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7권 전쟁의 기원에서 상흔까지
  • 제2장 출정에서 회군까지
  • 1. 전쟁의 발발과 출정
  • 나를 따르라
심승구

둑제를 지낸 후 장수는 출정할 장수와 병사들을 불러 모아 전쟁터에서 임무와 군령(軍令)을 하달하는 군령식을 거행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일곱 가지 금령(禁令)을 내세우고 이를 어기면 엄하게 처벌하였다. 그 조항 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군령을 가벼이 여기는 경우이다. 약정한 시기에 집결지에 도착하지 않는 자,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자, 갑옷과 병기를 갖추지 않는 자가 이에 해당한다.

둘째, 군령을 태만히 하는 경우이다. 명령을 전달하지 않는 자, 전진과 후퇴의 신호인 북소리와 징소리를 자세히 듣지 않는 자, 지휘 깃발을 보지 않는 자가 이에 해당한다.

셋째, 도둑질을 일삼는 경우이다. 창고의 군량미를 먹지 않고 다른 데서 훔쳐 먹는 자, 남에게 물건을 빌리고도 갚지 않는 자, 적군의 머리를 빼앗아 자신의 공으로 삼는 자가 이에 해당한다.

넷째, 속이는 경우이다. 성명을 바꾸어 다른 사람으로 행세하는 자, 복장을 선명하게 하지 않는 자, 도검(刀劍)을 예리하게 하지 않는 자, 화살에 깃털을 달지 않는 자, 궁노(弓弩)에 활줄이 없는 자가 이에 해당한다.

다섯째, 군율을 어기는 경우이다. 깃발을 눕혀도 엎드리지 않는 자, 깃발을 들어도 일어나지 않는 자, 앞에 나서기를 꺼리고 뒤에 처지려고만 하는 자가 이에 해당한다.

여섯째, 군율을 혼란하게 하는 경우이다. 앞에서도 고함치고 뒤에서도 소리쳐서 명령이 들리지 않게 하는 자가 이에 해당한다.

일곱째, 군을 그르치는 군사로, 진중에서 고향 이야기를 하는 자, 진문(陣門)으로 다니지 않고 진영 뒤로 출입하는 자, 큰 소리로 떠들어 남을 놀라게 해서 군리(軍吏)와 군사들을 의혹에 빠지게 하는 자가 이에 해당한다.

이상의 내용은 군사들이 지켜야 할 금령이자 군령의 대강이다. 군령을 밝히고 나서야 군대의 규율이 잡혀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다. 군령을 하달하는 자리에서 출정일을 군사들에게 알리고 집결지에 모두 집결하게 했다. 죽음과 직결되는 전쟁은 수많은 기피자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앞의 금령 가운데 가장 첫 번째로 기피자나 이탈자의 금지를 강조하는 것은 이 때 문이었다.

확대보기
창의문
창의문
팝업창 닫기

길일이 정해지고 군사들이 모두 집결하면 국왕은 반드시 도성의 흉문(凶門)을 열어 장수를 내보냈다. 이때 흉문은 곧 동서남북의 문 가운데 북문을 가리킨다. 원래 북문은 상여 행렬이 출입할 때 쓰인 문이었다. 출전하러 나가는 군대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는 필사의 각오를 다지고 오직 전진만 하고 후퇴하지 않는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이 문을 이용했다. 다만, 조선시대에는 풍수의 영향으로 북문은 늘 닫혀 있었기 때문에 대개 장수가 출정할 때 동대문이나 남대문을 이용했다. 조선 건국 직후 태조 때에는 대마도를 정벌하기 위해 한강에서 출진했는데, 국왕이 직접 남대문 밖까지 나와서 전송했다.137)『태조실록』 권10, 태조 5년 12월 정해. 다만, 출정군의 본대가 출동하기 전에 앞서 선발대를 편성하여 파견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들 선발대는 먼저 적진으로 가서 척후 활동을 했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