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7권 전쟁의 기원에서 상흔까지
  • 제2장 출정에서 회군까지
  • 1. 전쟁의 발발과 출정
  • 싸우러 가기 전에 먼저 살펴라
심승구

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출정한 뒤에는 적과 싸움을 벌이기 위해 전선으로 나갔다. 과거의 출병이란 오늘날처럼 비행기나 차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말과 수레, 도보로 했다. 시대에 따라 또는 전쟁 대상에 따라 출병 형태는 조금씩 달랐지만, 우리나라는 산악 지형이 많아 보병과 기병이 혼합된 형태로 했다. 물론 배로 이동하는 수군은 부대가 해안에 있었기 때문에 출정식이 육군과 달랐다. 수군은 육군의 최고 지휘관의 지휘를 받았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고려 말 삼도도통사(三道都統使) 최영이 탐라를 정벌할 때의 과정을 좀 더 살펴보자. 최영은 7월에 개성을 출발하여 8월에 나주에 도착하는데, 영산에서 열병식(閱兵式)을 하고 모든 장군들과 다음과 같이 약속한다.

각 도의 선박은 서로 혼동하지 말고 각각 돛대 위에 깃발을 꽂아 표식할 것, 배에는 책임관을 두어 질서 없이 행선하지 말 것, 출발한 뒤에는 각각 대오(隊伍)를 정돈하며 연료와 음료수를 제때에 보급할 것, 만일 왜구와 만나면 좌우에서 협공할 것, 포로를 잡는 자에게는 상으로 큰 벼슬을 줄 것이다. 제주에 도착하면 각각 병선을 거느리고 일제히 진군해 누구나 뒤에 떨어지지 말아야 하며, 부대는 각각 근거지를 두고 봉화로써 서로 연락할 것, 전체 부대의 행동은 도통사의 호각 소리에 따를 것이요 조금도 위반하지 말 것, 성을 공격하는데 주민 가운데 적에 가담해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자는 군대를 풀어서 모조리 무찌르고 항복하는 자는 추궁하지 말 것, 적의 괴수 재산은 모조리 몰수하고 일체 계약 문건과 금·은으로 만든 패쪽, 도장, 등록부 역시 모두 몰수할 것인데, 이것을 얻은 자에게 상을 준다. 절, 도전(道殿), 신사를 수호하는 자는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재물을 탐내어 전투에 힘껏 싸우지 않는 자는 처벌할 것이며 재물을 싣고 먼저 도망쳐 돌아가는 자는 군법으로 처단할 것이다. 왕이 나에게 반역자를 토벌할 책임을 맡긴 만큼 내 말은 곧 왕의 말씀이다. 내 명령에 순종하면 일이 잘 성취될 것이다.138)『고려사』 권113, 열전26, 최영.

장군의 명령이 떨어지면 모든 장수는 모자를 벗고 사례했다. 수군을 동원하게 되면 포구나 섬에서 바로 출병했다. 반면에 육군은 전국의 병사를 동원하게 되면 일정한 지역에 모여 전선으로 향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수많은 병사와 무기, 군량 등 군수 물자를 싣고 출병하는 장수는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군사들의 진퇴를 결정하는 다양한 수단을 강구했다. 우선, 출정하는 날의 날씨를 보고 진퇴를 결정했다. 군대가 출정한 첫날에 가랑비가 내리면, 이것은 군대를 윤택하게 하는 ‘길조의 비’ 라고 생각했다. 반면에 평소에 볼 수 없던 큰바람이 불거나 일식, 월식으로 천지가 캄캄해지면 군대를 출동시키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뜻밖에 회오리바람이 불면, 일진일퇴(一進一退)하되 중간에서 갑자기 뛰쳐나오는 적을 대비해야 하는 것으로 예상했다. 역풍이 강하게 불어 사람의 안면을 때려서 마치 사람을 배척하는 듯하면 우선 행군을 정지하고 전진하지 말아야 했다. 도중에 갑자기 폭풍우를 만나 하늘이 광란하는 듯한 현상이 보이면 앞에 반드시 혈전을 벌여야 할 적이 있다는 징조로 보아 대비해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특히, 수군을 동원해 선박으로 전쟁을 할 경우에 날씨는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적진으로 나가는 데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대상은 날씨뿐이 아니었다. 지형지물에 대한 관찰도 세심하게 해야 하는 것이 장수들이 할 일이었다. 어떤 물건이나 지형의 색깔, 형상이 군대 진영의 전방에서 괴상하게 보이면 그것이 무슨 조짐인지를 반드시 살펴야 했다. 이러한 관찰은 당시 날씨와 지형을 통해 군대의 진퇴를 신중하게 결정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비합리적인 것 같지만 날씨와 지형의 변화를 잘 살핌으로써 군대의 안위를 살피기 위한 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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