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6권 연희, 신명과 축원의 한마당
  • 제6장 가면극의 역사적 전개 양상
  • 4. 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의 분포와 연희 내용
전경욱

경상북도 안동의 하회 별신굿 탈놀이와 병산 별신굿 탈놀이, 경상북도 경산의 자인 팔광대놀이, 강원도 강릉의 관노 가면극 등이 마을굿놀이로부터 유래한 가면극이다.

하회의 가면극은 마을굿의 한 가지인 별신굿을 거행할 때 논 것이다. 하회 별신굿은 1928년 이후 전승이 중단되었고, 병산 별신굿도 비슷한 시기에 중단되었다. 별신굿은 보통 10년에 한 번씩 신탁(神託)에 의해 임시로 행해지는 큰 규모의 서낭굿이다. 하회에서는 매년 정월 15일과 4월 8일에 평상제를 지내다가 부정기적으로 별신굿을 거행했다. 하회리의 서낭신은 ‘무진생 서낭님’으로 열일곱 살의 처녀인 의성 김씨 또는 열다섯 살에 과부가 된 서낭신으로 동네 삼신의 며느리신이라고도 전한다.

강릉 관노 가면극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 강릉 단오제에서 관노들에 의해 연희되던 가면극이었다. 옛날에는 음력 5월 1일 괫대(花蓋)를 장식해 세우고 대성황당의 앞마당에서 가면극을 행했는데, 4일과 5일까지 계속하였다.

하회 별신굿 탈놀이는 제1 과장 주지춤, 제2 과장 백정놀이, 제3 과장 할미놀이, 제4 과장 파계승놀이, 제5 과장 양반·선비놀이로 구성되어 있 다. 하회 별신굿에서는 서낭당에서 신이 내린 후에 하산한다. 하산 과정에서 서낭신인 각시의 가면을 쓴 자가 행하는 무동춤은 신성현시(神聖顯示)를 연출하는 본보기다. 하회의 서낭신은 이 마을에 시집 와 열다섯 살 때 남편과 사별하고 서낭신이 되었다고 전한다. 시집 온 지 며칠 되지 않아 남편을 잃고 쓸쓸하게 살다 간 한 많은 각시신이다. 하회 사람들은 이 여신이 마을을 잘 지켜 주기를 바라며 또 그렇게 해 왔다고 믿고 있다. 본 가면극에 앞서 서낭신인 각시의 가면을 쓴 연희자가 무동을 타고 수시로 걸립을 했다. 서낭신인 각시의 등장은 이 가면극이 각시를 중심으로 각시에 의해서 주도되는 어떤 근원성과 관련이 있음을 시사하면서, 이 가면극과 마을굿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 준다.

확대보기
백정놀이
백정놀이
팝업창 닫기

첫 과장인 주지춤은 사자춤 또는 상상의 동물춤이다. 동물 가면을 쓴 사자 한 쌍이 춤을 추어 잡귀와 사악한 것을 쫓아내고 놀이판을 정화하는 벽사의 의식무다. 백정놀이는 백정이 소를 도살해 염통과 우랑을 떼어 낸 후 관중을 향해 해학적인 말로 희롱하면서 양반층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할미놀이에서는 쪽박을 허리에 차고 흰 수건을 머리에 쓴 할미가 베를 짜는 시늉을 하며 베틀가에 자신의 신세 타령을 얹어 부른다. 이어 춤을 추다가 쪽박을 들고 동냥을 구한다. 이 과장은 여성들의 고난과 삶의 애환을 그리고 있으며,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 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확대보기
파계승놀이
파계승놀이
팝업창 닫기

파계승놀이에서 중은 춤을 추던 부네가 오줌 누는 것을 엿보고 욕정을 참지 못한다. 중은 부네가 오줌 눈 자리의 흙을 움켜쥐고 냄새를 맡으며 흥분한다. 중은 부네와 어울려 춤을 추다가 양반의 하인인 초랭이에게 들키자 부네를 업고 달아난다. 양반·선비놀이에서 중의 행태를 보던 양반과 선비는 기생인 부네가 나타나자 지체와 학식을 자랑하며 부네를 놓고 삼각관계를 벌인다. 이들은 허위와 위선으로 자기를 내세우며 부네를 차지하려 든다. 백정이 양기를 돋우는 데 좋다며 우랑을 들고 등장하자 서로 사겠다고 다투고, 백정은 우랑이 터지겠다고 야단한다. 이 와중에 할미가 등장하 여 이들을 비판하고, 이매가 나와 세금을 바치라고 외치면 모두 깜짝 놀라 도망간다. 여기서는 관리가 마을 사람들에게 곡식을 거두면서 중간 착취하는 횡포를 풍자하고 있다.

이제 하회 별신굿 탈놀이의 대사 가운데 가장 잘 짜였기 때문에 자주 인용되는 대목을 살펴보자. 제5 과장 양반·선비놀이에서 양반과 선비는 기녀인 부네를 차지하려고 서로 싸우면서 지체와 학식을 자랑한다.

확대보기
양반 광대 모양
양반 광대 모양
팝업창 닫기

양반 : 나는 사대부(士大夫)의 자손인데 …….

선비 : 뭣이, 사대부? 나는 팔대부(八大夫)의 자손일세.

양반 : 팔대부는 또 뭐냐?

선비 : 팔대부는 사대부의 갑절이지.

양반 : 우리 할아버지는 문하시중(門下侍中)이거든.

선비 : 아 문하시중, 그까짓 것. 우리 아버지는 바로 문상시대(門上侍大)인데.

양반 : 문상시대, 그것은 또 뭔가?

선비 : 문하(門下)보다 문상(門上)이 높고, 시중(侍中)보다 시대(侍大)가 더 크다.

양반 : 그것 참 별꼴 다 보겠네.

선비 : 지체만 높으면 제일인가?

양반 : 그러면 또 뭣이 높단 말인가?

선비 : 첫째 학식이 있어야지. 나는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다 읽었네.

양반 : 뭣이, 사서삼경. 나는 팔서육경을 다 읽었네.

선비 : 도대체 팔서육경이 어데 있으며 대관절 육경은 뭐냐?

초랭이 : 나도 아는 육경! 그것도 몰라요? 팔만대장 경, 중의 바래경, 봉사 안경, 약국의 질경, 처녀 월경, 머슴 새경.

이매 : 그것 다 맞다 맞어.

양반 : 이것들도 다 아는 육경을 소위 선비라는 자가 몰라.(류한상본)

양반과 선비가 지체 자랑을 하는 동안 사대부라는 신분과 문하시중이라는 벼슬은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들의 하인인 초랭이와 이매가 그들의 학식을 웃음거리로 만든다. 특히 사서삼경을 “팔만대장경, 중의 바래경, 봉사 안경, 약국의 질경, 처녀 월경, 머슴 새경”의 차원으로 격하시키면서 유학을 조롱하고 있다. 이와 같이 유학과 유자를 조롱하는 내용은 산악·백희의 한 종목인 우희·유희에서 연행하던 내용을 활용한 것이다.

확대보기
양반·선비놀이
양반·선비놀이
팝업창 닫기

우희·유희는 원래 전문 연희자가 연행하던 연희로,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의 대사와 판소리 사설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하회 별신굿 탈놀이는 마을굿놀이에서 유래하여 발전해 온 가면극이지만, 우희·유희의 영향으로 이와 같이 유학과 유자를 조롱하는 내용이 삽입된 듯하다.

강릉 관노 가면극은 제1 과장 장자마리춤, 제2 과장 양반 광대와 소매각시춤, 제3 과장 시시딱딱이춤, 제4 과장 소매각시의 자살과 소생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릉 관노 가면극은 우리나라의 가면극 가운데 유일하게 묵극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다른 지방의 가면극은 각 과장의 내용이 서로 독립적인 모습을 보이는 데 반해 강릉 관노 가면극은 각 과장이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즉, 양반과 소 매각시를 중심으로 한 서사적인 내용의 연희가 진행된다.

첫 과장인 장자마리춤은 벽사적 의식무로, 장자마리 두 명이 마당 닦기춤을 통해 놀이판을 정화한다. 장자마리들은 의상에 곡식 이삭과 해초인 말치를 매달고 있고, 불룩한 배를 통해 잉태한 모습을 보여 주며, 둘이 모의적인 성행위의 동작을 한다. 즉, 장자마리춤은 풍농·풍어를 기원하는 마을굿인 단오제의 성격도 반영하고 있다.

확대보기
장자마리춤
장자마리춤
팝업창 닫기

양반 광대와 소매각시춤 과장은 양반이 소매각시를 차지해 다정하게 노는 내용이다. 시시딱딱이춤 과장은 시시딱딱이들이 훼방 놓아 양반과 소매각시의 사이를 이간시키는 내용이다.

소매각시 자살과 소생 과장은 소매각시가 자살했다가 다시 살아나는 내용이다. 양반이 시시딱딱이를 쫓아 버린 후에 소매각시를 끌고 와서 시시딱딱이와 놀아났다고 나무라면 소매각시는 완강히 부인하면서 양반에게 용서를 빈다. 그래도 양반이 화를 풀지 않자 소매각시는 양반의 긴 수염에 목을 매어 자살한다. 이때 장자마리들과 시시딱딱이들이 소매각시의 죽음을 확인하고, 서낭신목을 모시고 와서 빌자 소매각시가 소생하는 내용으로 결말을 맺는다.

강릉 관노 가면극에 등장하는 양반 광대, 소매각시, 시시딱딱이의 삼각관계는 바로 처용, 처용의 처, 역신의 관계와 매우 유사하다.

하회 별신굿 탈놀이와 강릉 관노 가면극은 연희 내용과 등장인물이 다른 지방의 가면극과 전혀 다르다. 그것은 이 가면극들이 마을굿에서 자생 적으로 형성되어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회 별신굿 탈놀이의 파계승 과장이나 유학과 유자를 조롱하는 내용, 강릉 관노 가면극의 ‘소매각시’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후대에는 마을굿 계통 가면극도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의 영향을 일부 받은 것으로 보인다.

확대보기
소매각시의 자살
소매각시의 자살
팝업창 닫기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