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7권 전쟁의 기원에서 상흔까지
  • 제5장 전쟁의 기억과 반성
  • 4. 전쟁 경험의 재해석과 상징화
  • 구질서 회복을 위한 충효절의 표창
심경호

유몽인은 홍도의 이야기를 『어우야담』의 「인륜편」 효열조에 수록하였다. 홍도가 왜국으로 끌려갔어도 절개를 지킨 사실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또한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과 관계된 인물들을 위해 작성된 전(傳)을 보면, 대개 충효절(忠孝節)을 표창하려는 의도가 두드러진다. 본시 당송 고문(唐宋古文) 계열의 전 양식은 도덕률을 고수한 인물을 입전(立傳)하였고, 또 인물의 삶을 그러한 도덕률에 따라 재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것은 조선 후기의 정표 정책(旌表政策)과도 관계가 있었다. 이때 기존 도덕률을 선양하기 위해 입전 대상을 신분에 따라 제한하지도 않았다. 허목(許穆, 1595∼1682)이 지은 「동래구(東萊嫗)」는 그 한 예다.311)허목(許穆), 『미수기언(眉叟記言)』, 권22, 선행조(善行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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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목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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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구」는 동래의 이름 없는 노파를 입전한 글이다. 노파는 1592년에 30세 나이로 왜적에게 사로잡혀 일본에서 십여 년을 보내고, 1601년 봄에 우리나라 사행을 따라 귀국하였다. 그런데 난리 통에 헤어진 어머니가 일본에 끌려가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것을 알고는 다시 일본으로 들어가 갖은 고초 끝에 상봉하였다. 왜의 추장이 감동하여 어머니와 함께 송환하기를 허락했다. 돌아와 품팔이를 해서 노모를 공양하다가 80세로 죽었다고 한다. 동래 노파의 행적은 허구적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 효행과 절개를 선양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행적이 요구되었다. 허목은 그 논찬(論贊)에서 “여자로서 세상에 뛰어난 절행을 남겨 오랑캐로 하여금 감화하게 하였으니 어질도다!”라고 하였다.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이 지은 「백의사전(白義士傳)」과 「신기금전(辛起金傳)」도 충효절의 이념을 고취하려는 의도에서 작성한 글이다.312)채제공(蔡濟恭), 『번암집(樊岩集)』, 「백의사전(白義士傳)」과 「신기금전(辛起金傳)」. 둘 다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을 입전하였다. 「백의사전」은 경상도 양산(梁山) 사람 백수회(白受繪)의 이야기이고, 「신기금전」은 실존 인물의 입전인지 확실하지 않다.

백수회는 암자에서 글을 읽다가 왜군에 사로잡혀 일본으로 끌려갔지만 절의를 지켰다. 왜적이 숫돌에 칼을 갈면서 위협을 하였지만 그는 오히려 빨리 죽이라며 호통을 쳤다. 또 왜적이 삶아 죽이려고 불을 지피자 백수회는 끓는 물속으로 뛰어들려고 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적의 두목이 급히 손을 들어 제지하며 진실로 의사라고 감복하고는 본국으로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그의 연보에도 전한다.313)백수회(白受繪), 『송담유사(松潭遺事)』, 「연보(年譜)」. 백수회는 19세가 되던 해에 임진왜란을 당해 포로로 일본으로 끌려가서 9년 동안 잡혀 있다가 조선으로 돌아왔다. 40세 되던 1613년(광해군 5)에 폐모론(廢母論)에 반대하여 통문을 찢어버린 적도 있으며, 인조반정 후 관직에 몇 차례 나가기도 했다. 1642년에 69세로 생을 마쳤고, 사당이 세워지고 송담(松潭)이란 편액이 내렸다고 한다. 채제공은 「백의사전」에서 백수회가 겪은 9년간의 억류 생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그 인물의 절의만 표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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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공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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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신기금은 동래 사람이었는데, 13세에 임진왜란을 당해 부친은 죽고 자신은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갔다. 25세가 되던 1604년 3월에 귀국할 때까지 13년간 포로로 있었다. 신기금은 일본에 끌려간 뒤, 오랫동안 수영과 노 젓기를 배웠고 마침내 배를 구해 탈출하여 울릉도 부근에 표류하였다. 지나가던 왜선이 그를 무인도로 실어가 그곳에 버렸는데, 신기금은 대해를 헤엄쳐 나오다가 우리나라 배를 만나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체제공은 피로인(被虜人)들을 입전하면서 그들의 절의를 표창하려는 의도에서 이야기를 다소 과장한 듯하다. 그만큼 구질서의 유지를 위해 전쟁 체험자 가운데 충효절의 모델이 요청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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