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7권 전쟁의 기원에서 상흔까지
  • 제5장 전쟁의 기억과 반성
  • 1. 전근대시기의 전쟁과 문자 행위
심경호

인류사에서 전쟁은 국가 혹은 집단 간의 갈등을 조정할 수 없을 때 문제 해결 방법의 하나로 선택되었다. 전쟁은 역사와 사회를 변화시키고 개인의 의식과 생활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전쟁의 결과는 사람들의 의식 구조, 생활 양식, 신분 질서 등 기존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게 만든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광기와 야만의 모습을 띤다. 전쟁은 도구나 방법이 폭력이며, 폭력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만큼이나 폭력을 휘두른 사람에게도 깊은 상처를 입힌다. 전쟁은 어떤 명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역사에 부정적인 요인이나 기제(機制)로 작용한다. 그리고 전쟁은 개인의 일상성을 파괴하고 인간의 이성을 무력화한다. 춘추시대에 의전(義戰)이란 없었다고 하는 말은 전쟁이 지닌 불합리성과 광포함을 가장 명료하게 드러내 주는 말이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을 치려고 했을 때 백이(伯夷)는 ‘폭력으로 폭정을 바꾸는 일(以暴易暴)’ 자체도 잘못이라고 간하였다.

인간의 문자 행위 가운데 문학은 전쟁에 이용되기도 하고 때로는 전쟁을 반영하면서 전쟁과 깊이 관여하여 왔다. 특히, 전쟁 이후의 문학에는 체험자의 직관을 통해 형성된 생생한 체험이 담긴다. 또한, 지식인의 지적 행 위와 사회 구성원들의 집합적인 기억과 경험 속에서 과거의 전쟁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진다. 그 재해석은 정치(精緻)한 지식과 문학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집합적인 구비 전승(口碑傳承)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사회적 기념 행위로 재수정된다.

전쟁과 깊은 관련을 가진 문학의 범주를 특별히 전쟁 문학(war literature)이라 부를 수 있다. 서양의 근대 이전에도 그러한 문학이 상당히 많았다. 트로이 전쟁을 다룬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 등은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흔히 전쟁 문학이라고 하면 근대와 현대의 작품만을 지칭하는 것이 통례다. 반전 문학도 여기에 포함된다. 따라서 전쟁 문학이라고 하면 흔히 근대 이후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진정한 인간상과 진실을 부각하는 문학을 가리킨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전쟁 문학이란 용어는 1930년대 일본 제국주의가 일으킨 전쟁에 이용당한 문학을 가리키는 예로 사용되었다.

이를테면 최재서(崔載瑞, 1908∼1964)는 1940년 6월 『인문 평론』에 실은 「전쟁 문학」이란 글에서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던 독일 학생들의 편지를 묶은 책을 소개하면서 그들의 호전적 지향을 적극적으로 선전하였다.273)김승환, 「1996년 8월, 친일 문학론을 다시 읽는다」, 『민족 예술』 1996년 8월호. 그는 조선에도 중일 전쟁을 다룬 전쟁 문학이 나와 온 조선 사람이 전쟁에 참여하기를 바랐다. 그 자신은 1941년 친일 문학지 『국민 문학』 주간을 지냈고, 1943년 조선 문인 보국회 이사를 지냈다.

또한, 우리나라 근대 단편 소설의 개척자로 일컬어지는 김동인(金東仁, 1900∼1951)도 1939년 4월 15일부터 5월 15일까지 한 달 동안 화북(華北) 주둔 일본군을 위문하러 떠나면서 『국민신보』 1939년 4월 16일자에 일본어로 쓴 「이야기 같은 보고 소설을 쓰다」를 실어, “조선 문단의 누군가를 지나(支那) 전선에 파견하고 싶다. 파견하여 조선 문단의 이름으로 전선의 장병을 위문하면서 조선에서의 전쟁 문학을 일으키고 싶다.”고 하였다.

최재서와 김동인이 말한 전쟁 문학은 제국주의 전쟁을 선전하는 도구 이지 진정한 문학이 아니었다. 현대에서 말하는 전쟁 문학은 문학을 통해서 전쟁의 역사적 체험을 추체험(追體驗)하게 만들고 전쟁이 지닌 폭력성을 고발하며 전쟁에서 겪은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문학을 말한다.

다만, 전근대시기의 문학은 때로는 반침략 전쟁이나 난리 평정을 위해 독전(督戰)의 의도를 중심에 두거나 사실의 기록과 보고를 중심에 두어 문학적 형상화가 약한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전근대시기의 전쟁 관련 문학은 독전의 문학, 체험의 문학, 증언의 문학, 재해석과 치유의 문학으로 구분할 수 있다. 독전의 문학은 민족 혹은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전쟁에 임하는 결단을 촉구하였다. 이에 비해 기록과 보고에 중심을 두는, 체험의 문학과 증언의 문학은 전쟁의 비인간적 측면을 드러내고 진정한 인간상과 참다운 진실을 부각시켰다. 또한, 어떤 문학 작품은 과거의 전쟁과 전쟁의 폐해를 다룸으로써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고 역사를 재해석하는 데로 나아가기도 하였다.

여기서는 주로 전근대시기의 문학이 전쟁과 연관을 맺어 온 방식을 중심으로, 우리 민족이 문학이라는 문자 행위를 통해서 전쟁에 참여하고 전쟁을 기억하며 전쟁을 반성해 왔던 문화 행위를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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