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7권 전쟁의 기원에서 상흔까지
  • 제2장 출정에서 회군까지
  • 2. 전투
  • 어떤 대형으로 싸울 것인가
심승구

전투의 승리는 지휘관의 전술에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전술의 핵심은 바로 군대를 운영하는 진법(陣法)이라고 할 수 있다. 진법이란 진을 치는 법과 병영에서 지켜야 할 사항을 말한다. 장수는 군사들을 모아 하나를 만들어 행동하는데 마치 나무의 몸체와 같게 했다. 특히, 적진에서는 나무의 수많은 가지와 잎이 모두 몸체를 따라 움직이듯 군사들 역시 장수의 명령과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필수였다.

무엇보다 전쟁은 싸우지 않고도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상책이고,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이 중책이며, 참호를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 쌓아 성채를 지키는 것이 하책이다. 이때 군사들의 수효를 헤아려 주둔할 지역을 정하고, 적의 군세에 따라 진을 치는 것을 ‘전참’이라 하였다. 진에는 방형(方形)과 원형(圓形), 대진(大陣)과 소진(小陣)의 차이가 있고, 지역에는 험준하고 평탄함과 넓고 좁은 차이가 있으며, 적의 군세에는 병력의 많고 적음과 허약하고 견실한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장수는 이를 잘 관찰하여 군대의 대형을 결정하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진을 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실전에서 지형과 적의 병력, 아군의 능력 등을 고려하여 적절하게 쓰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전쟁터에서의 승패는 아는 것을 제대로 실행하는지 여부에 달려있었다.

군사들은 나이와 체력에 맞게 배치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즉, 노약한 군사와 건장한 군사, 긴 병기와 짧은 병기를 서로 혼용하지 않으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 긴 병기는 뒤에서 호위하는 데 적당하고, 짧은 병기는 앞에서 적을 막는 데 알맞았다. 노쇠한 군사는 전면에 있게 하고 건장한 군사는 후면에 있게 했다.

공격할 때에는 한 번은 기습 공격을 쓰고, 한 번은 정면 승부를 쓰며, 때로는 긴 병기를 쓰기도 하고 때로는 짧은 병기를 쓰기도 하여 행동을 일 정하지 않게 했다. 군사들을 왼쪽과 오른쪽으로 자유자재로 돌게 하고, 북소리와 징소리에 맞추어 달려 나가거나 천천히 걷게 하여 각각 절도 있게 해야 했다.

확대보기
화성능행도병의 야간 군사 훈련 장면(97쪽)
화성능행도병의 야간 군사 훈련 장면(97쪽)
팝업창 닫기

군을 한 번 집결시키고 한 번 해산시켜 계책을 은밀히 세우고 보루를 높이 쌓으며 정예함과 강성함을 은폐하여 고요히 소리가 없게 했다. 기습 부대는 넷으로 나누거나 다섯으로 나누어 내보냄으로써 군사들이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게 하며, 병영에 있는 군사들은 질서정연하게 하고 깃발을 선명하게 하여 위엄이 잘 드러나게 하였다.

지형에 따라 군을 매복하고 상황에 따라 기습 부대를 배치하였다. 멀리 성세(聲勢)를 허장(虛張)하고 갖가지 속임수를 써서 적을 유인한 다음 날아가는 총알처럼 재빠르게 공격을 가했다. 전진과 후퇴에 절도가 있고 지휘 신호에 잘 따르게 하여 혼란이 없게 함으로써 대오가 끊기더라도 진을 이루고 군사가 흩어지더라도 대오를 이루게 하였다. 상황에 따라 전법을 바꾸고 계획을 변경하는 것은 긴 병기와 짧은 병기를 적절히 혼용하여 적의 공격으로부터 방위하는 방법과 같은 것이었다.

확대보기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壯襄公征討時錢部胡圖)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壯襄公征討時錢部胡圖)
팝업창 닫기

장수는 군사들의 기운을 잘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였다. 북부 지방 사람들은 대개 예기가 넘치나 쉽게 태만해지는 반면에 남부 지방 사람들은 대개 굳세면서도 지구력이 있었다. 이처럼 각 지방의 풍기와 사람의 기질은 차이가 많아서 이에 따라 적절히 활용하였다. 야간에 싸울 때의 전법은 사람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보아도 보이지 않으므로 화광(불빛을 위해 쏘아 올리는 화살)을 많이 올리고 북소리를 크게 울렸다. 적군의 이목을 현란하게 하고 성세와 기운을 위축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진법은 총포와 화약류가 등장하면서 크게 바뀌었다. 무엇보다 기병 위주의 전술 체계를 바꾸어 놓았다. 종전까지 기병은 특히 평야전 전투에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한 전술 체계였다. 하지만 기병 위주의 전술 체계는 총포류 앞에서 무기력하였다. 이는 서양에서 총포류가 서양의 기사 제도를 무너뜨린 것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임진왜란 이후 조총의 전술 체계는 이제까지 몇 천 년 동안 유지되던 기병 전술 체계를 크게 바꿔 놓았다.

또한 임진왜란 이후 총포류가 발달하면서 집단적인 대형 위주의 진법은 점차 소규모 분대 단위로 규모가 축소되었다. 그것은 화약류의 발달이 오히려 상대편의 집단 대형에 더욱 효과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될 수 있으면 10명에서 12명 사이의 소규모 단위의 군사들이 무기를 갖추고 전투에 임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진법을 먼저 하고 기예를 나중에 한다는 선진후기(先陣後技)에서 뒤에는 오히려 기예를 먼저하고 진법을 나중에 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화약 병기의 발달이 집단 대형의 전투 방식을 크게 바꿔 놓은 것이다. 그 후 총포류는 종전까지의 창검 위주의 단병 체제를 보완하는 동시에 차전 ·기마전과 함께 큰 효과를 보았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