습이며, 의복 또한 비정상적인 경우가 많다는 점도 바로 유희와 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익의 『성호사설』에 “다 떨어진 옷과 찢어진 갓을 쓰고 꾸며 낸 이야기와 억지웃음으로 온갖 추태를 연출한다.”는340)이익, 『성호사설(星湖僿說)』 권12, 인사문, 이유위희(以儒爲戲). 기록과 같이 유희에서 연희자는 유자로 분장할 때 유자를 조롱하기 위해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치장하였다. 그런데 가면극의 양반 과장에 등장하는 양반들도 대부분 비정상적인 모습이다.

이 밖에도 가면극에는 양반이나 유자를 조롱하는 내용이 많다. 더구나 유가의 오륜과 경서 그리고 문자 등 양반층의 문화조차도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양반의 가면은 대부분 추한 모습이고 의복도 비정상적인 경우가 많아서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조롱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우희·유희와 가면극의 양반 과장은 형식과 내용이 흡사하다.

양반 과장 외에도 노장 과장 가운데 먹중과 취발이의 대사나 영감 할미 과장 가운데 영감과 할미의 대사에서는 골계적인 내용의 재담들도 우희의 전통과 일정한 관련이 있다. 이는 나례도감에 동원되던 반인들이 이미 우희를 하고 있었고, 18세기 전반 본산대놀이가 성립될 때 반인들이 연희 내용에 우희를 적극 활용한 결과다.

한편, 현존하는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에는 나례의 오방귀·오방처용무와 가면극의 오방신장무, 나례의 사자춤과 가면극의 사자춤, 나례의 소매와 가면극의 소무·소매각시, 나례의 처용·역신과 가면극의 취발이·노장, 나례의 대면·귀신과 가면극의 말뚝이·양반, 나례의 구나 형식과 팔먹중춤의 극적 형식, 나례의 구나 가면과 가면극의 연잎·눈끔적이 가면 등 나례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다. 이는 본산대놀이를 성립시킨 연희자들이 나례에 동원되던 반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