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7권 전쟁의 기원에서 상흔까지
  • 제2장 출정에서 회군까지
  • 1. 전쟁의 발발과 출정
  • 산과 강을 지날 때의 행군 요령
심승구

장수가 출병할 때에는 지역 사정과 길을 잘 아는 향도(嚮導)를 활용하여 지형지물을 정확하게 판단했다. 식량과 의복 등 군수 물자를 수송하는 치중(輜重) 부대는 가까운 곳으로 갈 때에는 먼 곳으로 우회할 것처럼 보이게 하고, 먼 곳으로 우회하려고 할 때에는 가까운 곳으로 직행할 것처럼 보이게 하여 먼저 적의 동태를 파악한 후에 움직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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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름쇠
마름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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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으로 가는 도중에 강을 만나면 배로 건너기보다는 부교(浮橋)를 건너는 것이 훨씬 더 안전했다. 만일 부교 설치가 여의치 않으면 두 가닥의 굵은 새끼줄을 양쪽 강변의 나무에 매어 연결하거나 나무가 없으면 말뚝을 박아 새끼줄을 연결한 다음, 그 줄을 잡고 강을 건넜는데 강물이 깊지 않을 경우에 이렇게 했다.

만일 줄로 강을 건너기 어려우면 별도의 뗏목을 만들었다. 뗏목은 대나무와 나무를 이용하여 만들되 병기 등의 군장을 싣고 건너게 했다. 또는 목앵(木罃, 물에 뜨는 나무로 만든 병)이나 양피낭(羊皮囊, 양가죽을 꿰매 바람을 넣어 만든 주머니)을 양쪽 겨드랑이에 끼고 도강하게 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산뿐 아니라 강이 많아 이러한 도강 기술이 발달했다.

군대가 행군하다가 하천이나 연못 등을 만나면 그냥 마시지 않았다. 반드시 어린 가축에게 그 물을 먹여 보아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뒤에 사람과 말이 마시게 했다. 또 강가나 해안에서 진흙 뻘을 만나면 그 속에 대죽창이나 질려(마름쇠) 또는 함정이 없는지를 조사하게 했다.

무엇보다도 강이나 하천을 건널 때에 적이 상류에서 물을 막아 놓았다가 물꼬를 터놓아 급류에 휩쓸리는 일을 당하지 않도록 유의했다. 이미 고구려의 을지문덕이 살수대첩에서 사용한 이 전술은 이후 조선의 병사들에게는 하나의 철칙이 되었다.

행군 도중 배를 타게 되면 배에 방울을 달아 소리가 나게 하여 적이 숨어들지 못하게 했다. 또 적이 물속에서 배 밑바닥에 구멍을 뚫어 놓지 않았는지 살펴보았다. 다리를 통과하게 되면 미리 다리를 조사하는 것이 원칙 이었다. 이러한 일은 육군은 물론 수군도 반드시 해야 했다.

적과 싸우기 전에 진영을 설치할 때에는 반드시 고지에 올라가서 멀리 보아 식량을 운반할 길이 어딘지를 살폈다. 전투가 오래가게 되면 무엇보다 군량미 수송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행군 도중 물을 구할 수 없을 경우, 수초와 갈대가 자라는 곳이나 개미집이 있는 곳을 살피거나 들짐승의 종적을 찾아 추적하면 물을 구할 수 있었다. 물을 운반할 때는 양피 주머니나 대나무 통, 큰 호리병박을 사용하면 용기가 가벼워 편리했다. 행군 도중에는 지명이 나쁜 곳도 피해 갔다.

적과 싸우기에 앞서서 장수는 군사들에게 지형을 숙지하게 했다. 이때 이용하는 것이 바로 군량미였다. 즉, 쌀을 모아 모형으로 산과 골짜기의 지형을 만들어 보고, 또한 지형을 그려서 군사들에게 보이고 익히게 했다. 행군 도중 북두칠성 자루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서 사시(四時)에 따라 사방의 방향을 알게 했다. 이때 북두칠성의 자루는 별 세 개가 길게 놓여 있는 것을 가리킨다. 북두칠성의 자루는 초저녁을 기준으로 음력 정월에는 인방(寅方)을 가리키고, 2월에는 묘방(정동), 3월에는 진방, 4월에는 사방, 5월에는 오방(정남), 6월에는 미방, 7월에는 신방, 8월에는 유방(정서), 9월에는 술방, 10월에는 해방, 11월에는 자방(정북), 12월에는 축방을 가리킨다. 길을 잃을 경우에는 늙은 말을 풀어 놓고 그 뒤를 따라가면 옛길을 찾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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